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은 연합국 선물?…김구·여운형 생각은 달랐다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2025-08-19 16:51:22

[김덕련의 역사산책 25] 광복의 원동력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광복 80주년 기념사 논란
광복회 "친일 뉴라이트 선전 포고"…사퇴 요구
김구·여운형, 일제와 싸운 한국인의 피땀 강조
두 사람 모두 끝까지 항전하며 일본 패망 대비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광복 80주년 기념사가 논란이다. 

 

김 관장은 지난 15일 기념사에서 "'광복'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밝혔다. 

 

▲ 독립유공자 후손, 어린이 합창단원 등 참석자들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기념 타종 행사'에서 광복절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광복회는 "망언"이라며 반발했다. 광복회는 지난 17일 성명에서 "독립운동가를 능멸하고 독립운동 가치를 훼손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의 핵심 발언",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친일 뉴라이트의 선전 포고'"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김 관장 사퇴를 요구했다.

김 관장 언행을 감안하면 "뉴라이트의 논리를 대변한 의도적인 발언"이 분명하다는 것이 광복회의 판단이다. 그간 김 관장은 '1945년 광복을 인정하느냐'는 물음에 답변 거부,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이들의 명예 회복 필요 주장 등을 통해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파문이 일자 김 관장은 세계사적 시각에 근거한 해석이 "항일 독립전쟁 승리로 광복을 쟁취했다"는 민족사적 시각과는 다른 것임을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친여 정치권에선 "친일 식민 사관에 입각해 항일의 역사를 왜곡하면서 이를 해석의 다양성으로 포장하는 뻔뻔함"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1945년 8·15 광복 시기에 활동한 주요 정치 지도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대다수가 김 관장 말처럼 광복을 연합국의 선물로 여겼을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8·15의 밑바탕에는 광복 또는 해방을 주체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한국인들의 피땀이 놓여 있음을 강조한 이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세계사적 시각이 결여된 사람들이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인물로 김구와 여운형이 꼽힌다. 김구는 연합국이 일본을 패망시키는 데 중요한 노력을 한 것에 감사하지만 한국인들도 해방을 위해 일제 강점기 내내 싸우면서 일제 패망에 대비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여운형은 연합군에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과 별개로, 조선 민족이 1910년 강제 합병 전후부터 1945년까지 국내외에서 맹렬히 싸워 피를 흘린 공이 크다는 것을 연합국에 인식시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구와 여운형은 광복 후 정치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다. 그렇지만 광복을 연합국이 가져다준 선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었다. 이는 두 사람이 일제 강점기에 끝까지 항전하며 일본 패망 이후를 적극적으로 준비한 것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김구는 중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며 미국 전략사무국(OSS)과 협력해 국내 진공 작전을 추진했다. 여운형은 1944년 국내에서 비밀 결사 조선건국동맹을 결성해 각 부문 조직을 은밀히 구축하는 동시에 해외 독립운동 세력과 연계를 시도했다.

물론 '해방은 연합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정치 지도자들도 있었다. 이승만, 한국민주당(한민당) 인사들, 그리고 조선공산당을 재건한 박헌영 등이 주로 거론된다.

당시 이승만과 한민당은 기본적으로 미국에, 박헌영은 소련에 밀착했다. 한민당에는 일제 강점기 후반부에 일본의 침략 전쟁에 협력한 이들이 꽤 있었다. 협력하지 않은 이들 중에는 항전에 동참하는 대신 침묵 또는 은둔한 경우가 많았다.

조선공산당 쪽 인사들은 일제 강점기에 오랫동안 강력하게 항일 투쟁을 했지만 1941년 이후엔 국내에서 거의 투쟁하지 못했다. 대부분 수감되거나 피신했기 때문이다. 박헌영도 광주의 벽돌 공장에서 숨어 지내다 광복을 맞이했다. 그런 점이 조선공산당 쪽에서 '우리가 끝까지 싸워서 해방을 맞이했다'고 주장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보는 연구자도 있다.

일제 강점기에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조선의용군 전신) 구성원으로 항전한 작가 김학철의 글에 박헌영 관련 일화가 나온다. 1941년 중국 허베이성 호가장 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총상을 입고 붙잡혀 수감 생활 중 한쪽 다리를 잃은 작가다.

글에 따르면, 김학철은 광복 후 서울 종로 YMCA에서 열린 집회에서 박헌영이 "위대한 소련 군대와 미군에 의해 우리나라가 해방이 됐다"고 거듭 강조하며 "우리 민족 자체의 해방 투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을 않는" 모습을 접했다.

참다못한 김학철은 벌떡 일어서서 고함을 질렀다. 조선의용군은 일본군이 항복하는 그날까지 계속 무장 투쟁을 했다고, 숱한 사람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쳤다고, 누구처럼 남이 해방을 시켜줄 때만 기다리지 않았다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목발을 짚은 채 나왔다고 한다.

김학철은 호가장 전투 상황을 생생하게 되살린 또 다른 글에서 "호가장 전투의 생존자의 이름으로" 이렇게 묻는다. 이래도 일본 제국주의의 묘혈을 판 것은 우리가 아니라고 머리를 내저을 것이냐고. 이래도 조선 민족의 해방은 남의 손으로만 된 것이냐고.

호가장 전투만이 아니라 모든 독립군 전투로 범위를 넓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물음이다. 직접 총을 들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일제 침략에 맞서 각자의 영역에서 분투하며 광복을 준비한 모든 사람을 기억하며 되짚어볼 만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35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한국인의 피땀을 거름 삼아 자란 광복이라는 나무를 연합국의 일방적 선물로 치부하는 위험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