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해싯이 美연준 의장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인 이유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hongkyooncho@korea.ac.kr | 2026-03-09 11:23:19

유력 후보였던 케빈 해싯, 중앙은행 총재 부적합 반면교사 사례
중앙은행 지적 자산·경험을 정책으로 연결하는 리더십 중요

중앙은행 총재의 리더십에는 모범사례가 있는가 하면 총재에 부적합한 반면교사의 사례도 있다. 차기 미국 중앙은행 총재로 지명된 케빈 워시와 마지막까지 유력한 후보로 경쟁을 벌였던 케빈 해싯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바로 후자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해싯은 이 시대 중앙은행 총재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반면교사의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다.

 

▲ 케빈 해싯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AP 뉴시스]

 

발단은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연구 보고서다. 이 연구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에 부과한 관세의 약 90%를 미국 기업과 가계가 부담했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월별로 보면 2025년 1월부터 8월까지 관세 인상분의 94%, 9월부터 10월까지는 92%, 11월에는 86%를 미국 내에서 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 부담이 외국에 전가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트럼프는 2월 미 의회에서 행한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을 통해 외국이 부담하는 관세는 소득세 제도를 실질적으로 대체하여 미국 국민의 재정적 부담을 크게 덜어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트럼프는 1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글에서도 관세 부담은 압도적으로 외국 생산자와 중간상에게 전가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뉴욕 연준의 연구 보고서에 대한 해싯의 반응은 격렬했다. CNBC 인터뷰에서 이 보고서를 미국 중앙은행 역사상 최악의 연구라고 비난하며 연구자들이 징계를 받아야 마땅하다고까지 말했다. 경제학 첫 학기 수업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분석에 기반하고 있는 매우 편향적인 결론이라고 깎아내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본인이 총재가 되려고 했던 세계 최고 수준 중앙은행의 연구 역량 자체를 전면 공격한 셈이다. 뉴욕 연준은 해싯의 발언에 대해 일체 논평을 거부했다.

백악관 또한 뉴욕 연준의 관세 보고서는 현실과 맞지 않고 어떠한 검증에도 견딜 수 없는 연구라며 해싯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무역·관세정책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쿠시 데사이 백악관 부대변인은 지난 1년 동안 미국 평균 관세가 크게 인상되었음에도 인플레이션은 둔화되고 실질 임금은 상승했으며 경제 성장률은 오히려 가속화되었다며 중앙은행 연구 결과의 신뢰성을 부정했다.

