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분쟁 속에 등 터지는 한국기업

김용건

| 2019-06-17 11:20:48

피해 1순위, 中 현지 공장 가동하는 기업들
'사드 사태' 경험…최악의 시나리오 대비해야

날로 격화되고 있는 미중 무역분쟁에서 한국 기업들은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다.


양국의 갈등이 6월 말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을 전후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자칫 장기화할 경우 우리에게는 2년 전 사드 사태 때 와는 비교도 안 되는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 셔터스톡


이 경우 중국 정부가 최근 미국과 우리 IT 대기업들을 상대로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동참해 부품 공급을 중단할 경우를 두고 경고한 '심각한 결과(dire consequence)'가 현실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다 화웨이 제재의 핵심에 있는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은 해당 분야는 물론 관련 산업의 국제표준을 누가 주도하느냐는 '기술 전쟁', '표준 전쟁'의 성격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는 두 국가 간의 분쟁은 지정학적 이해를 넘어 '미래 먹거리'에 대한 양보할 수 없는 싸움으로 전개될 조짐과 징후는 이미 농후하다.


특히 우리의 5G 기술 수준은 세계 1, 2위를 다투는 데다 부품과 장비 분야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관련 기업과도 '글로벌 공급망(GSP·Global Supply Chain)' 속에 밀접히 연관돼 그 영향의 유불리를 단순히 따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미중 무역분쟁의 상황 전개에 따라 최악의 경우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게 되면 양국 중 한 국가의 기업과는 거래가 전면 중단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대비해야 하는 것이 우리 기업의 고민이다.


미중 무역분쟁의 국내 피해 1순위는 중국 현지에 투자해 공장을 가동하는 기업이다. 합작 등 형태로 운영되고 있고 현지에서 고용, 원청·하청 관계 등 유관 분야의 경제유발 효과가 있어 중국 당국도 가동 중단 등 극단적 조치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사드 사태'의 경험으로 볼 때 중국 당국이 이런 조치까지 않을 것으로 예단하고 마냥 낙관하고 있을 처지는 절대 아니다.


실제 지난 4~5일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상무부, 공업정보화기술부 등 중국 당국이 미국 등 주요 IT기업이 화웨이 제재 동참에 대비한 경고메시지를 보낼 때 우리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포함됐다.


국내 기업의 중국 현지 생산 법인은 4대 그룹 계열사만 해도 30~40곳에 달한다. 화웨이 제재 등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반도체 분야 기업이 눈에 띈다.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西安)에서 낸드플래시를, SK하이닉스가 우시(無錫)에서 D램 생산공장을 가동 중이다. 삼성전자는 7조9000억 원을 들여 시안에서 2공장을 짓고 있으며 9500억 원을 들여 4월 증설을 끝낸 SK하이닉스의 우시 공장은 하이닉스 전체 D램 생산량의 절반 정도를 만들고 있다.


LG전자는 난징, 타이저우 등 중국 전역의 8개 지역에서 가전 휴대폰, 자동차, 전장 텔레매틱스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다. LG디스플레이가 5조 원을 투자한 광저우 유기발광다오드(OLED) 패널 생산 라인은 하반기부터 본격 양산체제에 돌입한다.

 
중국 최대 완성차 업체인 베이징자동차(北京氣車)와 SK이노베이션은 창저우에서 내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8200억 원을 들여 배터리 셀 공장을 짓고 있다. 이와 별개로 4000억 원을 들인 배터리 소재 공장도 착공했다. 여기다 LG화학도 최근 2022년 양산을 목표로 지리(吉利)자동차와 2000억 원 규모의 합작법인설립과 공장 준공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결국 대중 투자규모와 비례해 이번 무역분쟁에 대한 경고음도 요란하다.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사업전략이 중국 일변도에서 탈피하면서 베트남, 인도 등으로 다원화 한지는 오래됐지만 4대 그룹 등 대기업 등은 거대한 중국시장에서 벗어나 생산기지를 옮기기 힘든 실정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 중국 직접투자(FDI)는 56.6억 달러로 전년 대비 52.3% 증가했고 중국의 대 한국 투자 역시 27.4억 달러로 238.9% 늘어났다. 중국 상무부의 지난달 발표를 보더라도 올 들어 4월까지 한국의 대중국 FDI는 전년 대비 114.1% 증가해 주요국 중 가장 높은 투자 증가율을 보였다. 그만큼 양국이 공장, 기업 인수 등 상호 투자로 엮여 있다는 의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9일(현지 시간) 이동통신표준화기술협력기구(3GPP) 관계자를 인용해 "화웨이에 대한 미국 제재가 계속되면 향후 국제 표준을 설립 하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화웨이는 미국이 거래금지 기업 명단에 올린 후 국제 반도체 표준기구인 JEDEC와 무선기술 표준기구인 와이파이 연맹 및 SD메모리협회 등에서 배제됐다. 이번에는 화웨이 제재로 다른 국제 표준기구에서 아예 기구의 존립 자체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3GPP가 관여하는 5G 기술의 경우 세계 최다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화웨이 임원이 이 기구의 3대 위원회 중 하나의 장이다. 다른 두 부서의 위원장과 부위원장 역시 차이나모바일, 중국전신과학원(CATT) 등 중국 기업의 임원이 맡고 있다.

앞서 러시아 최대 이동통신회사인 모바일텔레시스템스(MTS)는 5일 중국 화웨이와 5G 이동통신 개발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오는 2020년까지 러시아 내 5G 통신 서비스를 출범시키는 게 목표다. MTS는 공식 자료를 통해 "기존 인프라에 (화웨이의) 5G 및 사물인터넷(IoT) 기술 및 솔루션을 도입해 현 LTE 네트워크를 5G 준비 수준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협약서에는 이동통신 외에도 스마트시티·무인자동차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5G 활용 기술을 협력 개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화웨이를 제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후 한 달이 되는 이 시점에서 보면 이번 전쟁의 '절대적 승자'는 없다는 사실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전략적 모호성'을 가지고 버티고 있는 우리 기업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고 자칫하면 최대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KPI뉴스 / 김용건 기자 ojh111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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