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돈' 조우진, 천의 얼굴이 가능했던 이유
홍종선
| 2019-03-11 14:05:03
'돈'의 사냥개 역할, 일만 하다 이혼 당한 남자로 설정
"배우, 더불어 살고 나를 찾는 방법으로 선택한 인생"
참 궁금한 남자가 있다. 신작을 개봉한다고 하면 이번엔 어떤 얼굴을 꺼냈을까 궁금하고, 영화를 보노라면 엔드크레딧과 함께 벌써 차기작이 궁금해진다. 출연 분량이 늘어가곤 있지만 그가 주연을 맡으면 얼마나 큰 '보는 맛'을 줄지 궁금하고 얼마나 더 기다리면 그날이 올지 궁금하다. 그래도 제일 궁금한 건 어떻게 매번 다른 얼굴을 꺼내는지, 배우로서 어떻게 준비해 왔으면 그게 가능한지 그 '과정' 혹은 '이유'였다.
지난 8일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영화 '돈'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조우진을 만났다. 그는 대답에 앞서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성격이 많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표현하지 않고 눌러 담아 왔던 것 같아요. 이제 그걸 끄집어 펼쳐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15년 무명 생활로) 의도치 않게 쌓여 왔던 걸 지금 쓰는 것 같습니다. 감정의 표현, 생각의 표현…들, 어설퍼서 감추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이걸 써먹겠지 하며 흘러오다 보니 그게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이터가 됐습니다."
조우진은 마치 두괄식 글처럼, 먼저 추상적으로 응집해 표현한 후 구체적으로 풀어냈다. 본인은 의식했는지 모르지만 거의 매번의 답이 그랬다. 누군가 내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기회, 누군가 내 연기를 끝까지 봐주리라는 보장이 없었던 무명 시절의 오디션이 몸에 밴 방식은 아닐까 혼자 짐작했다. 호응이 있으면 얘기를 더 펼쳐냈다.
"이 직업으로 살아가자면 경제활동을 다양하게 해야 했습니다. 집세 내고 밥값 벌어야 하다 보면 (연극)무대일만 해서는 힘들거든요.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지요. 자기일 하지 않을 때, 하고 싶은 일 못 할 때가 제일 괴로웠어요. 하지만 버텨내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게 나중에는, 좋은 작품과 인물 만났을 때는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서른 넘으면서부터 그런 생각 한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쌓여 온 것을 활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어떤 아르바이트요? 음, 노래방, 소주방, 비디오방 일단 방은 다 돌고. 레코드점 알바도 하고 물류창고 가서 일을 했습니다. 학비를 벌어야 해서 군대를 방위산업체로 간 덕에 공장 생활도 하고. 어쩌다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게 됐습니다. 제3자는 애처롭게 볼 수 있는데 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일을 하다 간혹 찾아오는 성취감도 연기하면서 다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했고요. 아, 연극 포스터요? 포스터 붙이는 거, 밥 설거지 청소 다 했지요, 별건가요. 지금도 그렇게 하는 분들 많잖아요."
조우진, 가슴은 뜨거웠지만 말을 차분했다. 15년 무명을 무슨 힘으로 버텼느냐고 묻자 특별할 것 없지만 배우 조우진의 연기철학이 엿보이는 답이 나왔다.
"저 스스로를 찾고자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한 번 사는데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나'를 발견하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어요. 그것을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연기자라는 직업이더라고요, 그게 또 제게 세상을 향한 끝없는 동경을 품게 만들었고요.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는 어떤 인간이고,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요즘엔 어른으로서의 역할도 고민하게 됐는데요. 제게 주어진 몫, 포지션에 대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나를 끊임없이 생각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건강했을 때도 있고 건강하지 않았을 때도 있었지만 투지라고 해야 할까요."
기자들이 경청하자,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어렸을 때 남 앞에 서는 것에 대해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반응에 대해 희열감을 느꼈어요. 그런 것들이 조금 조금씩 쌓여서 이쪽 길로 접어들게 된 것 같고. 스무 살쯤 되면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뭐 먹고 사나, 이 세상 어떻게 살아야 하나의 고민에서 어렸을 때부터 품었던 동경을 목표, 포부로 삼게 됐습니다. 성격이 외향적이고 활발하지 않았어요. 더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그게 사람의 본연의 자세가 아닐까, 사람이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 자신을 찾아야 했습니다. 무엇을 업으로 삼아서 먹고 살고 이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인가,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일이어야 하는데 그 안에서 나를 찾아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연기자를 택했습니다. 밖의 거를 가져와 안에 꾹 담아 연기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자기 안의 거를 끄집어내는 작업이라 자기 발견이 됩니다."