그러나 관세 부담이 미국 소비자에게 상당 부분 전가된다는 연구는 뉴욕 연준이 유일한 것이 아니다. 독일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로 꼽히는 킬(Kiel) 세계경제연구소 또한 관세는 미국인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며 미국인이 그 부과액의 약 96%를 부담한다는 분석을 1월 내놓은 바 있다. 국제무역 이론과 여러 연구에서도 관세의 상당 부분이 수입국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현상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문제의 본질은 연구 결과의 옳고 그름 이전에 있다. 해싯의 발언은 11월 중간선거 등 정치적 목적을 의식하여 중앙은행의 연구 기능 자체를 공격하는 모습으로 비친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측근이자 차기 연준 의장 유력 후보였던 해싯의 이와 같은 중앙은행에 대한 맹렬한 비판은 생활물가 상승에 대한 유권자들의 우려를 완화시키는 등 선거에서 유리한 경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점에 나왔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그의 발언은 경제정책 논쟁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선거 정치의 연장선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해싯이 뉴욕 연준이라는 미 중앙은행 주요 조직에 면면히 깃들어 있는 경제 분석 능력과 조사연구 전문성을 부정하는 태도는 얼마 전까지 본인이 지망했던 중앙은행 총재직에 요구되는 리더십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중앙은행은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데이터, 조사연구, 정책 수행 등을 통해 형성된 지적 자산과 경험(institutional memory)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독립적 국가기관이다. 통화정책 결정은 특정 개인의 주관이나 정치적 계산에 치우친 판단이 아니라 조직으로서의 지적 자산과 경험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 점에서 역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연준 의장들의 특징은 분명하다. 예컨대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개인적 직관으로 유명했지만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연준 내부의 축적된 연구 분석을 적극 활용했다. 1990년대의 생산성 혁명에 대한 그린스펀의 판단 역시 주관적 직감이 아니라 부문별 데이터와 분석을 토대로 형성된 것이었다. 그린스펀 의장의 남다른 능력은 특정 경제이론 등을 주장하는 데 있지 않았다. 연준 조직 내부에 축적된 연구분석력을 바탕으로 올바른 성찰을 이끌고 현실 속의 정책 판단으로 연결하는 역량에 있었다. 즉 조직의 지적 자산과 경험을 이끄는 능력이다. 중앙은행 총재의 리더십은 바로 여기서 판가름나게 된다. 중앙은행 총재는 경제학 교과서를 집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 역시 교과서적 이론가가 아닌 위기 대응형 중앙은행가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금융시장이 붕괴 위기에 몰렸을 때 파월은 연준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정책 패키지를 내놓았다. 이는 경제이론이 아니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에서 축적된 연준의 정책 경험이 작동한 결과였다. 파월의 강점은 연준 내부의 정책 프로세스와 위기 대응 메커니즘, 즉 조직의 지적 자산과 경험을 중시하는 판단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교사의 측면에서 해싯의 발언은 역설적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정치적인 충성심이나 단기적 정치 계산 등에 따라 중앙은행의 연구분석력을 공격하는 태도는 통화정책 기관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 총재 유력 후보였던 인물이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은 오히려 중앙은행 리더십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도록 하는 계기를 만든다. 중앙은행 조직 내부에서 개진되는 다양한 연구와 견해를 존중하고 종합 분석하며 정책 판단으로 연결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워시 역시 여러 정책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인공지능(AI) 기반 생산성 향상이 금리 인하 여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견해, 그리고 비대해진 연준 대차대조표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논쟁의 정답을 혼자서 제시하는 것이 그의 역할은 아님은 당연하다. 워시 차기 연준 의장이 직면한 진정한 시험대는 그가 주장하는 AI 생산성 낙관론이 맞는지 대차대조표 축소가 필요한지에 대해 단일한 답을 내는 데 있지 않다. 워시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동 이슈에 접근함에 있어 중앙은행의 지적 자산과 경험을 통찰력 있게 살피며 이끄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연준이라는 조직이 축적해 온 연구와 경험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활용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정책 결정자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워시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이론을 주창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의 역량을 북돋우며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있다.

해싯이 보여준 모습은 그 반대편에 있는 사례이기에 교훈을 남긴다. 중앙은행 총재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적 충성심이나 계산이 아니라 조직의 지적 자산과 경험을 이끄는 리더십이라는 점이다. 이 교훈은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중앙은행 총재 리더십은 한국에서도 오랜 기간 관심사가 되어 왔다. 총재가 정부 정책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쟁이다. 하지만 중앙은행 총재 리더십 논쟁의 본질은 개인의 정치적 성향 그 자체라기보다는 중앙은행 조직의 전문성과 조사연구 및 정책 역량을 얼마나 존중하고 발전시키는가에 있다.

그런 점에서 해싯의 반면교사 사례는 한국에도 시사점을 준다. 중앙은행 리더가 조직의 조사연구와 정책 경험을 무시한 채 다른 요소에 따라 흔들릴 때 중앙은행의 신뢰는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특히 지금과 같은 대전환의 시기에는 중앙은행의 지적 자산과 경험이 정책 대응의 핵심 원동력이 된다. 결국 중앙은행 리더십의 핵심은 조직이 지닌 지적 자산과 경험을 어떻게 이끌어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 판단으로 연결하는가이다. 축적된 데이터, 조사연구분석, 위기 대응 정책 경험 등이 모여 있는 중앙은행을 이끄는 제도적 리더(institutional leader)로서 발휘하는 총재의 역량이 중요하다. 중앙은행의 신뢰는 그러한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다.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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