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 칼럼] 기후위기에 중앙은행 적극주의가 필요한 이유
UPI뉴스
go@kpinews.kr | 2023-11-17 11:14:35
기후위기 대응 재정정책 확대···정부 적극주의에 중앙은행 역할 주목
물가·성장·금융안정에 기후위기 영향···중앙은행 책무와도 무관치 않아
기후위기는 인류의 삶과 긴밀한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경제발전학회가 지난 16일 주최한 추계 정책 세미나는 지속가능 경제를 위한 기후위기 대응을 다루었고 필자는 기후위기와 중앙은행의 역할에 관해 발제하였다. 일응 기후위기와 중앙은행이 무슨 관련성이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필자가 3년 전 맡았던 어느 대학원 과정 강의에서 '기후위기와 금융'이라는 주제를 강의계획서에 포함했을 때 기후위기와 금융의 관련성 여부에 대해 질문했던 학생이 있었다. 이 질문은 역설적으로 교육 현장에서 이 주제를 다룰 만한 가치가 있음을 직감하게 했다. 기후위기가 금융에 여러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경제주체들에게 점차 인식되고 있다. 언론에 글을 싣는 목적의 하나는 교육 효과와 함께 경제주체들의 인식을 선제적으로 넓히는 데 도움을 주는 측면도 있다. 금번 학회 논의를 계기로 기후위기와 중앙은행에 대해 짚어보자.
화석연료에 기반한 원유 등 에너지 가격의 높은 변동성은 최근 각국 통화정책의 주요 고려사항이었다. 미 연준이 지난해 중반 이후 네 차례 연속 단행한 0.75%포인트, '자이언트 스텝' 정책금리 인상 배경의 하나도 에너지 가격이었다.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의 통제영역 밖에 있는 전쟁 발발과 에너지 위기 등 공급 압박 요인에서 크게 비롯되었는데도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으로만 돌파하려 했다는 가학적 통화주의(sado-monetarism)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 과정에서 금리의 급상승에 따른 리스크에 노출된 실리콘밸리은행이 금년 3월 파산했다. 자이언트 스텝을 밟았던 연준 통화정책 결정자들이 금년 2월까지도 뱅크런 위험성을 알지 못했다는 토로는 인간 능력과 판단의 한계, 그리고 화석연료 에너지에 흔들린 통화정책이 미국 은행 위기 원인의 하나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귀결이기도 하다.
유가 변동성 등 포말에 집중하다 보면 화석연료가 초래하는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 배출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하는 심해 흐름을 간과하기 쉽다. 석유 증산을 위해 중동으로 뛰는 바이든 미 대통령과 이를 외면하는 빈 살만 사우디 총리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며 화석에너지의 위력이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문제 해결의 근본 해법은 결국 과학기술이 될 수밖에 없다. 탄소 포집, 저장, 전환, 활용 등 혁신적 과학기술의 힘과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핵심 상품 및 기술을 공급하는 생태계 창출 등이 그 원동력이다. 그렇기에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은 보조금을 앞세우며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통해 이를 지원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 재정정책의 핵심으로 부상하며 정부 적극주의(activism)가 본격 전개되는 국면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나. 중앙은행의 업무는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경제 사이클을 다루며 금융시스템을 관리하는 일이지만 최근에는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문제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일에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물가, 성장 등 거시경제적 목표와 금융안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앙은행의 전통적 책무와도 무관하지 않다. 금융안정, 금융규제 측면의 공감대가 중앙은행 커뮤니티에서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재정정책에 견줄 수 있는 핵심 포인트인 통화정책 측면에서는 상반된 견해가 노정되는 상황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기후변화가 ECB의 임무 수행에 필수적인(mission-critical) 우선순위가 되어야 함을 선언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짙은 비판적 시각이 있다. 중앙은행에게는 탄소 배출을 줄이라는 법적 책무가 부여되어 있지 않으며 기후변화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접근한다면 중앙은행의 책무는 거의 무한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대표적으로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견해가 비판적이다. 중앙은행은 기후정책 결정자가 아니며 동 정책 결정은 선출된 권력이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명확한 입법 없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탄소 배출 세계 2위 국가인 미국 중앙은행 총재의 견해이자 세계 중앙은행계 리더의 견해인 만큼 가벼이 넘기기 어렵다. 핵심 쟁점은 중앙은행의 법적 책무 여부다. 아직 기후위기 관련 중앙은행의 법적 책무에 대한 토의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적은 없다. 본질적으로 중앙은행법에 관한 해석과 법인식, 법철학의 문제다. 더 살펴보도록 하자.
