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구순(九旬) 앞두고 개인전 가진 조각계의 거장 '이종각' 작가

박상준

psj@kpinews.kr | 2024-01-08 11:17:23

6.25전쟁 와중에 본 소련 영화 '석화'에 감동해 미술에 입문
이우환과 함께 서울올림픽 기념 청동작품 올림픽공원에 설치
천안 리각미술관 '찰나의 자취'...회화와 테라코타 작품 전시

예술가의 기질과 재능을 타고난 인물들에겐 삶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 있다.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길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순간 죽비(竹篦)처럼 심장을 강타하는 극적인 감동을 맛보며 자신도 모르게 예술가의 세계로 빠져드는 사람도 있다.


▲'찰나의 자취' 대형 포스터앞에 선 이종각 작가.[UPI뉴스]

 

지독한 독서광이었던 '빈센트 반 고흐'는 10대 초반에 진학한 국립중학교에 당시엔 드물게 미술과목이 있었고 마침 화가인 '콘스탄트 코르넬리스 하위스만스'가 미술교사로 부임하면서 그의 사려깊은 지도로 묻힐뻔했던 재능을 꽃피웠다.


'근대조각의 아버지'인 '오퀴스트 로뎅'은 공부를 지지리도 못해 아버지로 부터 구박을 받다가 공부를 작파(作破)하고 사제가 되겠다고 수도원에 들어갔지만 재능을 알아본 수도원장의 권유로 환속해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등 조각가로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국민화가'인 박수근은 어린시절 밀레의 '만종'을 보고 전율을 느껴 화가의 꿈을 꾸게됐으며 장르는 다르지만 젊은시절 재즈카페 주인이었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20대에 프로야구 개막전을 관람하던중 자신이 응원하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외국인 타자 '데이브 힐턴'이 2루타를 치는 순간 '소설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 리각미술관 '찰나의 자취' 전시장.[UPI뉴스]

 

서론(序論)이 긴 것은 최근 구순(九旬)을 앞두고 노익장을 과시하듯 '찰나(刹那)의 자취'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분신(分身)이기도 한 충남 천안 리각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이종각(89) 작가도 조각가 입문과정에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각 작가는 한국 조각계의 '거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화려한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다. 30대 중반인 1972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초대작가였고 경희대학교 개교 20주년 공모에서'경희인의 상(팔선녀)' 을 대형소조(청동)으로 제작해 이 대학 캠퍼스의 명소로 만든 장본인이다.


1988년엔 국제야외조각심포지움에 이우환(일본), 박종배(미국)작가와 함께 국내에서 활동하던 조각가로는 유일하게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초청을 받아 세계로 웅비(雄飛)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은 청동작품(확산공간 88)을 제작해 서울올림픽공원에 설치했다.


강철을 철조용접방식으로 역동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한 '레일시리즈', '확산공간시리즈', '응축형 변주시리즈' 등 시대별로 진일보한 작품을 선보여 한국미술평론가협회가 선정한 한국현대미술가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정초(正初)에 천안 태조산(해발 421m)이 눈 맛 시원하게 펼쳐진 리각미술관 카페에서 이종각 작가를 만났다. 2015년 독일의 예술잡지 'ART'는 반드시 가봐야 할 한국의 도시로 천안을 꼽았다. 아라리오미술관과 함께 리각미술관을 염두에 둔 것이다.


▲ 이종각 작가 작품 '응축형 변주' [UPI뉴스]

 

구순 즈음에도 꼿꼿한 작가는 1만5700제곱미터에 달하는 조각공원을 가꾸며 매일 만보씩 걷는 부지런한 체력관리로 혈색부터 건강미가 넘쳤다. 백발의 곱슬머리에 아무렇게나 걸친 소박하고 편안한 옷차림이지만 예술가의 풍모(風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따뜻한 허브차를 마시던 이 작가는 미술관 조각공원에 있는 거대한 꽃잔 모양의 푸른색 조각품을 가리키며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관람한 러시아영화 '석화'를 소환했다. 그에겐 인생의 행로(行路)를 바꾸게한 기념비적인 영화다. 그는 이 영화를 보고 조각에 깊이 심취하게 된 것은 물론 예술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굳혔다.