자기를 발견하고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세상을 품고자 했던 청년 조우진은 뜻한 바대로 배우가 됐고 배우로 살아왔고 이제는 대중이 그 이름을 기억하는 배우로 살고 있다. 아직은 계속해서 다른 얼굴을 꺼내는 비법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조금 더 얘기를 들어보자.
배우 조우진은 '돈'에서 소위 작전으로 주가조작을 일삼는 번호표(유지태 분)와 그의 하수인 격인 주식브로커 조일현(류준열 분)을 감시하고 추적하는 유일한 인물로, 영화에 극적 긴장감을 주는 금융감독원 수석검사 한지철을 연기했다. 누가 월급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부정한 방법으로 부자된 놈을 극도로 혐오하며 한 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는 성격에 '사냥개'라는 별명을 지닌 인물이다. 별명에서 오는 이미지대로라면 아주 독하고 잔인한 인물로 강하게 표현할 법한데 전혀 아니다. 옷부터 전문직 수석검사보다는 자영업 사장님에 가깝고 배우 조우진에게서 이미 본 적 있는 '뱀의 눈'도 활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끔 관객에게 웃음의 쉼표를 주기도 한다.
"별명이 사냥개니까 강해야 하나, 긴장감 높이는 인물로 세게 가야 하나. 그렇게 접근하면 제가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세게 한다기보다는 어떻게 사냥개가 되었나부터 고민했습니다. 두 가지 키워드를 생각했는데, 집요함과 워커홀릭입니다. 그런 인물이면 번호표와 조일현을 물고 안 놓겠다. 얼마나 사냥을 잘하는가는 장르적으로 바라봤을 때 인물이 책임지는 게 아니라 영화가 책임지는 것이라 생각했고요. 한지철은 생활밀착형 인물이어야 했어요, 장르적 인물보다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
"전에 보아 왔던 인물들의 데이터를 찾기 시작했어요. 일에 정말 엄청나게 매달리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과거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기 시작했죠. 늘 그렇게 작업하거든요, 제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구체적 면모를 찾습니다. 한지철에게는 가정이 있을까, 친구가 있을까, 한 사람이 떠올랐어요. 야근을 수당 따지지 않고 하고 자기 일에 집착하는 사람. 밤 10시, 11시까지는 기본으로 일하던 사람. 그 삶의 태도와 성향을 한지철에 녹이면 어떨까."
"한 가지 보탠 건. 금감원 경제관료라 해서 자기직업이 속한 단체의 우월감을 표현하기보다는 일반 직장인으로 보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대사를 보면 자기감정을 감추지 않았거든요. 결국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워커홀릭에 빠진 인물로 한지철을 구조화했고, 감독님께 아이디어를 드렸죠. 한지철이 일에 빠져서 이혼당한 인물이면 어떠냐. 감독님께서 '장면을 만들어 드려야 하느냐'고 하시기에 '아니다, 대사 하나만 넣겠다' 했죠. 그 애드리브가 어디냐면 딸하고 통화하는 장면이에요. '아빠 일하는데. 태블릿? 초등학생이 무슨! 엄마한테 사 달라 해!'였는데 '태권도야, 태블릿이야. 새 아빠한테 사 달라 해!'가 된 거죠."
캐릭터 얘기 하니 소풍 앞둔 개구쟁이 초등학생마냥 싱글벙글. 신난 와중에도 "박누리 감독이 영화 전체 그림을 파악하고 있고 판단이 빠른 분"이라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역으로 민폐가 될 상황이면 아이디어나 애드리브는 삼간다는 얘기일 터.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냥 잘하는 사냥개로 보이는 건 감독님께서 장면으로든 음악으로, 편집으로 만들어 주시는 거라고 믿었습니다. 우선 사람으로 납득이 돼야 관객이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이번 '돈'에서 조우진은 주연이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제 주연해야 하지 않아?'라는 말들을 건넨다는 건 배우 조우진 안에 더 큰 에너지 덩이가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영화 '내부자들' 조 상무 역할로 그야말로 강렬하게 눈도장을 찍은 지 이제 3년 반이 채 되지 않았다.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조우진은 "저를 알리는 '메뉴판' 하나 정도는 만들지 않았나 싶다"고 표현했다. 배우 조우진이 표현 가능한 연기의 스펙트럼이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그 광폭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 이제 그 메뉴판 가운데 어느 캐릭터를 더 깊이, 충분한 분량 속에서 펼쳐내면 좋을까. 배우 조우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화와 그것을 본 관객의 쾌감을 위해. 메뉴판 얘기부터 차근히 들어볼까.
