지구의 채찍질…일상 덮친 '기후 위플래시'
정민화 기자
mhwa@kpinews.kr | 2026-10-08 17:32:53
찬 이슬이 맺힌다는 절기, 한로(寒露). 아침저녁으로는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한 바람이 불지만, 한낮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따스한 가을볕이 내리쬔다. 이 무렵의 일교차는 옷차림으로 대비할 수 있는 일상의 변화다.
하지만 지구의 일교차는 다르다. 지금 지구가 겪는 기후변화는 카디건 한 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극심한 가뭄 뒤에 폭우가 쏟아지는 등 서로 반대되는 날씨가 짧은 기간에 급격하게 오가는 '기후 위플래시(Climate Whiplash)'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위플래시(Whiplash)는 '채찍질'이라는 영어 표현이다. 기후학계는 이 표현을 빌려, 매우 건조한 상태와 매우 습한 상태가 짧은 기간에 급격하게 오가는 현상을 '수문기후 위플래시(hydroclimate whiplash)'라고 부른다.
기후 위플래시는 생태계와 농업, 사회기반시설에 큰 부담을 준다. 가뭄으로 메마르거나 산불로 훼손된 땅에 폭우가 쏟아지면 홍수와 산사태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한반도에서도 7월 하순 폭염, 8월 전반 가뭄에 이어 중·하순 집중호우가 나타났다. 이를 모두 기후 위플래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후변화로 극단적인 날씨가 잦아지는 현실을 보여준다.
농가 피해가 대표적이다. 정부의 8월 가뭄 예·경보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전국 누적 강수량은 평년의 82.3% 수준에 그쳤다. 부산·김해·울주군에는 '경계' 단계의 심한 가뭄이 나타났고 경남 지역도 가뭄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거제시는 8월 11일 농업용수 저수율이 29.8%로, 평년의 37.3% 수준까지 떨어졌다.
가뭄과 폭염은 농작물에 직접적인 상처를 남겼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7~8월 폭염·가뭄으로 전국 농작물 5887.8㏊에서 잎마름과 과실 갈라짐(열과)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비가 내린다고 해서 해갈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뭄이 심했던 거제에는 불과 며칠 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8월 15~18일 거제에는 900㎜가 넘는 비가 내렸고 농경지 336㏊가 침수됐다. 이미 건조와 폭염으로 약해진 농작물에 다시 강한 비가 쏟아지면서 또 다른 피해로 이어졌다.
기후 위플래시는 앞으로 더 잦아질 가능성이 있다. 202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스 어스 앤드 인바이런먼트(Nature Reviews Earth & Environment)'에 실린 연구에서는 전 세계 3개월 단위 기후 위플래시가 20세기 중반 이후 31~66%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기후가 한쪽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빠르게 움직일수록 우리가 감당해야 할 위험도 커진다.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극단적인 건조와 습윤을 견딜 수 있도록 수자원 관리와 농업·산림·도시의 기후재난 인프라를 강화하는 일도 시급하다.
평화로운 가을볕을 즐기는 이 순간에도, 지구의 대기는 언제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지 꺾어버릴지 모를 거대한 채찍질을 준비하고 있다.
KPI뉴스 / 정민화 기자 mhwa@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