알렉산더 프투시코 감독이 1946년 연출한 영화 '석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돌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돌 조각의 장인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을 제자로 키운다. 제자가 영주의 아내로부터 '꽃처럼 조각한 보석잔'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완성한 작품은 주변사람들의 감탄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한 제자는 '꽃잔'을 부순후 결혼 첫날밤 아름다운 신부의 곁을 떠나 '석화'가 만발한 산으로 가서 진짜 살아있는 꽃같은 보석잔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불태운다'

 

▲리각미술과내 영상작품.[UPI뉴스]

 

-영화 '석화'가 조각가의 꿈을 키우는데 큰 역할을 한 셈이네요.

"천안중 재학시절 서울에서 이 영화를 볼 당시에 6.25전쟁이 터져 북한군이 침공했어요. 소련 영화이기 때문에 북한군 치하에서도 상영된거지. 그 난리 통에도 영화 속에서 돌 조각 장인이 만든 보석잔에 흠뻑 빠질 만큼 아름다웠어요. 전쟁으로 교통이 끊겨 뜨거운 여름 서울서 천안까지 그 먼 길을 걸어 내려오면서도 내내 그 영화가 떠올랐지. 이 나이에도 제목도, 스토리도, 배우 얼굴도 어제처럼 기억에 생생해요. 그 영화 때문에 미술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학창시절 화가를 택하기엔 집안형편이 열악했지만 홀어머니가 적극 지지해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난 외아들이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내가 선택한 것은 무엇이든 옳다며 지원해주었지. 내가 홍익대에 입학했을때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우리집 몫으로 물려준 땅 2000평을 팔아 1년치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주셨어요. 하지만 2학년부터 돈이 떨어져 등록금을 못내자 제적과 복학을 반복했어요. 실의에 찬 시기였지. 다행히 스승인 김경승(인천 자유공원 맥아더장군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교수가 학교 도서관 1층의 벽면에 부조(浮彫)를 만드는데 참여하라는 조건으로 등록금을 면제해줘 대학을 공짜로 다닌 셈이죠"


-홍익대 미대에 진학할 때 '적록색약자' 판정을 받아 크게 좌절하셨죠.

"처음엔 서양화를 전공하려 했어요. 하지만 '적록색약자'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무리예요. 원하는 색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조각과를 지원했는데 의외로 무척 흥미를 느꼈어요. 과 선배들이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을 지켜보며 바로 적응했지. 어찌 보면 '색약'이기 때문에 조각이라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길을 찾은 셈이죠"


▲이종각 작가 작품 '응축형변주 2' [UPI뉴스]

 

이종각 작가는 홍익대에서 조소를 전공했고 국전에서 특선 했으며 국전 초대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첫 개인전은 대학재학때인 1958년 고향 천안서 열었다. 친구들과 함께 서울 신촌역과 천안역을 오가는 통근 열차로 조각품을 실어나른 뒤 다시 '마차'를 빌려 전시장까지 옮겼다. 당시 천안서는 극히 드문 전시였다.


이후 조각가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1964년 현대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박서보, 장욱진, 윤형근, 이대원, 천경자 등 후에 한국미술계를 대표하는 쟁쟁한 작가들이 몰려와 축하해주었다. 그 때 거장들이 친필 사인한 방명록은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33년간 경희대학교 미대 교수로 재직하셨는데 작가와 교수 생활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그때가 오히려 작가로서 작품 제작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교수이다 보니 우선 경제적으로 안정됐고 조각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지. 물론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지만 학생들이 내가 작업하는 것을 보는 것도 큰 공부가 됐을 거예요"


-1978년 덴마크 정부 초청으로 왕립미술학교에서 유학을 다녀오셨죠. 그곳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동료교수와 덴마크 한인회장의 주선으로 덴마크 정부가 초청장을 보내줘 2년 일정으로 유학을 갔는데 국내에서 10.26사태가 발생하는 바람에 대학사회가 뒤숭숭해 1년만에 귀국했어요. 하지만 당시 일본 미술잡지인 '미술수첩' 외엔 해외미술동향이 유입되지 않았던 시기에 덴마크 유학으로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지"


▲이종각 작가.[UPI뉴스]

 

-덴마크 유학이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1년간 덴마크 유학은 나의 조형 작품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됐어요. 마치 작은 호수만 보다가 드넓은 바다에서 새로운 감흥을 느낀 것처럼 충격적이었지. 그 이전의 국내 조각작품은 흠집 하나 없이 매끈하게 다듬어져 실내에 전시된 정형화된 작품이 대부분이었어요. 하지만 유학을 통해 조각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지요. 작품의 스케일이 커지고 역동적으로 변했어요. 재료의 물성을 최대한 살려 자유로운 상상력을 작품에 담았죠"


-주로 브론즈(청동)로 만든 작품이 많습니다. 다루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쇠붙이를 녹여 거푸집에 집어 넣은 뒤 작품을 만드는 주조(鑄造) 작품은 다루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요. 대신 손가락 지문까지도 섬세하게 새겨질 만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 난 청동작품을 선호해요"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이 세운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에도 작가님 작품을 소장하고 있죠.

