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금융학교] AI 혁명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차현진 객원논설위원
cha@kpinews.kr | 2026-03-13 11:15:05
케빈 워시 차기 연준 의장 임명 절차가 시작되었다. 지난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 명의의 인사청문회 개최 요청서가 미국 상원에 전달되었다. 워시가 지명된 것이 1월 30일이었는데, 요청서 발송이 늦어진 것은 그새 이란과의 전쟁(2월 28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사청문회는 쉽게 개최될 것 같지 않다. 1월 9일 법무부가 제롬 파월 현 의장에게 소환장을 발부하여 조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에 대해 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 의원까지 문제를 제기했다. 적절한 조치가 없으면 인사청문회 개최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연준은 미국 헌법에 따라 의회에 소속된 기관이다. 헌법 제8조에 의해 화폐 발행에 관한 사항은 연방의회가 관장하며, 연준은 의회의 결정사항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그러니 연준의 독립성을 두고 트럼프와 의회가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헌법을 둘러싼 자존심 대결이다.
그렇게 본다면, 인사청문회 개최가 늦어지는 것은 워시 본인과 무관하다. 하지만 워시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가 차기 의장으로 지명된 이후 그의 과거 발언을 꼬집는 경제학계의 비판이 점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청문회가 열리면 그에 대해 집중포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쿠팡의 사외이사 신분이었던 2024년 12월 워시는 AI가 구조적으로 물가를 낮추는 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1990년대 초 인터넷을 예로 들었다. 핀테크 기업인과의 대담이었으므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발언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제롬 파월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 잦아지면서 워시의 발언 강도도 점점 커졌다.
2025년 7월에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AI는 모든 것의 비용을 낮출 것이며, 미국이 그 최대 수혜국이 될 수 있다"고 아주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나아가 지난해 11월에는 급기야 파월 의장에 대한 비판으로 돌진했다. AI가 세상을 빠르게 바꾸는데, 연준은 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함몰되어서 "연속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파월에게 조기 사임을 공개적으로 종용할 때였다.
이제 워시의 발언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먼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 교수가 점잖게 훈수했다. AI의 경제적 효과는 섣부르게 일반화할 수 없지만, AI가 많이 투입된 분야일수록 오히려 임금 인상이 현저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19세기 말 이미 밝혀진 "제본스의 역설"과 같은 결론이다. 경제학자 제본스는 산업혁명 당시 내연기관의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석탄의 수요와 가격이 커진다는 점을 발견했는데, 지금 AI로 인한 생산성 증가가 똑같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유럽 학자들도 비슷한 생각이다. EU 내 기업들을 조사한 결과 AI 도입률이 10%포인트 상승하면, 생산자물가가 0.3~0.6%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이점에서는 워시의 주장을 약하게 지지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 평균일 뿐이다. AI 도입률이 10% 이하에서는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고, EU 전체로 볼 때는 조만간 10%를 초과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AI가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는 극히 단기에 그친다. 나무에 달린 열매를 따먹을 때 처음에는 쉽게 손이 닿는 것(low-hanging fruit)부터 먹지만, 갈수록 힘들어진다.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든다. 마찬가지로 AI가 대체할 수 있는 일들이 처음에는 많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에너지·자본 투입이 많아진다. 그래서 AI가 결코 물가를 낮춘다고 단언할 수 없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찰스 존스는 'AI 혁명'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지난 150년 동안 미국은 전구 발명, 내연기관의 등장, 비행기 발명, 진공관과 트랜지스터의 출현, 반도체·PC·인터넷의 등장 등 수많은 생산성 혁명의 기회를 맞이했었다. 하지만 연평균 2%의 성장 추세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니 AI가 세상을 뒤집을 것이라는 추측 또는 희망도 헛되다는 것이 존스 교수의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케빈 워시의 생각에 동조하는 경제학자들은 드물다.
하지만, 경제학자는 예지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과거의 경험을 통해 유추할 뿐이다. 그러므로 케빈 워시의 주장처럼 "AI는 우리 세대 과거·현재·미래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생산성 향상의 물결"일 수도 있다. 그런데 진짜 생산성 향상의 물결이 몰려온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통해 경험하지 않고서도 터득할 수 있다.
경제를 과열시키지도, 위축시키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를 자연이자율(natural rate of interest)이라고 한다. 관찰되지 않는, 관념 차원의 금리다. 분명한 것은, 그 자연이자율이 경제성장률과 정비례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AI 투자 확대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면, 너도나도 투자를 늘린다. 자금 수요가 늘어날수록 자연이자율은 상승한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논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결과다. 경제학자 램지와 케인즈가 그에 관한 수학 공식을 마련했다.
아무튼 AI가 생산성 증가를 가져온다는 확신이 커질수록 금리는 높아진다. 케빈 워시의 직관과는 정반대다. 한편, 금리가 높아진다는 말은 자본가와 노동자가 이익을 배분할 때 자본가의 몫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노동자의 소비 여력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12년 전 피케티가 '21세기 자본론'을 통해서 경고했던 점이다.
결국 AI가 일으키는 생산성 폭발은 대량 실업과 빈부격차 확대, 그리고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완전 디스토피아다. 그런 일을 막으려면 정부가 소득재분배 문제에 더욱 강하게 개입해야 한다. 경제 시스템의 사회주의화다. 코로나19 위기 때 전 세계가 아주 잠깐 경험했던 재난지원금(기본소득)을 상시화해야 할 지도 모른다. 정치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미 상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워시를 향해 이런 질문들이 쏟아질 것이다. 워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낙점받기 위해서 '장밋빛 공약'을 쉽게 내뱉었던 것을 크게 후회할 수도 있다. 벌써 연준 내부에서는 워시를 향한 저항 조짐이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고를 시도하는 리사 쿡 위원은 물론이고 마이클 바 부의장,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준 총재가 "AI 열풍이 금리인하의 이유가 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밝혔다. 신임 의장의 철학에 대한 거부감의 표시다.
워시가 통과해야 할 인사청문회와 그 이후 출근하게 될 사무실의 분위기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공직자의 섣부른 낙관론은 여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인사청문회를 통해 공직자의 생각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앞으로 진행될 차기 한국은행 총재의 인사청문회도 개인 비리나 재산 들추기보다는 철학과 소신을 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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