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천 년 동안 죽은 자들이 우리에게 말해온 것"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5-12-05 17:34:23
알제리 내전 '검은 10년' 비극 강요된 침묵 깨고
생존 여성 화자 내세워 보편적 주제로 의미 확장
"가장 끔찍하고 힘든 죽음은 기억에서 잊히는 것"
'넌, 넌 한 권의 책이야. 진짜 책.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책, 무지한 자들만 모르는 알파벳이야.'
테러리스트들이 목 부위를 17cm가량 칼로 그은 자국, 양쪽 귀를 연결해 '미소'처럼 보이는 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딸을 두고 엄마가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 글은 지울 수 있지만 피부 위의 것은 지울 수 없다고, '오브'의 엄마는 맹세하듯 말하곤 했다. 알제리 내전 당시 한 마을이 몰살당할 때 겨우 생존한 오브는 이제 스물여섯 살이지만, 여전히 목에 튜브를 꽂고 살아가는 처지다. 후두부가 손상돼 '바깥 언어'로는 소통하지 못하지만, 뱃속에서 자라는 딸과 '안의 언어'로 내밀하게 교류한다.
2024년 알제리 작가로는 처음으로 카멜 다우드(1970~)에게 공쿠르상을 안겨준 장편 '후리'는 참혹한 내전의 실상과 이후의 삶을 뱃속의 생명에게 속삭이는 독백 형식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오브는 1999년 하드 셰칼라 대학살의 생존자로, 이슬람 무장단체(GIA)의 습격을 받아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참혹을 겪어야 했다. 그날 밤, 다섯 살이던 그녀는 목이 그어져 후두와 성대가 손상되었고, 평생 육성(肉聲)을 잃은 채 목에 튜브를 꽂고 숨을 쉬어야 하는 '말 없는 증인'이 된다.
오브의 몸에 새겨진 이 끔찍한 흔적은 국가가 강요한 '기억의 침묵'을 상징한다. 알제리 정부는 내전이 끝난 후 '국가 평화와 화해를 위한 헌장'을 통과시켜 내전 관련 범죄자들을 대거 면책하고, 과거의 폭력을 공적 영역에서 언급하는 행위 자체를 법으로 금지했다. '검은 10년'으로 불리는 알제리 내전(1991~2000)의 희생자는 20만 명이 넘는다. 이슬람구국전선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양측이 무력 충돌한 10년 동안, 무고한 민간인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했다.
'후리'는 이 침묵을 깨고 겨우 살아남은 여성 화자를 내세워 '망각'과 정면으로 맞서는 소설이다. 카멜 다우드는 알제리 당국의 추적을 받는 처지로, 2년 전 프랑스로 이주해 살고 있다. '후리' 국내 출간(류재화 옮김·민음사)을 계기로 방한한 그가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알제리 당국이 체포 영장을 두 건이나 발행해 놓은 상태여서 처음으로 유럽연합 국가를 떠나 인천공항에 내릴 때 솔직히 약간 겁이 났다"면서 "내전에서 살인을 저지른 자들은 매월 연금을 받고 저 같은 작가들은 항상 공격을 받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증언문학이라는 점에서 한국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언어를 다룬다는 면에서는 작가로서 공통된 점이 있다. 알제리와 한국은 역사는 다르지만 비슷한 트라우마가 있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저는 알제리인으로서 정치적 자유가 제한되는 나라에서 표현을 통해서 자유를 찾으려 했고, 문학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개인의 저항을 하고자 했다. 한국인 작가, 알제리인 작가라고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작가이자 한국인, 작가이자 알제리인, 이렇게 작가를 보는 시선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한국인 작가의 글을 읽을 때 저는 한국의 역사를 읽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이 작가가 한국을 기반으로 전 세계로 확장되는 공통 주제를 다루는지, 그 방식과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제도화된 망각'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가.
"내전은 식민 지배자에 저항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전이 일어나면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다. 모두가 서로 죽고 죽이고, 상처를 입고 입히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어느 순간에는 이 사슬을 끊는 방법을 찾기는 해야겠지만 아예 면책을 하고 망각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알제리에서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망각이 아니다. 가해자들을 사면하더라도 그들이 먼저 용서를 구하기를 원했고, 역사를 교육함으로써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사실 망각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처벌을 해도 기억은 계속 돌아오고 지난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문학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정부가 지우려고 하는 기억을 되살리는 프로세스는 지속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억을 금지하는 법이 있는 국가는 알제리밖에 없다. 가장 끔찍하고 힘든 죽음은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다."
-의로운 무슬림 남자들이 천국에서 보상으로 받게 된다는 아름다운 여성 '후리'를 지상에서 고통 받는 여성들로 설정한 배경은?
