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생충' 봉준호 "카오스-취조장면 찍을 때 피 거꾸로 솟아"
홍종선
| 2019-06-03 13:18:12
봉 테일 대신 카오스 봉 "복합장르‧카오스 계획하지 않는다"
봉준호 "냄새, 인간에 대한 예의…날카롭게 파고들고 싶었다"
"이선균-조여정의 애정 신, 야한 듯 야하지 않은 긴장 추구"
"제가 처음인 것도 아닌데… 쑥스럽습니다."
한국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거머쥔 봉준호 감독의 말이다. 김도산 감독의 활동사진 형식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1919년 개봉한 지 100년. 한국영화사에 의미 있는 선물을 안긴 감독 봉준호였지만 때로는 멋쩍은 웃음으로 때로는 소년 같은 쾌활함으로, 세계적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사실은 이미 잊은 듯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먼저 20년간 함께 성장해 온 봉준호-송강호 두 사람이 '기생충'(제작 ㈜바른손이앤에이, 배급 CJ엔터테인먼트)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의 피날레를 장식한 일에 대해서 기자들의 질문과 칭찬이 이어지자 쑥스러워했다. 배우와 대상 수상무대에 함께 서고 소감 마이크를 넘긴 것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배우 송강호를 넘어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에 대한 존경을 보여 주는 개념 있는 행동이었다. 예정하고 계획했던 장면이었을까.
"상을 받게 되나 보나, 폐막식에 오라고 연락을 주니까. 만약에 상을 받으면, 음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으니까 예정한 일이라고 봐야겠죠? 그런데 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처음은 더더욱 아니거든요. 과거 칸 시상식을 생각해 봐도 프랑스 감독 로랑 캉테의 '클래스'라는 영화가 2008년도 그랑프리였는데, 감독과 출연했던 고교생 수십 명이 함께 무대에 올라갔어요. 당시 배우 숀 펜이 심사위원장이었는데. 캉테 형님 집에 가서 밥도 먹었는데. 배우나 프로듀서가 같이 올라가는 경우도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올라갔는데, 이 위대한 병풍이 가만있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원래 카메라 뒤에 있는 게 저인데, 강호 형님 말도 들어보고 싶었어요. 홍경표 촬영감독도 현장에 있었다면 같이 올라가고픈 분이죠. 저랑 벌써 서너 편, 십년 넘게 해 왔는데 이번에도 큰 도움이 됐죠. 공간과 실내구조를 디자인한 이하준 미술감독, 의상 최세연, 분장 김서영…이루 말할 수 없게 수상의 기쁨을 함께하고 싶은 분들이 많죠. 홍경표 감독이 태국에 있었어요, 다음 작품 프리프러덕션 때문에. 태국에서 축배 사진 보내고. 다른 배우나 스태프 분들도 각지에서 축배 드는 사진이 저와 강호 형에게 도착했어요. 서울로 돌아간 배우들도 삼삼오오 사진을 보내고 이선균 배우는 집에서 혼자 캔 맥주 마시는 축하 사진을 보냈고요. 저 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처음인 것도 아니고 혼자 한 일도 아닌데 칭찬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민망해 한 것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표준근로계약 준수다. 배우 송강호의 "밥때 지키는 감독" 발언까지 더해지며 감독 봉준호에게는 미장센 귀퉁이까지 챙기는 '봉테일'이라는 별명에 '올바른 어른' 이미지까지 보태졌다.
"우리영화랑 제가 무슨 표준근로의 아이콘이 돼 버렸는데, 제가 아무리 반복적으로 말해도 자꾸 저에게로 수렴이 돼서. 영화산업노조 분들이 그 고생을 해서 합의를 이끌어 내고 제작사, 투자사 분들이 응대해 주고. 그 오랜 역사를 통해 이뤄진 일인데 우리가 무슨 깃발 든 것처럼 비춰지고 있어요, 이미 짜인 흐름에 동참만 한 거죠. 실제 주역인 분들이 '쟤들이 왜 생색을 내지' 하실 것 같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수상 관련 말고 영화 자체의 얘기를 해볼까. 2년 전 '옥자'로 칸 경쟁부문에 진출하고도 영화가 상영되는 곳이 오프라인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라는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이슈의 중심에 서면서 작품 자체에 대한 주목을 받지 못 한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봉준호 감독이니 말이다.
