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막 내리는 악당의 서사 트럼프 관세정책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hongkyooncho@korea.ac.kr | 2026-02-23 14:35:16
균형있는 국정 판단과 제도 신뢰 회복으로 악당의 서사 벗어날 때
악당의 서사와도 같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결국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 지난 금요일 미 연방대법원은 6 대 3 결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nternational Emergency Economic Powers Act, IEEPA)에 의거해 수십 개국에 관세를 부과한 것은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트럼프는 1977년 제정된 이 법이 자신에게 광범위한 수입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했다며 이 법의 비상 권한을 발동하여 유례없는 강도로 각국에 관세를 부과해 왔다.
연방대법원 다수 의견은 해당 법이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통령은 무제한의 금액, 기간 및 범위의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할 수 있는 비상 권한을 주장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의회의 명확한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 법이 시행된 지난 반세기 동안 그 어떤 대통령도 이 법을 근거로 관세를 부과한 적이 없으며 더욱이 이처럼 규모가 크고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한 적은 없다고 했다. 미국은 2025년 말 기준 실효 관세율이 10%를 넘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트럼프가 경제의 지배(rule of economy)로 지난 대선에서 승리하여 2기 집권에 성공한 지 약 1년 만에 가장 핵심적인 수단으로 과시하며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오던 관세정책에서 결정적인 법적 패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패배는 미국 민주주의 제도의 견제와 균형이 여전히 견고함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트럼프는 마치 로마 황제처럼 손짓 한 번으로 관세를 부과해 왔다. 어느 날 스위스의 관세율이 39%였다가 금괴와 시계 선물을 받은 명분으로 15%로 떨어지기도 했다. 외국 지도자가 트럼프의 심기를 거스르면 관세율은 뛰었다. 예를 들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후보 지명을 지지하지 않았을 때 관세율은 두 배로 올라 50%에 달했다.
트럼프에게 관세는 경제적 수단 이상이었다. 관세는 외교 정책의 핵심이며 그의 가족과 고위직 자녀들을 위한 사업 거래를 성사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로 트럼프의 재량권은 거의 완전히 박탈된 것과 다름없다. 판결 직후 트럼프가 격앙되어 말한 대로 관세 부과를 위한 대체 수단이라 할 미 무역법(US Trade Act) 등을 동원하더라도 큰 만족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판결로 그가 가장 선호하는 즉각적 행동의 운신 폭을 잃은 것이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에 따르면 이번 판결로 미국의 평균 실효 관세율은 7.8%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판결 직후 S&P 500 지수가 상승했고 장기 국채 수익률은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긍정적 경제 신호로 볼 수 있다.
연방대법원이 판결문에서 밝힌 대로 트럼프는 의회에 필요한 입법 승인을 요청할 수도 있겠으나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적지 않아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 공화당원들조차 연방대법원이 대통령의 권한에 제한을 둔 것에 안도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공화당 존 커티스 상원의원은 미국의 건국자들이 세운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2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강력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1기의 부통령이었던 마이크 펜스는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을 미국 국민의 승리이자 권력 분립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공화당 돈 베이컨 하원의원은 입법 과정은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어 의회를 우회하고 싶은 유혹이 들 수도 있지만 이는 자유의 보루라 칭하며 의회의 헌법적 역할을 재확인한 연방대법원 판결에 찬사를 표했다.
트럼프는 최근 케네디 센터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백악관에 새로운 연회장을 신축했다. 법무부 본청 건물에는 트럼프의 얼굴이 담긴 대형 현수막을 펼쳤다. 그러한 와중에 베네수엘라에 대한 특수 작전을 감행했는데 이는 미국의 무력 사용을 승인할 수 있는 의회의 헌법적 권한을 무시한 행동이었다. 서방 지도자들이 그린란드에 대한 그의 위협에 반발하고 있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형사 수사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반대하는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국내외적으로 트럼프에 대한 비판이 확대되고 있는 시점이기에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이 더욱 의미심장한 신호로 다가온다.
트럼프의 왜곡된 권력관에 대한 질책을 담은 기념비적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시점인 이번 화요일 미 의회에서 트럼프는 2기 취임 후 첫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에 나선다. 지속적으로 낮은 대통령 지지율로 인해 공화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 전망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는 가운데 열리는 국정연설에서 트럼프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여론조사에 따르면 많은 미국인들은 트럼프식 관세가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관세 급등으로 인한 생활물가 부담 증가로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점점 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제의 지배로 집권한 공화당이기에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계의 생활 형편 향상이 절실한 상황이다. 주류 공화당의 정통 노선을 거스르며 무리한 관세정책을 거침없이 추진해 온 데서 비롯된 문제점을 짚어 보는 성찰을 담아 국민에게 다가가는 국정연설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 국정연설뿐 아니라 앞으로의 국정에서 트럼프에게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동안 공화당 트럼프 충성파의 왜곡된 목소리가 컸다면 이제부터는 균형 있는 국정 판단이 긴요하다.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은 헌정 질서의 핵심인 권력 분립 원칙을 분명히 하며 관세정책을 포함한 대통령 권한의 구조적 한계를 재확인했다. 관건은 실제 국정 운영에서 트럼프가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냐다. 이번 판결 이후에도 국정에서 또 다른 경로로 우회적 권한을 도모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한다면 법적, 정치적 충돌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이제 제도와의 전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트럼프에게 필요한 것은 무모한 힘의 과시가 아니라 제도에 대한 신뢰 회복 노력이다. 이는 악당의 서사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저서: 우리 시대의 금융경제 읽기(박영사, 2025년) △ 현재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KPI뉴스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hongkyooncho@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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