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오,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인가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4-09-06 15:41:30

셰익스피어 전집 10권 운문 번역 완간한 최종철 교수
일본 통해 들어온 셰익스피어, 산문으로 대부분 번역
동아시아에서 한글로만 가능한 원전의 운율 3.4조에
실어서 30년 만에 셰익스피어 작품 운문 완역 결실

최종철 연세대 명예교수가 '셰익스피어 전집'(전 10권·민음사)을 완간했다. 셰익스피어 특유의 운문을 우리 말 3·4조 운율에 실어 번역해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동안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일본을 통해 수입된 전통에 따라 산문으로 번역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셰익스피어 작품이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 넘어서야 운문으로 체계적인 완역이 결실을 본 셈이다.

 

▲최종철 교수는 "소리와 뜻을 함께 전달할 수 있는 한글이 있어서 원문의 운율에 가까운 번역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달 출간한 작품은 '셰익스피어 전집' 10권 가운데 6~10권이다. '티투스 안드로니쿠스' '두 귀족 친척' 등 비극·로맨스(6권), '헨리 4세' '태풍'(템페스트) 등 사극·로맨스(7권),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 사극(8권), '헨리 5세' '존 왕' 등 사극(9권), 소네트 154편·시(10권)로 구성됐다. 1993년 번역에 돌입, 2014년 '한여름 밤의 꿈' '베니스의 상인' 등 희극(1권), '햄릿' '맥베스' 등 4대 비극(4·5권)까지 5종을 첫 결과물로 출간한 뒤로도 10년이 걸렸다.

최 교수는 완간을 계기로 기자들과 만나 운문 번역의 의미에 대해 먼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운문이 전체 대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그 비율이 50퍼센트 이상인 희곡도 총 38편 가운데 22편이나 된다. 셰익스피어가 주로 사용하는 '약강 오보격 무운시'는 약강 음절이 시 한 줄에 연속적으로 다섯 번 나타나고 연이은 두 시행의 끝에서 같은 음이 되풀이되지 않는 형식을 일컫는다. 표의문자인 중국 한자나 일본어로는 제대로 번역하기 난망한데 비해, 우리 말로는 3·4조에 실어 비교적 원문에 가까운 번역이 가능함을 발견해 1993년 '맥베스' 번역에 최초로 적용했고, 이후 여타 모든 셰익스피어 작품을 이 형식으로 번역해냈다.

최 교수는 "셰익스피어 연극 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운문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그의 극작품을 우리말로 옮길 때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이라며 "시 형식으로 쓴 연극 대사를 산문으로 바꿀 경우 시가 가지는 함축성과 상징성 및 긴장감이 현저히 줄어들고, 수많은 비유로 파생되는 상상력의 자극이 둔화되며, 이 모든 시어의 의미와 특성을 보다 더 정확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도구인 음악성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서문에 밝혔다.

최 교수는 "3·4조 운율이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대사 전달방식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난해 번역을 마쳤으니 30년이 걸린 셈"이라며 "산문 번역과 비교해서 읽어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23년 셰익스피어 작품이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된 이래 100년 만에야 운문으로 완역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최 교수는 셰익스피어가 일본어라는 통로를 통해서 들어온 점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와세다대학 교수가 일본어의 특성상 셰익스피어 원문을 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쓴 글을 보았다"면서"1920년대 셰익스피어를 처음 번역한 우리 선배들이 미국이나 영국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직접 받아들였으면 우리말 운율 3·4조가 '약강 오보 무운시'를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금방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우리도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없었으면 신라 향찰이나 이두처럼 한자 명사에다가 조사를 붙이고 토를 다는 형식으로 썼을 것"이라며 "다행히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 소리든지 간단하게 적을 수 있는 한글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최종철 교수는 "셰익스피어를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은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스승의 번역과 어떤 차별점을 지니는가(연세대 스승인 '이상섭·1937~2022' 교수가 2016년 한권 짜리 '셰익스피어 전집'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운문 번역으로 선보였다).

"누구의 운문 번역이 더 셰익스피어의 느낌과 분위기를 잘 전달하는지는 평가를 할 수는 있지만 제자인 사람이 얘기하지는 않겠다. 다만 30년이나 걸린 큰 이유는 한꺼번에 할 수 없는 종류의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은퇴한 후 10년 안에 이 방대한 작업을 했는데, 좀 서둘러 하셨다는 느낌이다."

