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란의 토닥토닥] 거칠고 살벌한 자녀의 언어…'소리'보다 '마음' 읽어주세요
UPI뉴스
| 2019-07-18 11:32:41
지금 부모 세대는 언어사용 면에서 자녀와 몇 세대를 건너뛴 격이다. 부모들이 어렸을 때는 조부모나 친척으로부터 '이야기'를 곧잘 듣고 자랐다. 학창시절에는 서사적인 글들을 텍스트로 공부하고 또 제법 손글씨로 일기나 편지들을 써 보았다.
반면 디지털세대인 자녀들은 문장으로 대화하기보다 단어와 줄임말을 사용한다. 욕과 비슷한 접두어를 상용어처럼 쓴다. 좋은 일도 '개꿀'이고, 멋있어도 '개멋'이고 지나칠 정도로 멋지면 '존멋'이다. 거짓말도 '개구라' 정도로 표현해야 직성이 풀린다. 최근에는 상대편 부모를 비하하는 패륜적 농담이 문제가 되고 있다. '엄마'를 뜻하는 접두어 '엠~'으로 시작하는 욕이 다반사로 튀어나오고 있다.
간혹 길을 가다 학교 정문 앞에서 대화하는 학생들의 말을 듣고 섬찟 놀랄 때가 있다. 분명 남자 고등학생끼리 이야기하는데 'OO년'이라고 서로 부르고 있었다. '웃으면서 대화하는데 실제는 욕을 하고 또 여성을 비하하는 욕을 남자들끼리 하는 게 어떤 심리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길에서, 버스에서 그런 대화를 듣는다면 행인이나 승객들에게는 공해 수준이다. 아마 그들은 무의식중에 욕구 불만과 상처받은 내면을 그렇게 표출하는지도 모른다.
또 어느 여학생이 정류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남자친구에게 전화하는 데 언어사용이 의외였다. 그는 시종 남자친구에게 '너 맞을래? 빨리 가지고 와. 안 그러면 죽어. 이 자식아. 지금 당장 오라니까. 생까지 말고'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생긋 웃는 미소가 어울릴 고운 여고생이었다. 허물없이 친한 사이라 해도 낯설고 염려스러운 언어사용이었다. 우리말의 살기 어린 민낯을 보는 듯해서 민망했다.
청소년의 언어를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부모와 선생은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TV의 예능프로그램이나 컴퓨터게임 중계자의 언어를 듣다 보면 나에게 하는 욕인가 싶을 정도로 지나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이 집에서도 비일비재하니 부모는 가슴이 콩닥콩닥 숨쉬기도 어려운 순간이 많아진다. 언뜻 부모에게 하는 말인 듯한데 아니라고 하면 야단치기도 타이밍이 안 맞다. 그럴 때 '너 참 힘들구나. 무슨 일 있니?'하고 되물어보면 그제야 진짜 하고픈 속말을 할 때가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는 언뜻 순간적으로 삐끗하는 듯하지만 서로 일관되게 '관계'를 표현하는 언어사용인 경우가 많다. 서로 신뢰하고 있으면 거친 언어를 대체로 농담이나 힘든 감정의 표출로 용인한다. 그러나 소통이 잘 안 되는 부모·자식 관계에서는 대화가 어긋나면 며칠 지나도 그 앙금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럴 땐 우리말에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속담이 유효하다. 듣는 그대로 상대의 말을 곱씹으면 상처받기 쉽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특히 말의 이면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소리보다 마음을 읽는 대화가 필요하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재래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 '대변동 위기, 선택, 변화'에서 이런 의사소통문제의 배경으로 전자통신과 같은 과학기술의 혁신을 들었다. 미국인은 평균 4분마다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휴대전화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하루 평균 여섯 시간 이상을 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과거와 비교하면 직접 사람을 만나도 산만하거나 피상적으로 대한다고 한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보다 모니터 위의 글에는 경멸하게 굴기가 훨씬 더 쉽고, 그런 행동에 익숙해지면 나중에 눈앞의 사람에게도 더 쉽게 언어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비인격화 현상으로 사람들이 '혼자'에 익숙하고 사회적인 유대감이 모자라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확대될수록 개인적인 인신공격이 는다고 한다.
요즘 디지털세대는 과거와 비교하면 직접 대면하는 만남이 더 어색하다.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다 보니 얼굴을 직접 맞댈 때보다 경박하고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부모들은 집안에서 가족이 서로 스마트폰으로 이야기한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모든 집에서 안방에서 다른 방에 있는 가족에게 스마트폰으로 이야기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각자 자신의 휴대전화기나 인터넷으로 보는 세상이다. 가족이라고 하나 직접 대화하며 서로 눈을 바라보고 의논하는 일이 갈수록 줄어든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일들이 보편화하였다. 지금 자녀들의 언어생활 역시 다시 정중한 표현으로, 직접 얼굴을 보며 눈을 맞추며 말하는 식으로 바뀔 성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전혀 희망이 없는 상황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대부분 청소년의 심성이 순수하고 삶에 열정이 있다. 학생들끼리의 대화가 절반은 욕설이지만 그들 역시 자기 자신에게는 누군가 정중하고 바른 언어로 이야기해 주기를 원한다. 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올라온 갈등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청소년들은 일상적으로 거친 말을 하지만 친구나 선생님이 자기에게 욕설이나 비어, 패륜적 농담을 사용하면 상처를 받아 신고한다. 즉 자신은 상대로부터 좋은 말, 존중받는 말,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서로 상스러운 언어를 주고받으면서도 실제 내면에서 그 '저급함'을 수용하고 있지는 않다. 집에 가서 낮에 일어난 상황을 카톡을 보며 곰곰 생각하다가 뒤늦게 억울하고 상처받은 내면에 괴로워하다가 신고하기도 한다.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다. 청소년 자신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어떤 동작을 하고 있는지 그게 남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 의식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러주어야 한다. '부모니까 너의 그런 말이나 행동을 이해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그렇지 않다. 실제 너의 모습과 다른 나쁜 인상을 구태여 줄 필요는 없다.' 자녀에게 신뢰를 보여주면서도 경계할 점은 미리 일러둔다.
이제부터라도 언어사용에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녀가 마음이 편안해지면 말투는 부드러워진다. 완곡한 표현만으로도 서로 의사소통이 된다. 디지털 세계에서 유목민처럼 각자 살지만, 공동체와 연계된 활동을 모색하고 사람과 직접 만날 기회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
자녀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일차적인 성인은 부모와 선생님이다. 한순간 실수로 자녀가 내뱉은 난폭한 언어들에 너무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런 언어의 위험성을 강조해 둔다. 특히 가정에서 서로 표정을 보고 몸의 동작을 읽고 목소리의 톤을 느끼며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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