"이건희 전 삼성회장 부인인 홍라희 여사와 이병철 전 회장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회장도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각별히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매개로 이 분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호암미술관은 내 대형 조각품 7점을 소장하고 있지"


-2008년 리각미술관을 개관해 천안의 명소로 만들었죠. 언제부터 개인 미술관을 꿈꾸었나요?

"개인 미술관이 많은 덴마크에 있을때 내 이름을 가진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미술관은 땅을 사고 건물을 지으려면 큰 돈이 들지요. 무엇보다 내 청동조각품을 전시하려면 부지가 크지 않으면 안돼요. 마침 30대 때인 1960년대 후반 '잭 프레거'라는 미국 화상(畫商)이 반도화랑에 전시된 내 작품에 매료돼 당시 내 교수 월급이 4만원이었을때 매달 3000달러를 내고 2년여 간 작품을 꾸준히 사간 것이 경제적으로 큰 힘이 됐어요. 이후 경희대에서 퇴직한 뒤 미술관 건립에 본격적으로 발벗고 나섰죠"


-구순을 앞두고 리각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게돼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는 리각미술관 관장인 아들(이상원 관장)의 제의로 이뤄졌어요. 전시회 제목인 '찰나의 자취'도 아들이 지었지. 야외 조각품은 40~50대 왕성하게 활동할 때 제작한 작품이고 전시장에 걸린 회화는 70대 중반에 그렸어요. 그리고 몆 점의 테라코타 작품은 최근에 만들었지. 난 작품을 만들 때 행복을 느껴요"


▲이종각 작가 회화작품.[UPI뉴스]

 

-천안에 리각미술관을 설립한 것은 고향이기 때문인가요?

"꼭 그런 것은 아니예요. 처음엔 선산이 있는 청주 옥산을 고려했다가 포기하고 경기도 곤지암을 유력하게 검토했지. 자연환경도 좋았어요. 하지만 부지 매입 계약을 한 뒤 측량을 했더니 하천 때문에 도저히 미술관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지. 다시 경기도 양평 주변을 헤매다가 눈앞에 태조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현재의 자리를 낙점했어요. 결국 고향 땅이 미술관의 적지가 된 셈이야"


-리각미술관의 모델이 된 미술관이 있나요?

"덴마크에 있을때 코펜하겐에서 40분 떨어진 루이지아니뮤지엄에 꽂혔어요. 틈만 나면 그 곳을 갔지. 주변 환경도 완벽하고 건물도 아름다웠으며 훌륭한 작품을 대거 소장하고 있으니까. 굳이 모델을 찾는다면 아마도 그 미술관이 아닐까해요"


-리각미술관에 대한 바램이 있다면?

"리각미술관엔 전시장도 있지만 카페도 있어요. 그런데 전시 공간보다 카페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너무 아쉬워. 관람객들이 어필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는 것은 미술관 관장의 과제지만 카페 손님들도 차를 마시러 온 김에 실내 전시장과 조각 공원을 한번 쯤은 둘러봤으면 좋겠어요"


내년에 구순을 맞는 작가는 예전만큼 기력이 없어 청동작품은 제작하지 못하지만 진흙에 예술적 혼을 불어넣은 소품을 꾸준히 만들고 있는 영원한 현역작가다.


소품이든 대작이든 풍성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그의 작품은 조각에 투신한 이후 70년간 외길인생이 응축된 한국 조각의 또 다른 역사에 다름아니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타다시 카와마타는 " 예술의 좋은 점은 사람들과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교류할 수 있는 최상의 도구"라고 했다. 미술관에서 훌륭한 작품과 직접 대면해 정서적으로 교감하면 영혼이 풍요로워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이종각 작가가 '리각미술관'에 애정을 쏟는 이유이기도 하다.


KPI뉴스 / 박상준 기자 ps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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