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열의 AI경제] K-바이오의 역발상…뇌졸중 신약 단서 찾았다

장한별 기자

star1@kpinews.kr | 2026-04-30 11:01:24

IBS, 뇌세포 사멸 일으키는 '교세포 장벽' 억제 기전 세계 최초 규명
동물실험서 골든타임 48시간까지 연장 확인…뇌질환 치료 응용 기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지금 대한민국 경제 5분의 1을 먹여 살리고 있다.(2024년 수출액 기준) 시스템 반도체나 파운드리 등 보완해야 할 약점도 적지 않지만 1위인 미국은 물론, 추격자인 중국조차도 한국의 메모리 왕국에 함부로 덤비지 못할 정도로 글로벌 위상은 확고하다. 

 

그런데 넥스트 반도체, 즉 21세기를 끌고 갈 차세대 산업인 바이오(Bio) 분야 연구개발(R&D)에서는 아직 세계 최초, 세계 최고 기록을 낸 선수가 없었다. LG생명과학 '팩티브', SK바이오팜 '세노바메이트', 유한양행 '렉라자' 등 미국 FDA 승인을 받뇌노거나 상업화에 성공한 일부 사례는 있지만 여전히 블록버스터 한방은 나오지 못했다. 

 

정부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를 동원해 힘껏 지원하고 있지만 아직 쓸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과기정통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에서 뇌졸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해 국제적 권위를 지닌 저명 학술지 '셀 메타볼리즘(Cell Metabolism)'에 논문을 싣는데 성공했다. 

 

아직 쥐와 원숭이 실험에서 효능을 확인한 수준이지만, 기술이전 사업화로 향후 인체 임상까지 완료되면 우리나라 최초의 글로벌 히트 신약이 탄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K-바이오 산업의 게임 체인저 기대를 한껏 높인 쾌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IBS 기억 및 교세포 연구단 이창준 단장 연구팀과 을지대학교 공동연구진은 지난 28일(한국시간) 이 같은 연구 성과를 언론에 발표하며 자체 개발한 뇌졸중 신약 후보물질 'KDS12025'의 작용 기전(機轉, mechanism)과 동물 실험 결과까지 공개했다. 

 

▲ 챗GPT 생성

 

허혈성(虛血性) 뇌졸중이란 뇌로 가는 혈관 안에 혈전(血栓, 피떡)이 생겨 혈액 공급이 중단되면서 뇌세포가 손상되거나 죽는 병을 말한다. 현재 혈전을 녹이는 약 말고는 딱 부러진 치료제가 없는 실정이다. 특히, 뇌경색이 발생한 후 3~4시간의 골든타임 안에 혈류 공급을 회복시키지 못하면 사망하거나 절반 이상이 사지 마비, 언어기능 상실, 인지능력 훼손 등 영구 장애를 안게 된다. 전 세계 7000만 명의 환자들이 앓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매년 10만 명, 5분에 한 명꼴로 한국 성인 중 2~3%가 발병해 전체 사망자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무섭고도 흔한 질환이다. 연구진은 "중국의 뇌졸중 발병률과 사망률은 미국의 7배에 달할 만큼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라며 "우리 연구결과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연구진이 개발한 뇌졸중 신약 후보물질의 작용을 쉽게 설명하면 뇌 속에 생기는 세포 울타리를 걷어 내거나 아예 생기지 않도록 미리 막는 효능을 발휘한다. 뇌는 내부에 상처를 입으면 해당 부분을 울타리처럼 둘러싸 차단하는데, 문제는 그 안의 뇌세포가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교(膠)세포 장벽'이라 불리는 이 울타리는 종래 상처 부위의 염증이 확산되지 않도록 뇌 전체를 보호한다는 순기능만 강조됐으나, 한국 연구진은 장벽 내 뇌세포 사멸을 역기능으로 보고 이를 예방하는 물질을 찾아냈다. 통념을 깨고 역발상을 한 셈이다. 

 

새 물질은 콜라겐으로 이루어진 교세포 장벽이 처음부터 생성되지 않도록 별세포의 '과산화수소(H₂O₂)'를 물로 분해해버린다. 별세포는 하늘의 별처럼 생겼다고 해서 성상(星狀) 세포로도 불린다. 뇌 속에 가장 많은 교세포의 대부분이 별세포이다. 뇌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고등 사고(思考)작용의 핵심은 뇌세포라고 보고, 별세포를 포함한 교세포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이창준 IBS 교세포 연구단장은 수십 년 전부터 별세포를 파헤쳐온 세계적인 교세포 전문학자이다. 이 단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뇌졸중 발생 후 뇌세포가 사멸하는 분자 차원의 근본적 작용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하고, 치료 골든타임도 기존 3시간에서 48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는 점이 주목거리"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이 밝혀낸 기전을 보면, 먼저 뇌혈관 경색으로 산소 공급이 줄면 뇌 안에서 과산화수소가 급증한다. 이 과산화수소가 별세포를 자극해 콜라겐이 나오고, 그 콜라겐 교세포 장벽이 신경세포들을 둘러싸 사멸시킨다. 연구진이 개발한 후보물질 KDS12025는 혈액 내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과산화수소를 물로 바꾸는 능력을 100배 이상 높여준다. 

 

이 약물을 뇌졸중 증상이 나타난 생쥐 모델에 투여했더니 교세포 장벽과 신경세포 사멸이 거의 사라지고 저하됐던 운동능력도 며칠 만에 정상 수준까지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주목받는 점은 치료 가능 시간을 말하는 '골든타임'의 연장이다. 뇌졸중 치료를 위한 기존 혈전 용해제 tPA는 증상 발병 3~4시간 안에 투여하지 않으면 후유증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생쥐에 증상이 발생한지 48시간 후에 KDS12025를 투여해도 신경세포 사멸이 억제되며 기능도 회복되는 결과를 얻었다. 뇌졸중 발병 이틀 후까지로 골든타임을 연장한 것이다. 

 

연구진은 사람과 더 가까운 영장류(원숭이) 실험까지 해본 결과, 손을 못 움직이던 원숭이가 사흘 만에 뇌 병변(病變) 크기가 줄고, 일주일 후에는 다시 손으로 과일을 집어 먹을 정도로 회복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많은 환자가 발생하는 메이저 질환의 치료 후보물질을 기초연구와 신약개발, 전(前)임상까지 통합적 연구결과로 제시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벽도 만만치 않다. 인체 임상실험은 수천억에서 수조 원이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과 전 세계 보건당국의 허가 및 승인을 받아야하는 어려움 때문에 우리 기술을 수출한 글로벌 제약사가 수행했던 게 지금까지의 관행이다. 1, 2, 3상 관문을 모두 통과해야한다. 또, 신약 후보 KDS12025보다 강력한 물질도 찾아야한다. 

 

연구진은 발병 후 증상 확산을 막는 방어보다 이미 죽은 신경세포를 살리거나 대체하는 공격적 치료물질도 찾아볼 계획이다. 성공하면 골든타임을 놓쳐 뇌세포가 완전히 사멸하고 장벽이 견고하게 구축된 만성기 환자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다. 의료계는 한국 연구진의 이번 연구가 뇌졸중뿐 아니라 혈관성 치매, 외상성 뇌 손상 등 다른 뇌질환 치료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초고속통신망, 반도체처럼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전자(電子)를 제어해 정보통신(IT) 강국으로 올라섰던 대한민국이 또 다른 마이크로 세계인 분자 단위의 생물학에서도 '빨리빨리' 정신을 발휘해 하루바삐 바이오 강국으로 발돋움하길 기원해본다.

 

▲ 노성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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