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말모이' 윤계상 "진정성, 연기를 하는 목적이자 행복한 이유"
홍종선
| 2019-01-08 11:10:05
'몰랐던 이야기에 대한 호감과 유해진'이 출연 이유
"전작 '범죄도시'는 선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달린다"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 제작 더 램프㈜,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의 개봉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2016년 10월 개봉해 700만 대한민국 영화팬들의 사랑을 크게 받았던 '럭키' 이상의 웃음, 거기에 감동까지 보너스로 선사할 영화다. '럭키'가 유해진에 기댄 영화였다면 '말모이'는 유해진 옆에 한 남자가 더 있다. 콤비플레이로 힘을 보탠 배우 윤계상을 서울 팔판동 카페에서 만났다.
"되게 좋았습니다. 되게 좋았어요. 뿌듯한 느낌."
숨김없이 감정과 의견을 드러내는가 하면 인터뷰 내내 해맑은 웃음과 진지한 태도를 자유로이 오가며 모노 판토마임을 방불케 했던 '귀요미' 윤계상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할 수 있을까. 잠시 순수한 영혼을 충전하고 윤계상과 마주해 본다.
"참여한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작품이에요. (온갖 고난 속에서도 일제 강점기 때 시작해 해방 후 우리말 대사전을 완성해 낸) '말모이' 이야기, TV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 나왔던 걸 저는 잘 몰랐어요. 우리말이 그냥 잘 보존돼서 온 줄 알았지 그런 사건들이 있는 줄 몰랐는데, 시나리오 통해 알게 되니 부끄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참여하게 된 자체가 너무 좋은 일 아닌가 싶습니다."
반달 두 개를 하회탈처럼 눈에 달고 얘기하던 윤계상이 자못 진지하게 설명을 보탰다.
"평소에도 저는 배우로서 내가 무얼 할 수 있나보다 영화 자체를 생각하고 선택해요.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는 쪽이죠. 복잡스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엄청난 대의를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몰랐던 사실(말모이 이야기)에 대한 호감, 유해진 선배랑 한다는 것 자체가 메리트가 됐어요."
"중반까지는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이거 깜냥도 안 되는데 뭣 모르고 덤벼들었나? 류정환의 매력보다는 진정성으로 다가가가야 하는데 제 진정성로는 안 되더라고요. 저도 진정성 하나로 연기하는 사람인데(한숨). 아니 이 사람이 어떻게 서 있지? 그 부분이 고민됐어요. 같이 모시던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10년 동안의 원고를 일본 사람들에게 뺏기고 이런 고초들이 계속 이어지잖아요, 포기할 만한데 계속 버티는데 나는 어떤 힘으로 버텨야 하나. 이 정도면 타협할 만한데 안 했으니까 우리가 한글 쓰고 있는 건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류정환은 그 힘을 무엇으로 잡았나, 결국 애국심이죠. 우리 것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은. 저를 대입하지 않고 '그런 분이셨다'로 생각하고 다가갔습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했고, 내가 포기하면 다 없어지는 듯한, 벼랑 끝에 있는 사람. 신념이 아니라 정말 큰 짐 같은 거를 짊어진 사람. 처음엔 애국심으로 들어갔겠지만 나중엔 내가 놓으면 모든 게 없어진다는 생각에 놓지 못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시나리오에서 어떤 매력을 보았기에 출연을 결심했느냐는 질문은 자연스레 배우 윤계상이 말모이,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류정환을 표현함에 있어 어떤 점에 주안을 두었느냐로 옮겨갔다.
"제가 연기를 잡고 있는 끈은 (연기가) 너무 어렵고, 어려워도 계속하는데, 평가에 의해 포기하고 싶지는 않고 뭐가 됐든 이뤄지겠지 하는 마음이에요. 그런 마음으로 류정환에 대한 표현도 처음에는 '유연하게 가자' 했는데, 해 보니 그러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부러질 것 같은, 그 경직됨이 정환에게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를 보면, 류정환의 감정을 표현할 신이 없고 (영화 이전 살아온) 전사가 없어요. 술 마시다 농담하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어요. 아주 고지식한 면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이름은 달라도 누군가였을, 일본어 강제 사용으로 잊혀져가는 전국의 우리말을 모아 사전을 편찬하는 일로 조국을 지키는 방패로 삼았던 독립투사를 역사에 위배됨 없이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고심한 윤계상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마음속 감정도,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개인적 서사도 없는 상황. 캐릭터 멋지게 표현하겠다고, 아니 내 연기 호평 받겠다고 술 마시며 풀어졌다 올곧게 독립운동 했다 다채롭게 표현할 수 없었던 윤계상의 진심. 이 작품 안에서 배우로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보다 영화 자체를 보고 선택한다는 말의 뜻의 깊이 다가왔다.