중앙은행의 법적 위상은 넓은 의미의 독립적 행정기관(independent administrative agency)이라는 것이 현대 행정법상 설득력 있는 견해다. 주요국 중앙은행법이 기후위기 대응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대체로 명확하지는 않은 가운데 의회가 명시적이지 않더라도 암묵적으로 행정기관에 입법적 위임을 한 것으로 볼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관련되는 판례 이론이 40여 년 전에 나와 있으며 여러 케이스에서 인용되어 왔다. 1984년 미 연방대법원은 석유회사 쉐브론(Chevron) 관련 판례를 통해 입법 의도가 명확하다면 논란이 없지만 특정 이슈에 관한 법률적 의미가 분명하지 않거나 법률이 이슈에 관하여 침묵할 경우 당해 행정기관의 해석이 합리적(reasonable)이거나 허용가능(permissible)하다는 전제하에 사법부는 당해 행정기관의 해석을 존중할 필요가 있음을 밝혔다. '쉐브론 테스트'로 일컫는다. 의회가 법률을 제정할 때 모든 정책 이슈를 해결하지는 않고 할 수도 없으며 많은 정책 이슈는 개방된 형태로 남겨두게 된다. 후일 제기된 정책 이슈를 입법 당시 의회가 명확히 해결하지 않았을 경우 당해 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이 해결해야 할 수 있다. '쉐브론 테스트'에 의한다면 기후위기 등과 같이 중앙은행 책무의 해석에 관해 모호하거나 침묵하는 대목이 있는 중앙은행법에 대해서는 독립적 전문 행정기관인 중앙은행의 법해석이 합리적이거나 허용가능하다면 중앙은행에 법해석권을 위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생태학적 시각에서 보면 중앙은행을 둘러싼 환경적 요소들이 중앙은행 시스템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법률의 변경이 없더라도 생태계의 환경 변화에 따라 실제 중앙은행 시스템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법률이 생태계의 변화를 따라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중앙은행법의 논리적 정합성보다는 중앙은행이 기후위기 등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하느냐는 관점에서 중앙은행법을 바라볼 필요도 있다. 법현실주의(legal realism, 법은 입법자가 입법 시에 확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후일 그 책무를 담당하는 공인이 사회적 목표 달성을 위해 행하는 것이라는 법인식)의 관점에서는 중앙은행법 자체보다 사회가 당면한 현실 속에서 중앙은행에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관한 중앙은행 스스로의 가치판단이 중요하게 된다.
이와 같은 법철학적 성찰은 통화정책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화석연료 에너지의 변동성에 흔들리며 포말에 집중했던 통화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확신은 대체로 부족하다. 화석 에너지의 오랜 굴레에서 벗어나며 그 핵심인 기후위기를 정조준하려는 노력에 대한 확신 또한 부족하다. 향후 통화정책이 기후위기를 정조준해야 할 개연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의 외부효과를 감안할 때 시장실패 내지 비효율을 교정하는 역할을 통화정책 면에서도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녹색 채권을 매입하며 기후위기 관련 조사연구를 강화하고 기후변화센터를 설립한 유럽중앙은행의 적극주의는 시사하는 바 있다. 포말과 심해 흐름을 함께 살피는 선구자(avant-garde)의 통찰력을 지니고 기후위기에 중앙은행 적극주의를 조화롭게 발휘하는 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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