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사랑이 하루 종일 너무 고생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3-10-20 16:59:11

연구서 '이승우의 사랑' 펴낸 원로비평가 김주연
'사랑' 테마로 생존 작가 한가지 테마 '첫' 천착
기독교적인 세계 어우러진 문학 깊이 본격 탐색
불완전한 인간이 쌓아올린 사랑의 본질과 구원

‘사랑은 주는 것인가, 받는 것인가. 사람에게는 사랑의 능력이 있는가.’ 원로 비평가 김주연(82)은 이 능력 여부는 사람의 사랑을 넘어서는 거대한 문제라고 보았다. 사랑에 관한 이승우의 소설들을 붙들고 원로 평론가가 자신의 생각을 투사해 ‘한 생존 작가의 한 가지 테마에만 머무른 첫 비평가’로 나섰다. 기독교적 세계와 어우러진 이승우의 작품세계를 사랑을 테마로 본격 해부한 그의 연구서 ‘이승우의 사랑’(문학과지성사)은 한국문학의 깊이를 보여주는 노작이다. 

 

▲퇴원 후 미뤄두었던 숙제를 끝낸 원로 비평가 김주연. 그는 "한 생존 작가의 한 가지 테마에만 머무른 첫 비평가가 아닌지 모르겠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는 머리말을 대신한 글에서 ‘지난여름 며칠간의 입원을 겪으며, 이제 생각들을 정리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아직 집필 가운데 있던 ‘이승우의 사랑’ 출간을 출판사와 상의했다고 썼다. 원고는 절반 정도 넘긴 상태였지만 마음이 조급했다. 이미 200자원고지 1000장 분량의 평론집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놓은 상태에서 채 집필이 끝나지 않은 이 원고 완성을 서두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평론집이야 언제든지 묶어내면 되지만 오래된 숙제를 먼저 끝내고 싶었다”면서 “비평력 60년 가까이 이르러 이제야 매듭을 제대로 지은 느낌”이라고 답했다.


김주연은 1966년 ‘문학’에 ‘카프카 시론’이 당선되면서 문학비평 활동을 시작한 이래 계간 ‘문학과 지성’ 동인으로 활동해 왔고, 숙명여대 독문과 교수로 정년퇴임을 했으며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역임한 평단의 원로이다. 팔순을 넘겨서도 집필을 쉬지 않고 사랑을 천착한 그를 용인 자택에서 만났다.

ㅡ사랑은 본질적으로 주는 건가, 받는 건가?
“주는 거다. 마지막 ‘야곱의 사다리’에도 언급했고, 우리 말에도 ‘내리사랑’이 있지 않은가. 받으려고 하면 대책이 없다. 짧게 주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경우가 없지 않지만 그게 진짜 사랑인 줄 알다가는 상처받기 쉽다.”

ㅡ인간의 사랑은 ‘자기애’라는 한계에 갇혀 결국 불가능한 것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인간들이 주고받는 사랑이란 결국 허상인 건가?
“한국의 문화 향수자들은 본질적인 것에 좀 약하다. 대중적인 용어로 문화의 본질을 환원시켜버리는 것에 습관이 돼 있다. 우리가 그림을 봐도, 음악을 들어도, 소설을 읽어도 그렇고 결국 본질적인 메시지가 뭔가 생각하는 거는 골치 아프다고 제쳐버리는 습관이 있어서, 단순한 메시지를 떠나 본질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이 책을 쓴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낄 거다. 인간의 사랑은 아주 복합적이다. 사랑이 갖고 있는 아주 복합적인 깊이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이 이승우 소설이고, 나는 이승우의 소설에서 그런 점을 이끌어내 주목을 한 사람인 거다.”


 



ㅡ‘자기애가 반성되고 부서지지 않는 한, 사람에게는 사랑의 능력이 없다는 가설은 그것이 영적 차원 아닌 세속적인 차원의 경우라 하더라도 진실에 가깝다’고 썼는데, 인간의 사랑은 완성될 수 없는 숙명인가.

“이승우가 이렇게 집요하게 사랑 이야기를 많이 썼을까 보니,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는 사랑이라는 게 불가능한 거라는 막연한 무언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인간적인 사랑을 해보려고 하는데 소설에서는 결국 안 된다. 한 번도 성공하는 경우가 없다. 그러면서도 이승우가 계속 사랑에 대해 쓸 수 있었던 동력은 일종의 자책감과 회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 말로 스트레스 같은 건 풀면 되지만 자책감이 싹 없어진다고 하면 그건 자책감이 아니다. ‘불가능의 가능’이야말로 구원에 이르는 종교적인 사랑일 것이다.”

