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고 정답 유출사건, 풀리지 않은 의문들
오다인
| 2018-11-26 11:03:05
전 교무부장 측 "정황 말고 증거 내놔라"
"죄질이 나쁘다."
학부모 A씨는 말했다. "같은 부모라 이해가 된다"면서도 "정답만 외운 건 악질"이라고 했다. 문제를 풀어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A씨 딸은 서울 강남 숙명여자고등학교에 다닌다. 숙명여고는 전 교무부장 B(53)씨가 재직 기간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쌍둥이 딸들에게 정기고사 정답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총 5번의 정기고사. B씨는 지난해 6월(1학년 1학기 기말고사)부터 올해 7월(2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 시험 정답을 빼돌렸고, B씨 딸들은 이를 암기해 해당 기간 전 과목 10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는 게 경찰의 결론이다. 이들 3명은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오른 것'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경찰 수사결과 발표에 빈 부분이 있기에 나온다. 유출 경로다. 경찰은 압수수색, 디지털 포렌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이같이 판단했다면서도 B씨가 어떤 경로로 정답을 유출했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정답 유출이 의심되는 정황 증거들을 다수 확보'했다는 발표만으로는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남아 있다.
디지털일까, 아날로그일까?
숙명여고 관계자에 따르면, 정기고사 시 숙명여고 출제교사(①)는 △이원목적분류표 △시험지 △(정답을 표기한) OMR카드 등 3가지를 문서로 작성해 교과주임(②)에게 제출한다. 이원목적분류표는 학습 내용과 행동을 평가하기 위한 표로, 배점과 정답이 함께 표기된다. 교과주임은 오타 등을 확인한 뒤 교무부장(③)에게 넘기고, 교무부장은 교감(④)에게 최종결재를 받는다.
네 사람 결재가 끝나면 복사한 뒤 고사실 캐비넷에 보관한다. 보통 1~2주가량 걸린다. 캐비넷 열쇠는 교과주임과 교무실 보조직원이 1개씩 갖는다. 출제교사는 시험 당일 또는 이후 교내 네트워크상의 '고사계' 폴더에 문서를 PDF 파일로 올린다. 이 폴더는 교내 모든 교사가 공유하는데, "시험 전에 문서를 올리는 교사들도 종종 있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정답 유출 의혹이 일자 교무부장이었던 B씨는 학부모들에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1분만 봤다"고 해명했다. 학부모들은 이 해명에 더 의구심을 품게 됐다고 했다.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었다는 걸 실토한 셈이라는 것이다. B씨 자리 뒤에는 교무실 캐비넷이 있는데, 이 캐비넷에 무엇이 보관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B씨 자리는 폐쇄회로(CC)TV의 시선도 닿지 않았다.
B씨는 답안지를 손으로 옮겨 적거나 복사하거나 사진기로 촬영하는 등의 방법으로 정답을 빼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학부모들은 1년여에 걸친 5번의 정기고사 동안 모든 과목의 정답을 실수 없이 베껴야 했으므로 예정에 없던 야근 등을 하면서 정답 등이 적힌 문서를 접했을 것으로 본다.
왜 컴퓨터를 바꿨을까?
B씨는 지난 7~8월 컴퓨터를 폐기했다. 경찰 수사 전이지만 학부모 사이에서 의혹이 증폭된 시기다. 하드디스크는 물리적으로 훼손한 뒤 버렸다. 교육청이 수사를 의뢰한 뒤에는 쌍둥이 딸들의 컴퓨터도 바꿨다. 손으로 옮겨 적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유출했다면 컴퓨터를 바꿀 필요는 없다. 유출의 직접적인 증거가 컴퓨터에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힘을 얻는 이유다.
경찰은 "B씨가 수사 의뢰 이후 주거지 컴퓨터를 교체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에 대해서도 노후된 컴퓨터를 교체했을 뿐이라며 계속 혐의를 부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정황'에 그칠 뿐이라, B씨 측에서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라"고 맞서고 있다. 유출 경로에 대한 증거가 있었다면 이미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고, 남은 건 추정뿐이다. 경찰은 끝내 유출 경로를 밝히지 못한 채 B씨와 그의 딸들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 수사에선 밝혀질까?
학부모 C씨는 "B씨의 경우 딸들이 쌍둥이였고 문·이과 1등을 했기 때문에 의심이 커진 것"이라며 "한 자녀였고 성적이 점차적으로 올랐다면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C씨에 따르면 "B씨와 그 딸들이 같은 학교에 있다는 사실도 학부모들은 원래 몰랐다"고 한다.
시험문제나 정답 유출 사건은 숙명여고에서는 부모-자녀 간 발생한 사건이지만 교사-학부모 간을 비롯한 기타 관계들에서도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그만큼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자녀의 성적을 올리고 싶은 '유혹'이 크다는 뜻이다. 이는 또 이런 사건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처벌이 더욱더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검찰 수사에선 유출 경로가 밝혀질지 주목된다.
KPI뉴스 / 오다인 기자 odi@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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