"이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의인들이 천국에 가면 만나게 되는 '후리' 대신, 매일매일 사랑하고 만나고 같이 교류하는 여성들을 다루고 싶었다. 알제리에서 길을 가다가 미용실 맞은편에 이슬람 사원이 있는 풍경을 보면서, 바로 가까운 곳에 여성들이 있는데 왜 죽기를 기다려서 이들을 만나야 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랍 국가들은 다수가 여성들을 감금한다. 여성들이 성장하고 교육을 받고 나면 베일을 씌우고 결혼시켜버린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이 그렇게 감금된 상태에서 생애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불행한 여성이 어떻게 행복한 아이를 키우겠는가. 전 국민이 불행한 국민이 되는 것이다. 여성들과의 관계가 치유되지 않는 한 아랍 국가들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후리'가 저 세상이 아니라, 이 현세를 살고 있는 여성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였으면 했다."
-카뮈의 '이방인'을 비튼 전작 '뫼르소, 살인사건'(2015 공쿠르 신인상)의 인물은 종교야말로 세상의 무게를 속이기 때문에 끔찍하게 싫어한다고 했다.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은?
"사실 저는 종교를 증오하지는 않는다. 종교는 일종의 대중교통 같은 건데, 나는 혼자서 신을 찾아 나서고 싶고 또 맨발로 내가 걸어서 찾아 나서고 싶다. 제가 싫어하는 것은 저에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정답을 강요하는 거다. 자신의 삶을 저에게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는 저만의 인생, 저만의 정답을 찾아갈 그런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종교를 싫어하지만 영성적인 면이 저에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둘의 차이는 신을 찾았다고 믿는 것과 신을 찾아다니지만 찾았다고 믿지 않는 태도이다. 종교가 세상의 무게를 왜곡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사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 세상을 가득 차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본다."
-일간지 기자로 시작해 작가로 변신했다. 저널리즘과 문학의 차이는?
"22세에 알제리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당시는 내전이 일어나고 있었고 많은 기자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해외로 도피하는 경우가 빈번해서 기자로 일할 자리가 많았다. 학살이 일어난 후에 그 장소에 가서 여성이 얼마나 죽었고 남성과 아이들은 얼마나 죽었는지 증인들과 이야기를 하고 통계를 내고 그때 상황을 묘사했다. 가령 200명이 죽었다, 이런 기사를 쓰고 나면 어떻게 잠을 자고 그 장면들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 끔찍한 죽임을 나는 당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지,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런 생각들이 마구 떠오르게 된다.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을 때 바로 문학의 역할이 시작이 되는 거다. 내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여성 교사 11명을 태운 버스를 테러리스트들이 공격해 운전기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살해했다. 테러리스트는 혼자 살아남은 운전기사에게 너를 죽이지 않는 이유는 네가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이 이야기를 퍼뜨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운전기사는 어떻게 살았을까. 이 운전기사가 그런 이야기를 전달하게 된다면 공포심을 확산하려는 테러리스트들을 위해 일을 하는 셈이 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는 형국이다. 이렇게 대답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소설을 쓰게 된다."
-정작 가장 많이 읽히기를 바라는 알제리에서는 금서로 지정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책이 출간되고 나서 여러 가지 반응이 있었는데 매우 강렬한 폭력적인 반응들도 있었고, 굉장히 감정적인 반응도 많았다. 이 책이 알제리의 상처를 건드린 것이 아닌가, 제가 건드렸던 상처는 뭔가 숨기려고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덧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알제리 정부에서 이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했다면 조용히 읽혔을 책인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반응이 거세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금서로 지정을 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독자들이 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60만 부 넘게 팔렸다. 국경을 지날 때 짐 검사를 하기 때문에 걸리지 않기 위해 책 표지를 바꿔서 저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독자들도 많이 만났다. 파리에서 독자들과 만날 때 말없이 뒤편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은 어김없이 알제리인이었다."
어둠을 지나온 소설의 말미는 희망을 말한다. 밝은 생명의 찬란한 현존이 벅차다. 이러한 결말을 제시한 것을 두고 카멜은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고통 이후, 죽음 이후에도 삶은 존재하고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확인했으면 좋겠다"면서 "망자는 산자들에게 자신을 닮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 죽고 나면 그 상실로 인해서 산 사람들이 더 이상 웃지도 않고 굉장히 차갑게 변하는 과정이 있다"면서 "망자들은 그들이 살지 못했던 인생을 두 배 세 배 더 잘 살라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설 속 '오브'는 죽은 언니에게 말한다.
'난 언니가 보내는 신호를 해독하지 못했어. 그 목소리를 너무 늦게 들어서 미안해. 천 년 동안, 이 나라의 죽은 자들은 우리에게 말해 왔잖아. 그들을 따라 죽지 말고, 살라고. 이제야 그 뜻을 이해해!'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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