"영화 '옥자' 때는 칸영화제 측과 넷플릭스의 논쟁이 큰 관심을 받았죠. 논쟁을 자기들끼리 정리한 후 초청해야지, 사람 불러놓고 자기네끼리 싸우나 싶은 민망함도 있었지만 이슈몰이에 성공한 것으로 만족하고요. 그보다는 스트리밍 얘기하느라 영화 자체에 대해 차분히 얘기할 기회가 없어 아쉬웠어요. 이번엔 그런 게 없어 좋아요, 가장 클래식한 방법으로 만들어 개봉하는 거니까요. 황금종려상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폐막식 낮에 다양한 상들이 시상되잖아요. 프랑스 아트하우스극장연합에서 투표해서 주는 상을 받았어요. 그게 상징적인 게, (온라인 상영 '옥자'의 경쟁부문 진출에 문제를 제기했던) 극장연합이 준 상이라는 거죠. 얘네가 일부러 이러는 건가, 격려하는 건가, '다시는 스트리밍영화 하지 마라' 단속하는 건가. (극장으로) 돌아온 걸 환영한다는 뜻으로 읽혔어요."
영화 비평과 산업 관련 소식을 전하는 미국 웹사이트 인디와이어는 영화 '기생충'에 대해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라는 짧지만 힘 있는 문장으로 호평했다. 가족드라마로 시작해 코믹사기극을 거쳐 잔혹극으로 마무리되는, 다양한 장르가 복합적으로 중첩된 '기생충'의 장르를 무엇 하나로 규정하려 애쓰기보다 '봉준호 장르'라고 명명하자는 제안에 다름없다. 봉준호 감독 역시 "장르 왈가왈부할 필요 없다, 드디어 스스로 장르가 되었다고 한 인디와이어의 평가가 가장 기뻤던,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면서 "편리한 인용구가 생겼달까, 이 인용으로 간편하게 해결 보리라 생각했다"며 소년처럼 즐거워했다. 이러한 '봉준호 장르', 변화무쌍한 장르의 변주는 계획된 일일까.
"장르는 계획하지 않고 시작합니다. 인물과 사건을 따라갈 뿐이죠. 삶에도 장르가 있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지 않나요. 직상상사에게 당하는 낮에는 호러, 애인 만나는 저녁은 멜로…. 24시간을 살아도 그러한데 영화 스토리를 한 가지 톤으로 쓴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어차피 이 가족들에게 펼쳐지는 상황이 있는 거죠. 인간의 감정이 하나여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복합적 감정이죠. 슬픈데 웃기기도 하고 무서운데 애잔하기도 하고. 저는 오히려 2시간 내내 하나의 장르가 지속된다거나 희로애락 중 하나의 감정으로 가는 게 더 어색할 것 같아요. '기생충'의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무슨 장르, 계획한 건 없어요."
한 편의 소동극, 도미노가 무너지는 듯한 혼돈이 영화적으로 변주된 '기생충'. 따지고 보면 '기생충'뿐 아니라 '플란다스의 개'로부터 '살인의 추억' '마더' '괴물' '설국열차' '옥자'까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엔 늘 혼돈, 카오스의 소용돌이가 인간의 삶을 휩쓸고 지나간다. 개든 범인이든 현서든 옥자든 찾으러 다니며 감추려는 자와 맞서는가 하면 계급에 따라 나눠진 선을 넘어 '가진 자'의 세상으로 잠입하는데, 공통점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죽을힘을 다한다'는 것이다.
