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공시생들의 추석

김이현

| 2018-09-24 09:11:13

추석 연휴 반납한 공시생들…"합격하고 갈 것"
취준생 52.8% '올 추석 친지 모임 참석 안해'
노량진 학원가는 연휴 맞아 '추석 특강' 마련

"고향까지 내려갔다 오는 시간이 아깝잖아요.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면 아마 어른들도 이해해주실 거예요"  

 

▲ 추석 연휴 하루 전인 지난 2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 한 공무원학원에 공시생들이 드나들고 있다. [정병혁 기자]


노량진에서 만난 정모(여·23)씨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노량진에 있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경찰공무원을 준비한 지 1년째인 그의 추석 일정표는 '독서실'과 '학원'으로 빼곡했다. 그는 이번 연휴에 고향으로 가는 버스표를 구매하지 않았다. 경찰공무원 체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공시생은 노량진에서 추석연휴를 보낼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앞둔 노량진 학원가는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붐볐다. 지난 21일 9호선 노량진역 앞 대로변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녔다. 그러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른바 '공시생'들은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이들은 선선해진 날씨에 저마다 겉옷을 챙겨 들었지만, 하의는 편한 트레이닝복이나 레깅스였다. 신발도 운동화나 슬리퍼가 대다수였다.

이들이 바쁘게 지나다니는 틈 사이로 '추석 특강'을 알리는 홍보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7·9급 공무원, 임용고시, 경찰, 소방 등 각 분야별로 차이는 있지만 많은 노량진 학원가는 학원문을 닫지 않는다. 지난 설 특강에 이어 '추석 특강'을 하는 것이다. 몇몇 식당에는 '추석연휴 정상영업'이라는 글자를 붙여 놓기도 했다.  

 

▲ 추석 연휴 하루 전인 지난 2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 학원에 추석 특강 포스터가 붙어있다. [정병혁 기자]


올해 서른이 된 배모(30·남)씨도 지난 설에 이어 추석 연휴도 쉬지 않고 공부할 예정이다. 지난 9월에 있었던 경찰공무원 2차 채용시험에서 아깝게 떨어졌다는 그는 "올해 경찰공무원 3차 추가 채용 시험이 12월에 있기 때문에 추석 연휴도 평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면서 "가족들과 간단히 식사 후 바로 도서관이나 독서실로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공시생이라 명절이 달갑지만은 않다"고 덧붙였다.

취업 포털 알바몬이 전국의 성인남녀 222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취준생 가운데 52.8%는 '올 추석 친지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지난해 추석을 앞두고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 및 취준생 28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더라도 응답자의 80.2%가 '명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답했다. 추석 때 가장 듣기 싫은 말로는 '언제 취업할 거니'(73.6%·복수응답)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지난 8월 7급 공무원 필기시험에서 낙방한 윤모(여·23)씨도 추석연휴를 반납했다. 곧장 내년 4월에 있을 9급 공무원시험을 위해 이른바 '명절 대피소'인 학원과 독서실로 향한다. 9급 일반 행정직에 지원할 예정이라는 그는 "올 연휴는 부모님만 차례를 지내러 간다"면서 "같은 공시생들에게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 하루도 쉴 수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 소재 대학교를 나온 그의 목표는 빠른 시간 내에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이어 "합격하기 전에는 친척들 만나기가 좀 그렇다"면서 "우선은 공부에 집중할 것"이라 말하며 웃었다. 붙어야만 갈 수 있는 고향길인 셈이다. 그가 응시했던 지난 8월에 있던 7급 공무원은 3만 6662명이 지원했으며, 경쟁률은 47.6대1을 기록했다.

 

▲ 2018년 8월 고용동향. [통계청]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2018년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8월 현재 취업자 수는 2690만7천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천명 느는 데 그쳤다. 반면 실업자는 지난해 8월 99만9천명보다 13만4천명 늘어난 113만3천명으로 집계됐다. 7월과 비교해도 9만4천명이 증가한 수치다. 실업률도 4.0%로 0.4%p 상승했다. 경제활동인구 100명 중 4명이 실업자인 셈이다. 특히 15~29세 청년층 실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2만5천명 증가했고, 실업률도 1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째 경찰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여·29)씨도 걱정이 앞선 모습이었다. 일반 기업 입사를 준비하다 실패한 그는 공무원으로 방향을 바꿨다. 나이가 들어서도 안정적이라는 이유였다. 그는 올해 경찰공무원 1차인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2차인 체력시험을 준비 중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한 고지를 넘었지만 기쁨도 잠시뿐, 남은 시험(체력시험, 인·적성, 면접)이 기다리고 있다. "부모님의 노후 자금과 지금 이 시간을 맞바꾼 것 같다"는 그는 "최종 합격증을 받아야만 마음 편히 고시원 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추석 연휴 하루 전인 지난 2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 학원가들의 모습. [정병혁 기자]


정부가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위해 실시하는 공무원 추가채용도 진행될 예정이어서 공시생들에게 이번 연휴는 더없이 중요했다. 함께 공부하지만, 경쟁을 펼치고 있는 공간에서 자리를 비우고 연휴 동안 쉴 수는 없었다. "하루만 쉬어도 경쟁에서 밀린다는 불안감 때문에 새벽부터 학원에 나와 앞자리를 사수한다"는 공시생에게 추석은 평일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이들이 가장 힘든 것으로 꼽은 것은 '불확실한 미래'와 '금전적인 부담'이었다. '일정 시간을 공부하면 합격한다'라는 보장이 없기도 하지만, 그 불안정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한달에 100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원받아야 하는 노량진의 삶에서 여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특유의 차분함과 웃음은 잃지 않았다. 몇몇은 "포기하지만 않으면 결국에는 된다"고 말하면서 "합격하고 나면 이 순간이 오히려 그리울 것"이라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공시생들은 내년 연휴는 공무원 신분으로 맞을 것이라 다짐하며 조용히 시간과 싸우고 있었다. 

 

K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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