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탄핵, 이번에 역사 만들어야"
김이현
| 2018-12-03 10:39:02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이뤄져야 신뢰 회복"
정의의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할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개탄이 넘쳐난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이뤄졌던 '재판 거래'와 '직권남용'의 실태가 드러나면서다.
사법부 내부에서도 지난 19일 전국법관대표회에서 그 연루자들이 '탄핵' 대상임을 확인하는 의견이 결의되기도 했다. 헌정 사상 법관이 탄핵된 전례는 없다. "역사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역사를 만들어야 된다"는 서기호(48)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법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임용에서 탈락한 피해자 중 한 명으로, 정의당 비례대표로 19대(2012~2016년)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나온 '사법 농단 판사 탄핵 촉구 의결'이 상징하는 바는?
"법관 탄핵은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의결된 적이 없다. 그동안 생소하고 금기시된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대통령도 탄핵될 수 있다'는 게 국민들 사이에서 확인됐다.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사유가 있으면 법관도 탄핵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셈이다. 법원 내에서 탄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과반수 나온 만큼 정치권도 정치적 논란을 피해 가면서 추진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 언급한 것처럼 법관 탄핵은 전례에 없던 일이다. 왜 탄핵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들이 선언했던 탄핵 촉구 이유와 같다. 첫 번째는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이 청와대 및 정부 관계 인사들과 회동하면서 청와대의 로펌 변호사 역할을 했다. 이것은 삼권분립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두 번째로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이 특정 재판에 개입하는 여러 가지 문건을 작성하고 전달했다. 이것은 법원행정처가 그 고유 역할을 넘어서서 국정원 조직원처럼 활동했다는 것이고, 헌법상 재판 독립의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의 의무 규정 위반(헌법 제7조), 재판의 독립 원칙 위반(헌법 제103조), 법관 신분보장 원칙 위반(헌법 제106조), 국민이 공정한 재판 받을 기본권 침해(헌법 제27조) 등이다."
- "삼권분립에 위배 된다" "절차상 문제가 있다"등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각 법원 판사회의의 대표들이 모인 곳이다. 개별 판사들 전원의 의사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게 대표성의 원리다. 대표들이 설령 내부 의사수렴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표 판사들의 문제인 것이지 전국대표법관회의의 절차상 하자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마치 국회의원들이 해당 지역구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로, 또는 지역구 주민 과반의 의사와 다른 어떤 입장을 가지고 표결에 임했다 하더라도 그 국회의원의 표결이 하자가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또한 그날 결의된 내용은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는 판사들의 의견을 확인하고, 그럴 경우에 대해 법관 탄핵이 필요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결코 국회에다가 탄핵을 촉구한 게 아니다."
- 판사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 동의하면 발의된다. 이후 72시간 내 과반 찬성을 해야만 통과가 되고 헌법재판소로 넘겨지게 된다. 통과 여부를 어떻게 보는가.
"일단 대통령의 경우보다 정족수가 훨씬 완화돼 있기 때문에 범여권의 추진만으로도 국회에서 탄핵소추 의결은 가능하다. 그 다음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되면 본격적으로 심리를 하는데, 사실 이 부분은 확신할 수 없다. 현재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은 고등부장 이상의 고위법관 출신이다. 그런데 사법농단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100여명의 법관들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해 양승태, 박병대 전 대법관 등 고위법관 출신들과 대부분 긴밀한 사이다. 헌법재판관 일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기도 했다.
다만 이번 사법농단 관련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는 헌법재판소를 이류 기관으로 전락시키고 대법원을 최고의 사법기관으로 격상시키면서 장기적으로는 헌법재판소를 흡수하려는 전략이 드러났다. 따라서 재판관으로 임명된 고위 법관들이 과거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준다면 법관 탄핵 인용 결정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리고 탄핵은 법관 한 명에 대해서만 추진되는 게 아니고 여러 명에 대해서 추진되고 있기에 그 중 상당수는 인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사법 농단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외국에도 이런 사례가 있나.
"적어도 사법 선진국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만한 일이다. 중진국에서도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건 들은 바가 없다. 궁극적으로는 잘못된 판결을 일삼던 판사들에 대한 청산작업 없이 면죄부를 주고 그들이 승승장구해서 대법관과 대법원장까지 되게 만들어 놓은 것이 문제였다. 또한 외부나 정치권력으로부터 재판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명분으로 대법원장에게 권한을 몰아줌으로써 사법부를 독립시켰는데, 사법부 자체가 독자적 권력이 돼버렸다. 대법원장이 주도해 법원행정처를 통해서 조직적으로 재판 개입할 수 있는 요건을 방치해버린 결과다."
-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고 사법농단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지금의 사법농단 사태 자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절대로 제 식구 감싸기 식의 온정주의적 재판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원칙들이 있어야 사법부의 신뢰가 회복되는 것이지, 적당히 덮어둔다고 해서 신뢰가 회복되는 게 아니다. 제도적으로는 특별재판부 설치, 법원행정처 폐지를 통해 판사들로 하여금 재판업무에 전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 고등부장 승진제도 폐지 등을 정착시켜서 판사들이 승진에 얽매여서 눈치 보는 재판을 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비록 오래 걸릴지라도 자연스럽게 신뢰가 회복될 것이다."
K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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