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동남아 K팝 팬 무시한 한국의 MZ세대는 졸부 2세?

KPI뉴스

go@kpinews.kr | 2026-02-26 11:52:56

한국과 동남아의 젊은 K팝 팬들이 온라인에서 서로 상대를 비하하며 설전을 벌이고 있다. 해외 K팝 아이돌 공연 때 한국 팬들이 원정 관람을 하면서 대포 카메라로 촬영을 하려하자 현지 팬들이 "공연에 방해 된다"며 뜯어말린 사건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한국 MZ세대 키보드 전사들이 동남아 팬들을 향해 "뭔지도 모르고 한국 음악을 좋아 한다"며 "가난한 시골 뜨내기"라고 혐오 발언을 올렸다.  

 

▲ 해외 K팝 공연장에서 대포카메라 촬영 문제로 한국 팬과 동남아 팬 간 충돌이 발생한 상황을 재구성한 이미지. [챗GPT 생성]

 

그러자 동남아 MZ세대도 발끈해서 "쌍꺼풀, 필러에 집착하는 성형 괴물들"이라며 한국의 성형 문화를 빗대 반격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력수출로 한국에 돈을 벌러 온 동남아 노동자나 농어촌에 시집 온 동남아 며느리들에 대한 차별적 대우가 예술문화 공연장까지 번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실 K팝 그룹 멤버로 활약한 동남아 출신 가수 등 연예인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도 한두 건이 아니었다. 블랙핑크의 태국 출신 멤버 리사를 놓고 일부 한국 네티즌이 "화장을 지우면 평범한 태국인"이라고 악플을 달자 태국 내에서 반한(反韓) 감정이 커졌던 일도 있었다.

젊은 세대뿐 아니다. 어른들 역시 동남아 깔보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설 직전에 진도 군수는 "인구 소멸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응책을 법제화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정 뭣하면 스리랑카나 베트남 젊은 처녀들 수입도 해 갖고 농촌 총각 장가도 보내야 한다"고 몰상식한 발언을 내뱉었다.

어떤 전후 사정이 수면 아래 깔려 있든 매우 부당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동남아는 경제와 안보, 문화의 다방면 교류 파트너이고, 앞으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 모든 실리적 이유를 떠나 글로벌 시티즌으로서의 양식을 버린 비(非)지성, 비인간적인 작태이기 때문이다.

동남아 지역의 경제협력공동체 중 맏형 격인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은 1967년 8월 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필리핀 5개국이 역내 경제성장, 사회문화 발전 및 평화와 안정 추구를 내걸고 창설했다. 현재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브루나이까지 총 10개 회원국으로 확대돼 전체 481만㎢ 면적에 6억8530만 명 인구와 역내총생산(GDP) 3조7814억 달러 규모를 자랑한다. 대한민국의 48배나 되는 넓은 영토와 인구도 13.4배에 달한다. 정치적으로 연대하며, 경제적으로 통합되고,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아세안 전문가인 고영경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수출 시장에서 우리와는 경쟁자이자 긴밀한 경제 파트너의 이중관계"라며 "다가오는 미·중 교역전쟁의 파고를 함께 넘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의 2024년 대(對)아세안 수출액은 1140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대비 4.5% 증가했다.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아세안은 16.7%로 중국(19.5%), 미국(18.7%)에 이어 3위를 달린다. 4위인 유럽(10%)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중국, 미국, 아세안은 한국의 3대 주요 수출시장인 것이다.