"카오스, 그걸 즐기는 느낌이 있어요. 이건 내 분야야! 카오스에 더해 취조 장면을 찍을 때 온몸의 혈관이 좋은 의미로 거꾸로 솟아요. 혼돈, 무질서 상태를 '기생충'에서 찾자면 일테면 '짜파구리' 시퀀스죠. 카오스에 음악 시퀀스를 만들 수 있는 게 장르영화의 재미고요."
취조 장면 얘기를 하니 '살인의 추억'을 비롯해 봉준호 감독 영화 속 어두컴컴한 지하실과 감금의 장소들이 눈앞을 스친다. 그리고 혼돈에 더해진 음악. '기생충'을 예로 들자면 박 사장(이선균 분)네 집 거실을 울리는 이탈리아 칸초네는 혼돈의 상황에 질서를 부여하거나 인물의 감정을 대변하진 않지만 관람의 재미를 돋운다. 봉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나훈아 격이라는 지아니 모란디(Gianni Morandi)의 노래인데, 'In ginocchio da te'(그대 앞에 무릎을 꿇고)라는 제목이 기막히게 상황에 맞아 떨어지면서 보는 이의 흥취를 배가시킨다.
"이창동 감독이나 미카엘 하네케 감독(영화 '피아니스트' '늑대의 시간' '아무르' 연출)의 영화에서 나올 순 없잖아요. 두 분 모두 존경하지만 (영화의 결이 다르니까요). 장르적 활기를 불어넣는 것, 난장판 깽판을 휘몰아칠 수 있는 게 장르영화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걸 즐기고요."
"그런데 이게 또 다 계산하고 의도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칸초네만 해도 거실 소품에 LP가 있었고, LP 판 돌아가는 걸 찍어 볼 생각으로 하나 꺼내 틀었는데. 노래가 기가 막혀요, 그래서 저작권 해결하고 영화에 넣게 된 거죠."
얘기를 들을수록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쥬라기공원'을 인용하자면, 혼돈은 무질서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안정적 상태다. 되레 인위적 질서를 부여하는 게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인위적으로 복합장르를 의도하고 혼돈을 계획한 게 아니라 인물과 사건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장르영화에 재미를 느끼게 하는 혼돈에 얹은 음악 역시 소품으로 있던 LP를 틀었다가 우연히 발생한 결과다. 말하자면, 혼돈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혼돈 자체인 영화로 완성된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카오스를 우리가 흔히 '혼돈'이라고 해석하지만 그리스어로 '캄캄하고 어두운 공간'이며, 그리스인들은 이 공간에서 암흑과 밤을 비롯해 만물이 발생했다고 믿는다. 카오스, 만물발생 이전의 원초 상태를 즐기고 이것을 영화에 담아낼 때 피가 거꾸로 솟는 기쁨을 느끼는 봉준호 감독. 그는 '플란다스의 개'로부터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유달리 캄캄하고 어두운 공간을 좋아하고, 지하실이든 괴물의 은신처든 설국열차 안이든 그 안에 자신의 카메라를 들인다. '컨트롤 악마'로 곡해될까 우려돼 봉준호 감독 자신이 싫어하는 별명 '봉테일' 대신 '카오스 봉'으로 부르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분위기를 바꿔 경쾌한 얘기를 꺼냈다. 영화 '기생충'에는 '은교' 이후 오랜만에 눈을 크게 뜨게 하는 애정 신이 등장한다. 노출 없이도 얼마나 친밀하고 농염할 수 있는가를 봉준호가 보여 준다. 그리고 감독의 의도를 명확하게, 온몸으로 표현해 낸 두 배우는 이선균과 조여정(연교 역)이다. 이선균의 작용, 조여정의 반작용, 그리고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토록 치명적일 수가 없다. 보다 중요한 건 이 애정행위가 일어난 장소와 타이밍이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그동안 지켜져 온 계층 간 '사회적 거리'가 무너지고 가장 가까워진 위기와 긴장의 순간, 과연 이 장면에서 감독 봉준호는 무엇을 보여줄지 정말이지 궁금했다. 그리고 허를 찌른 애정 신과 사적 뒷담화. 부부가 나누는 행위에서도 말의 내용도 무릎을 치게 한다.