‘이승우는 그리하여 인식하고, 소설을 쓴다. 사랑으로 목숨을 덮어 버리는 자들을 바라보면서, 소설을 쓴다. 이 세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 그것은 팩트이어야 하지만, 팩트가 아니기 때문에 소설로 쓴다. 그것은 새로운 신화일 수밖에 없다. 과연 세 사람은 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과연 '사랑'은 가능할까. 그것은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가. 이승우의 신화는 무거운 그 짐을 기꺼이 지려고 한다.’

ㅡ사랑은 결국 구원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건가?
“구원이라는 말은 내가 갖고 있는 원래 능력을 다시 돌려받는 상태를 이른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다 버리게 하고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원래의 본질이나 능력을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는 의미이다. 그 상태를 영원히 이끌어준다는 의미로 구원을 바라본다면, 기계적인 것으로는 한계가 있고 종교적인 것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적 인식에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데 이는 기독교가 지닌 사랑과 창조, 이 두 측면 때문이다.”

 

▲김주연은 "문학과 종교를 깊이 아우르는 책을 내는 것이 오랜 숙제였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ㅡ한국문학에서 종교와 문학을 아우른 비평 사례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 기독교인 작가는 굉장히 많지만 기독교적인 사상으로 소설이나 시를 쓰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작가가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과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기독교적인 세계를 자신의 문학에 투영해보는 경우를 나누어보자면, 후자의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 문학, 특히 비평이 관심을 가져야 될 지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냥 작품 하나하나 따라다니기만 하는 데서 이제 한단계 나아가야 되지 않겠는가.”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창세기 하느님 이야기를 중요 모티프로 이승우가 소설을 썼다.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 잔인한 요구를 한 하늘의 사랑은 엽기적이다.
“사실 내가 가장 애를 먹은 게 두 가지인데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식으로 결국은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승우가 그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인데 두 가지 다 나로서도 석연치 않다. 그래서 ‘야곱의 사다리’를 제시한 거다. 야곱이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잠이 들어서 꿈속에서 인간적인 노력으로 결국은 하늘 끝에 닿는 사다리를 만들었는데 알고 보니까 그게 하늘 끝에 닿은 게 아니라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사다리더라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나한테까지 내려온 거지, 내가 만들어서 오는 게 아니라는 자각 뒤에 별이 빛나는 가운데 야곱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걸 바라보는 장면은 아름답다. ‘야곱의 사다리’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가끔 인용하는데, 인간적인 노력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그러하다. 일단 지금 시점에서는 여기서 결론을 마무리한 거다.”
 

ㅡ문학에서 종교는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종교는 환원론적 논리의 세계고, 문학은 귀납적인 세계다. 그냥 경험적으로 이런 일 저런 일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보여주고 비평을 받는 게 문학이라면 종교는 먼저 답을 정해놓고 맞춰가는 세계이다. 종교소설을 쓰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고투와 고뇌의 한가운데에서 쓴 소설 안에 종교적인 것이 깃들었을 때 그 소설이 깊이를 지니는 것이다. 가장 탁월한 기독교 소설을 쓴 이가 도스토예프스키다. 그는 교회를 한 번도 안갔어도 부정을 통한 긍정의 세계를 보여줬다."

 

▲김주연은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하지만 미워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라며 "조금 더 본질적으로 사랑에 접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요컨대,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이승우의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결국 이 시대 이 현실 속에서 사랑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여기저기서 튕겨다닌다. 트로트 가사에서, 드라마 영화에서, 목사 신부들의 설교에서 사랑이 하루 종일 튕겨다니면서 고생을 한다. TV만 봐도 사랑을 말하는 트로트와 설교 시간이 지나면 증오에 가득찬 각종 범죄들이 난무한다. 사랑은 그만두고 증오라도 좀 감소되었으면 좋겠다.”

인간의 사랑은 근본적으로 ‘자기애’를 극복할 수 없어 완전할 수 없다는 언설이 뼈아프다. 신의 사랑만이, 구원만이 오로지 가능하다는 믿음을 받아들인다면 수월하겠지만, 인간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쪽을 선택한다면 김주연의 문장은 적잖은 위안을 준다. 원로 비평가의 사랑.

ㅡ사랑 그 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드시 사람 속에 들어가서 사람과 함께함으로써 그 기능을 발휘하는 독특한 힘인 것이다. 사랑은, 말하자면, 사람을 지독히 사랑하는 존재이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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