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부채지배의 시대···통화금융정책 여명지대에 해법 있다
UPI뉴스
go@kpinews.kr | 2023-10-05 11:20:38
대안정기 통화지배는 일시적 영광···당면도전 대처할 정책역량 재구축해야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전례 없는 경계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국가부채도 큰 폭 늘어나고 있다. 3대 경제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가 동시에 부채지배의 난국에 직면한 상태다. 하지만 그 진단과 해법을 놓고 통화당국과 금융당국 간에 상당한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로 이루어진 민간부채 증가에 기인하는 금융지배(financial dominance), 그리고 국가부채 증가에 기인하는 재정지배(fiscal dominance)가 동시에 전개되는 양상이 가시화하고 있으므로 정책당국의 올바른 통찰력과 행동철학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과다한 민간부채에 허덕이는 금융시장 상황으로 중앙은행이 거시경제정책적 행동을 취하는 데 제약을 받을 수 있는 금융지배, 국가부채 누적으로 중앙은행이 정부의 재정지출 편의를 봐주게 되는 재정지배는 통화정책에 큰 짐일 수밖에 없다.
돌이켜 보면 1980년대 중반 이후 상당 기간 낮은 인플레이션과 견실한 경제성장을 구가한 이른바 대안정기(great moderation)에 정책결정자들은 일을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당시 적지 않은 행운과 함께 만들어진 글로벌 경제의 우호적인 공급요인 등이 성공적인 통화정책 스토리를 쓰는 데 도움을 주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낮은 금리와 과하지 않은 국가부채는 중앙은행이 금융시장, 재정정책과의 상호동학 등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통화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다. 예컨대 중앙은행이 정책 결정에 있어 금리 상승이 국가부채를 증가시키거나 디폴트 위험을 높일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비전통적 양적 완화 프로그램과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확대 등과 같은 획기적인 정책을 통해 총수요를 진작시킴과 아울러 금융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야말로 통화지배(monetary dominance)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안정기 이후 구가한 통화지배의 시대는 일시적 영광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세계는 바뀌었고 자애로운 공급요인들을 형성했던 여건도 크게 흔들렸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높아진 지정학적 위험, 심화하는 포퓰리즘과 정치 양극화 등이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했다. 정치와 재정의 영역에서 풀려야 할 문제가 통화정책을 압박했다. 제반 환경이 급변하면서 어느새 통화지배의 시대는 가고 감당하기 쉽지 않은 금융지배와 재정지배의 상황에 와 있다.
그렇지만 당면한 도전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역량에 대한 확신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과거 누렸던 성공의 영광은 상당 부분 행운에 힘입은 것이며 정책역량이 완전하지 않은 가운데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시대 환경이 있었음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역량 재구축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정책역량의 재구축은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가. 제도와 운영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 먼저 통화정책, 금융정책 등 결정자들에게 일원적이고 안정적인 목적함수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들에게 숙명적인 인식·지식의 한계 문제(knowledge problem)와 아울러 인센티브 문제(incentive problem)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통화지배 시대가 아닌 현재의 부채지배 문제를 바라보는 정책의 기술적, 일상적 측면은 상존하는 인식·지식의 한계 문제에 필연적으로 마주침으로써 당국 간 상호 이견과 논쟁의 대상으로 흐르기 쉽다. 이론과 실무의 많은 부분에서 제도가 문제임을 헤아리고 있으면서도 정책을 바라볼 때는 이 기본적인 통찰력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정책결정자는 이론 모델에서 가정하는 완벽한 입안자가 아니라 제도에 종속되어 때로는 정치적 인센티브 등에도 반응하는 배우이고 플레이어이며 그 제도와 인센티브가 정책의 선택과 결과에 영향을 주게 됨을 종종 잊는 경향이 있다.
당면한 부채지배 문제는 특정 정책당국만의 일원적 목표함수로 다뤄질 수 있는 사안의 범위를 벗어난다. 낮고 안정적인 인플레이션, 견고하고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사회 복리(social welfare), 진정한 금융안정 등 복합 정책목표와 상호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유관 정책당국의 포괄적이고 고도로 조화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하며 이를 견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의 설계가 긴요하다.
인센티브 설계의 한 방향은 거버넌스의 개혁에서도 그 단초를 모색할 수 있다. 통화정책, 금융정책 등이 상호작용하는 정책의 여명지대(zone of twilight)에서 제도와 인센티브의 설계, 그리고 거버넌스의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정책기구(apparatus)에 대한 포괄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하이에크가 말한 대로 정책기구의 공공선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주의를 기울이고 목표와 수단 간 피드백 과정을 통찰력 있게 살핌으로써 시스템의 강건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다.
평화로운 통화지배 시대에 유효했던 거버넌스의 한계는 그동안 꾸준히 노정되어 왔다. 진화하는 정책 환경과 패러다임에 상응하는 전문화된 독립적 분권화(expertized independent decentralization) 거버넌스의 설계를 그 성찰의 출발선에서 고려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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