-번역하면서 힘들었거나 인상적인 작품은?
"제일 힘들었던 작품은 밀도가 가장 높은 '맥베스'이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인물 가운데 가장 시적이이기도 해서 엄청나게 압축된 문장들이 전광석화처럼 뻐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이 시의 분위기를 우리 말로 옮길 수 있다면 나머지 작품들을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작품을 처음 붙들었는데, 시간이 제일 많이 걸렸다. 압축이 느슨해지면 뜻과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맹물로 내려오는 정도의 밀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제일 어려운 작품이었다. 맨 처음 이 작품을 번역했기 때문에 그 추진력으로 나머지를 다 할 수 있었다."

 

-무대 공연도 달라지겠는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무대 예술도 일종의 도제시스템이어서 산문극의 전통이 쉬 바뀌지 않는다. 한국에 서구 연극이 도입되면서 셰익스피어 일본어 판을 대본으로 써서, 그 전통이 지금까지 계속 남아 있다. 운문 대본을 시도한 극단도 있었는데 너무 길어지니까 포기했다. 앞으로는 결국 운문 대본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운문 번역을 읽고 자란 세대가 연출을 하고 감독이 되면 젊은 시절에 감동적으로 읽었던 형식이 자연스럽게 쓰일 것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끊임없는 생명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셰익스피어 극이 지금까지 살아남는 이유는 인본주의 전통을 고스란히 살렸기 때문이다. 현대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감정, 셰익스피어가 작품에서 구현해 보여줬던 인간의 심리 상태를 지금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의 진실에 접근한 것이기에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인간 감정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것을 아주 잘 연결되는 스토리로 꾸미고 거기에 적합한 인물을 만들어서 전달을 한다. 이것이 셰익스피어 천재성의 핵심이다."

-30년 동안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해오면서 중간에 힘들었던 때도 있었겠다. 향후 계획은?
"물론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있었지만, 고된 작품이 주는 기쁨이 고통보다 더 크기 때문에 그 힘으로 30년을 버티었을 거다. 집 근처 공원을 뛰면 갑자기 막힌 데가 뚫리는 해결책이 나오는 경험을 여러번 했는데, 그때 기분이 엄청나게 좋다. 그런 희열이 없으면 못했을 거다. 이제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다."

-셰익스피어 운문 번역도 AI가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AI가 결국 컴퓨터인데, 소리에 뜻을 실어서 배열해줄 인풋(input)을 다 넣을 수는 없다. 대충 뜻은 전달할 수 있지만 아주 이상하게 낯선 것이 나올 수 있는데 그것은 셰익스피어 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의 해석이 필요한데 사람마다 차이가 있듯이 컴퓨터는 일단 보통 이상의 수준은 가지만 상위 표현력은 인풋만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을 거다."

 

▲전집 디자인을 맡은 타이포그래퍼 유지원은 "수학적 기반 위에 셰익스피어의 천태만상 인물을 형상화했다"면서 "10년 동안 단일 디자인 프로젝트를 추진한 예는 한국 출판 역사에서도 흔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전집 디자인을 맡은 타이포그래퍼 유지원은 "단일 디자이너가 10년 동안 단일 프로젝트를 혼자 책임지고 완수한 예는 한국 출판 디자인 역사에서도 흔한 사례가 아닐 것"이라며 "책 10권을 다 꽂아놓았을 때 33cm의 폭을 지닌 책등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를 현대적 추상화를 감상하듯 보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셰익스피어가 격자처럼 반듯한 말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느꼈다"면서 "그 이미지를 비스듬한 사선 같은 것을 많이 넣어 표현했는데 셰익스피어 인물의 천태만상을 수학적 기반 위에 추상화처럼 완성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최종철 교수는 운문 번역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로미엣이 원수 가문의 이름임을 알고 원망과 사랑을 동시에 담아 부르짖는 줄리엣의 대사를 예로 들었다. 최 교수는 "로미오가 세 번이나 되풀이 되는 이유는 '로미오' 안에 사랑과 미움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라면서 "배우가 로미오를 세 번 외칠 때 각각 다른 감정이 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문으로는 압축하고 상징할 수 없는 운문의 핵심이 함축된 사례일 터이다. 

 

"오, 로미오, 로미오, 왜 그대는 로미오인가요?/ 아버지를 거부하고 그대 이름 거부해요/ 그렇게 못한다면 애인이라는 맹세만 하세요. "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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