"(탁자를 탁 치더니) 칸에서부터 여기 이 순간까지, 아무도 이 얘기를 안 해 주셔서 아쉬웠어요."
이 장면에 대한 칭찬이 고팠다는 투정이 아니었다. 일면 적나라한 질문을 하는 기자의 민망함을 덜어 주는, 질문자를 향한 배려의 칭찬이었다.
"일단 부부잖아요. 부부의 리얼한 행위, 가감 없이 하자, 신음 소리만 헛헛하게 내지 말자고 두 배우와 얘기했지요. 각자의 캐릭터가 드러날 기회였어요, 야함을 목표로 달려가는 영화는 아니니까요. 지적이고, 매너 있고, 신사적이고 선균 씨가 갖고 있는 좋은 이미지들이 있는데 그 위에 또 하나의 레이어(층)가 얹어지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일부러 상스럽게 말하고 시계방향 어쩌고 하는 둘의 그런 모습이 영화 전체의 톤과 맞아떨어진다고 봤습니다."
"사실 '기생충'이 남의 사생활을 근거리에서 목도하는 느낌의 영화잖아요. 대단한 사건은 아닐 수 있는데, 영화의 90%가 두 개의 집에서 이뤄져요. 집이라는 건 사적인 공간이죠. 타인들과 유지하는 디스턴스(distance, 거리)가 있고 그걸 지키는 게 기본적 예의인데. 카메라가 항상 선을 넘고 있죠. 부담스러우리만치 가까이 목도하는 영화인데, (애정행위) 장면은 그 정점에 있죠.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을 해요, 부부끼리 하는 말이니 문제없잖아요? 그런 내밀한 상황들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야한 듯 야하지 않은 텐션(tension, 긴장). 조여정, 이선균 배우와 많이 상의했고, 시간 허비 안 하고 쑥 찍었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냄새가 중요한 영화다. '짜파구리'의 냄새가 어디선가 나는 것만 같고(4DX 영화로 상영한다면 꼭 풍겨야 할 것만 같은), 기택(송강호 분)과 충숙(장혜진 분) 부부와 그의 자식들 기우(최우식 분)와 기정(박소담 분)에게 밴 꿉꿉한 반지하 냄새가 코끝을 맴도는 것 같은 영화다.
"날카롭게 파고들고 싶었습니다. 계급 간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더 넓게 보면 인간에 대한 예의에 관한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 마지노선이 붕괴됐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는 영화죠. 그 예의라고 했을 때, 냄새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 30~40년차 부부가 아닌 담에야 부부 간에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잖아요. 최소한의 거리가 무너진 상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엄청 가까운 거리에 놓이게 되는 상황,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거리. 냄새가 화면에 보이는 것처럼 찍고 싶었어요. 비주얼이나 사운드가 아니라 배우들에 의존해 대사와 표정에 의해 표현되어야 했기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영화 '기생충'을 개봉 후 나흘 동안 336만 명이 찾았다. 한국 최초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소식에 더해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더해지며 개봉 전부터 예매를 서두르거나 주말에 보겠다고 다짐하는 이들이 속출한 결과다. 블로그나 댓글을 통해 일부 아쉬움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지만 관객이나 평단이나 10점 만점에 9점 이상의 후한 점수로 반응하고 있다. 과연 '기생충'의 최종 관객 수는 얼마일지 궁금하다. 국내외 언론의 기대처럼 한국 최초의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또는 감독상이나 각본상을 단숨에 수상할 것인가, 자못 궁금하다.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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