"메뉴판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아직도 만들고 있고요. 죽을 때까지 연기한다고 했을 때 저한테 이런 메뉴들이 있습니다, 라고 펼쳐 놓은 과정이었다 할까요. 어쩌다보니 기대치도 높아졌고 분량들도 늘기도 했고, 물론 또 다른 색을 입혀야 하는 작업도 있겠지만 비슷한 결을 더 깊이 있게 또 확장해야 하는 작업들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초심이 중요합니다. 대사 한마디가 궁했던 때를 생각하면, 물리적으로 힘들다고 속으로 투정하거나 힘들어 하면 안 돼요. 어떻게든 주어진 대로 열심히 해 보자, 해왔던 것이든 한 것이든 새로 하는 것이든 더 많은 연구를 해야겠죠. 연기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이 있게 확장시키게 될 캐릭터는 무엇일까. 그 궁금증은 제게도 있습니다. 그 말의 연장은…늘 고대하고 있고요, 주어진 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의 소분류 발언이기도 하겠죠. 배우라는 게 선택받아야, 주어져야 무얼 할 수 있지 제가 이걸 해 봐야겠다, 한다고 해서 그 캐릭터가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요."
"(주연 할 때 됐다는 주변의 말에) 귀는 열고 있는데 마음은 스스로 닫고 있더라고요. 감사하죠, 감사한데…. 저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높아졌구나, 부담도 없진 않지만 받아들여야 할 터인데 초심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물 흘러가듯 둘 겁니다."
그럼에도 주연을 하게 된다면?
"분량과 주연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주연을 맡는다면) 고무적인 일이겠죠. 작품 전체를 이끌어갈 뿐 아니라 본인이 역을 맡은 인물도 책임져야 하고 현장도 끌고 가야하고. 주어진다면 결국 해야 하고 해내야 할 터인데, 어떤 더한 고민을 하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생각해 봐야겠죠. 다만 주연을 맡았을 때의 그 각오와 에너지는 '흔들리면 안 된다'일 것입니다. '저 스스로 배가시켜야 한다' '뭐든 도전하겠다'는 의식엔 변함이 없어야 하고요."
얘기 나눌수록 스무 살 적 초심이 배우 조우진의 가슴에 잘 저장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연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흔들림 없는 각오와 에너지'가 중요하다면 조우진은 그걸 가지고 있다. 끝으로 물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평범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하고 질문 받으면 집에 가서 혼자 생각해 봐요. (인터뷰라는 게) 영화 홍보 자리이기도 하지만 감사한 게 돌이켜보는 기회가 됩니다. 얼마 전에도 이런 질문 받고 느꼈고 지금도 느낀 건데, 어떻게 내가 이렇게 다양한 작품을 하게 되고 캐릭터들을 하게 됐을까. 평범함입니다. 그래서 감독님들이 이것도 입혀 보고 저것도 입혀 보고 그런 과정이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얘기, 예전에 많이 들었어요, 뭘 맡겨야 할지 모르겠다. 단점이 장점이 됐다고 해야 할까요."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배우 조우진. 대한독립군 최초의 승리 봉오동전투, 그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를 그린 영화 '전투'가 촬영을 끝내고 개봉 대기 중이다. 유해진, 류준열과 어떤 앙상블을 이뤘을지 기대된다. 공유가 전직 정보국 요원, 박보검이 영생의 비밀을 지닌 인류 최초 복제인간을 맡은 영화 '서복'에도 최근 캐스팅 됐다. 복제인간을 추적하는 핵심인물이다. 영화 '강철비'에서 정우성이 연기한 스나이퍼 엄철우를 끈질기에 추적,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2'의 액체금속인간 T2000을 연상케 했던 최명록 캐릭터가 조우진 자신에 의해 깊이 있게 확장될 것인지 궁금하다.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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