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갈 데가 고시원밖에 없다

김이현

| 2018-11-26 13:05:19

'비주택 가구' 4년 새 3배 이상 늘어 2015년 39만여 가구
비주택 거주자 40%가 고시원에서 생활…소득 낮고 고령층

"더 이상 갈 데가 없으니까요."

 

▲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고시원 화재 현장에서 생존자들이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문재원 기자]

 

빨래 더미를 챙겨 공용세탁기로 향하는 ㄱ(52)씨의 왼손에는 흉터가 있다. 고시원에 살면서 인근 직장을 다니다 사고를 당한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 일용직 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고향에 있는 가족과 떨어진 지 4년. 그에게 고시원은 최후의 거처다.

 

ㄱ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폭이 1m가 채 안 되는 복도. 두 평 남짓한 방안. 퀴퀴한 냄새를 내보내고 빛을 들게 하는 창문 값은 3~5만원. 조건이 비슷한 고시원들은 저소득자들의 새 보금자리로 빠르게 변모했다. 불황에 일자리가 없어 노숙 위기에 내몰린 일용직노동자와 고령노동자는 보증금 없고 저렴한 쪽방과 고시원을 채워 나갔다.

광진구 한 고시원에서 5년간 생활 중인 ㄴ(57)씨는 "거리에 나앉을 순 없고, 그렇다 보니 보증금이 필요 없는 고시원에 안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10여년 전 사업에 성공한 뒤 무리하게 확장을 하다가 빚더미에 올랐다. 가족들은 그가 고시원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모른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많이 벌고 조금만 써야한다"는 그에게 고시원은 쪽잠을 자는 장소다. 

 

▲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고시원 화재현장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화재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사고가 난 국일고시원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한 고시원 총무 ㄷ씨는 "나이가 들고 고시원을 찾은 사람들은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아도 뻔하다"면서 "여기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고시원에는 50개의 방이 이어져 있었고, 이 중 39개의 방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겨울에는 빈 방이 없을 정도로 가득 찬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과 취약한 구조를 알면서도 고시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운 좋게 살아남은 국일고시원 거주자들도 마찬가지다. 사고 후 그들 역시 새로운 거처가 필요했지만 옮길 곳은 정해져 있었다. 그들은 고시원에서 고시원으로 갔다. 종로구청은 피해자들에게 고시원 입실증, 통장 사본 등 관련 서류를 주민센터에 제출토록 하고 한 달 동안 근처 고시원의 거주지원비를 지원했다. 순식간에 번진 화마가 7인의 비주택자를 삼켰음에도, 이동 가능한 '고시원 목록'에서만 선택권이 주어질 뿐 생존자들은 또 다른 사각지대로 옮겨졌다.

이후 국토교통부는 "국일고시원 피해자 32명은 이재민 자격으로 6개월 간 임대 주택에 거주할 수 있다"며 추가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이들은 12월1일부터 내년 5월31일까지 서울 강북·노원·도봉구에 있는 임대주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

하지만 6개월 거주를 위해 가구나 전자제품 등을 마련할 여유가 없고, 기존 일터인 종로와 임대 주택 간 먼 거리도 부담스럽다. 더구나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에 따라 대다수는 종로구 인근 고시원에 계속 머물러야 할 형편이다.

 

▲ 비주택가구 현황 [한국도시연구소, 통계청]

 

201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주택 이외의 기타 거처'에 사는 '비주택' 가구는 39만1245가구에 달한다. 2010년 조사에서 비주택 가구가 12만8675가구였던 것과 비교하면 5년 새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국일고시원에 머물렀던 35살 무기계약직 우체국 직원부터 70대 기초생활수급자 등 재난·재해의 희생자가 되기 전엔 그 존재조차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이들이 40만 가구나 되는 셈이다.

이러한 처지의 사람들은 서울에만 15만명이 넘는다. 통계청‧토지주택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비주택 거주자 중 40%는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2014년 발표된 논문 '서울지역 고시원 거주자의 주거실태 및 만족도'에 따르면 고시원에 거주하는 이들의 95%가 일을 하고 있지만 월 평균소득은 70~100만원이 29.3%, 50만원 이하가 29.3%였다. 반면 연령은 높았다. 71.9%는 40~50대로 평균 나이가 52.2세에 달했다.

▲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고시원 화재현장 앞에 놓인 화재 참사 재발방지 촉구 글귀 [문재원 기자]

한국도시연구소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시설‧서비스가 확보된 '주택'과, 사회・문화・경제 환경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동시에 가지는 게 '주거'의 의미라고 설명한다.

법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주택법에 명시된 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은 14㎡. 4평 남짓의 공간이다. 여기에 하수도 시설이 완비된 전용 입식 부엌, 화장실, 목욕 시설을 갖춰야 한다. 소음이나 악취 등의 요소도 법정 기준을 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고시원은 아예 주거시설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지난 5월 방한한 레일라니 파르하 유엔인권이사회 적정주거특별보고관은 "정부가 주거권을 인권으로 인식하여 국가적인 주거 복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주거 취약계층의 안전사고는 계속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윤지민 종로주거복지센터 팀장은 "고시원은 주택법상 주택으로 보지 않는 등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정부나 지자체 관리가 허술하다"면서 "고시원이 주거와 생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걸 정부가 인정하고, 집 없는 사람들에게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지 않는 안전한 집을 공급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기자 k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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