 

이만큼 주요한 수출시장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열악하다. 아세안 입장에서도 한국은 중국, 미국, 일본, 유럽에 비해 중요도가 낮은 수출시장이다. 앞으로 보다 적극적인 교역품목 발굴 및 확대가 요구된다. 한국의 2019년 대 아세안 투자는 100억 달러를 넘기며 역대 최고를 기록한 이후 2022년 89억1800만 달러, 2023년에는 약 74억 달러 수준으로 내려갔고, 2024년 3분기까지의 투자는 55억6000만 달러에 그쳤다. 미래 성장 가능성이 큰 잠재 시장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투자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이번에 K팝 공연장에서 동남아 비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물론 동남아는 우리에게 인도, 남미처럼 개척 여지가 풍부한 신흥시장 중 하나다. 농산물 등 풍부한 자원과 젊은 인구 계층, 미래 발전 잠재력을 갖추어 경제적인 교역 상대로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장사꾼의 이윤동기를 떠나서라도 유교, 불교, 가족 등 아시아적 가치를 공유한 문화 동맹, 안보 파트너로서도 귀중한 존재이다. 백보 양보해 정치와 경제의 실리적 셈법을 제외한다 해도 문화 선진국으로 갖추어야 할 품격을 잃은 우리 젊은이들의 결례에 실망이 크다.

나는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로서 버르장머리 없이 외부 손님을 향해 거친 언행을 일삼은 '아들딸'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고 싶다. 특히, 철없는 재벌 2세처럼 동남아인들을 향해 '가난뱅이', '시골뜨기'라고 경제적 격차를 우월감의 밑천으로 내보인 천박한 졸부의식은 회초리를 쳐서라도 고쳐주어야 마땅하다. 우리가 보릿고개의 절대빈곤을 벗어난 지 이제 겨우 60년, 할아버지 때 기억을 잊었는가. 또, 한국이 언제 19~20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식민지 경영을 한 적이 있는가. 우리나라 국민은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에도 나오듯이 단 한 번도 남의 땅을 영토적 야욕이나 경제적 이윤 동기로 침략해본 적이 없는 평화의 민족이다.

과거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식민지 피지배 계급을 2류 국민, 하등 동물처럼 깔본 역사는 두고두고 반이성적, 반인류적 범죄로 지탄받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이런 설움을 겪었던 우리가 흡사 호된 시집살이 시킨 시어머니에게 배워 아래 동서에 대물림 괴롭힘을 일삼는 못난 며느리와 같은 처신을 해서야 되겠는가. 악습을 끊어내는 데는 자신과 주변을 연민의 시선으로 함께 돌아보는 지혜와 진보하는 역사를 믿는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하다. 부디 한국의 내일을 짊어질 젊은이들이 죄 많은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고, 현명하고도 용감한 진취성으로 혼돈의 21세기를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되어주길 기원한다.

한국과 아세안 동남아 국가들은 앞으로의 상호 협력이 더 기대되는 미래지향적 관계이다. 양 지역은 2024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협력 수준을 높이면서 미래 협력을 다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의 대 아세안 정책과 기업들의 역내 진출 전략에 아직 균형감과 조화가 부족하다. 기업들은 아세안 각국의 문화와 사정에 걸맞은 현지화 투자와 영업에 공을 들여야 한다. 정부 역시 아세안 제국과 양해각서를 잇달아 체결하고 다방면의 협력방안을 제시하지만 일회성에 그쳤던 경험이 더 많다.

또 현지 한국 기업들은 더욱 지역밀착적인 체감형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한국의 대 아세안 1위 수출 품목은 반도체이다. 하지만 반도체 외에도 디지털 헬스케어 및 의료장비, 전력 인프라 등 아세안이 한국에서 기대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와 협력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공격적인 관세정책을 지렛대 삼아 양 지역 간 효과적인 협력 전략의 구도를 새로 짜야 한다. 한·아세안 파트너십이 단순한 경제적 동반자를 넘어 미래 혁신성장을 이끌 파트너로 격상하길 희망한다.

아세안 국가들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뿐 아니라 K콘텐츠로 대변되는 문화적 매력에도 초청장을 보내고 있다. 지식재산 강국 코리아의 IP 리더십을 발휘해보자. 영 코리안들이 아시아에서 존경받는 리더로 성장하고 싶다면 진정한 내적 자부심을 갖고, 외적으로는 겸양과 양보의 미덕을 기본으로 장착해야 할 것이다.

 

▲ 노성열 논설위원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을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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