"첫 촬영이 첫 번째 신이었어요. 보통 시나리오대로 촬영하지 않는데 만주 야산에서 뛰는 것을 처음으로 촬영했어요. 총 쏘는데 무섭더라고요, 일본군에 쫓기며 뛰고 구르고. 사명감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엄유나 감독님께서 일부러 첫 촬영으로 잡으신 것 같아요(웃음). 정환의 사명감이 조금이라도 제 가슴에 전해지도록."
좀 얄미운 질문, 오해하기 십상인 질문을 건넸다. 영화 '범죄도시'도 그렇고 실제로 주연이지만 조연처럼 보이게 하는 연기를 한다, 윤계상보다 작품이 먼저인 태도가 너무 좋다. 필요 이상의 흥분과 과장을 하지 않는다, 연기 잘한다 소리 듣는 길은 아니다. 따뜻한 인간미를 어느 배역에든 묻혀 낸다, 장첸에게조차. 그런 지점이 배우 윤계상의 한국영화 내 좌표가 아닌가 싶은데, 본인 생각은?
"정확하게 보셨습니다(웃음). 저는 진심으로, 저는 부럽기도 해요, 진짜 우리나라의 롤을 갖고 있는 배우들. 그분들의 화려한 역량, 꿈꿔 본 적 있었죠. 그러나 결국, '너는 뭘 할 때가 제일 좋아?' 자문했을 때 답은 진정성이었어요. 그건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류정환, 장첸, 같은 마음으로 표현했습니다. 물론 감독님들이 이러면 안 된다며 깔끔하게 상업적 캐릭터를 요구하는 때도 있지만 제가 연기를 하는 목적, 제가 제일 행복한 이유인데 포기할 수가 없는 거죠."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기보다 그렇게 연기하는 윤계상으로 살고 싶습니다."
"장첸을 연기해도, 악역을 연기해도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쟤는 뭐가 고민이 많다, 안쓰럽다, 그런 게 표현이 되면 좋겠고요. 그게 악역이라고 해서 싹 빼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해서든 넣고 싶어요.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영화인 것 같습니다. 배우로서 욕심 내 본 적, 목표인 적 있었지만 지금은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 영화가 잘되는 게 중요하지 제가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나오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게 살면 힘들 것 같아요. 언제나 잘해야 하고, 언제나 그런 역할 찾아야 하고. 캐릭터도 똑같은 마음일 거예요. 사람의 마음, 따뜻함,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을 겁니다. (열변을 토하고도 아쉬운 듯) 생각은 진짜 많은데 표현이 잘 안 되네요."
"한글에 대한 관심이 아니고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영화를 택했고 장첸을 연기했어요. 우리가 정말 좋은 시대에 살고 있구나, 너무 너무 힘든 시절을 보낸 분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배우 윤계상에게 한 수 배워야겠다. 글로 옮기고 보니 온통 '진지충'처럼 말한 윤계상처럼 보인다. 기자의 표현력이 부족하다. 그는 이런 진지한 고민조차 사람 기분 좋게 하는 미소와 육성 동반 웃음 속에 몸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얘기했다. 보통 배우들이 기자들을 향해 정면만 보고 얘기하는데 몸을 옆으로 돌려 시선을 우리에게 주며 얘기하기도 하는 등 자유로웠다. 형식은 예전에 봤던 대로 자유분방하고 독특한데, 생각은 한층 여물어있었다. 피터팬이 생각은 어른이 됐지만 영혼은 여전히 순수한 느낌을 유지하고 있다 할까. 인터뷰 분위기 깰까 얘기할 수 없었지만 배우 이하늬가 새삼 부러웠다. 이런 남자가 세상에 어디 또 있겠는가 말이다. 마지막 질문은 차기작이었다.
"아, '유체이탈자'예요. '범죄도시' 제작한 장원석 대표가 하는 영화예요. 아, 아직 제목 말하면 안 되나. '유XXXX'라고 써 주세요(웃음). 되게 특이한 영화예요. 1월12일 시작하고요. 완벽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얘기해도 돼요?"
계상씨 얘기해도 됩니다. 지난해 9월에 이미 보도됐어요^^
"공포영화? 아니에요. (급 무서움을 타듯) 아예 못 봐요, 시나리오도 못 봐요. 아, 너무 무서워요. 귀신, 너무 무서워요, 어렸을 때도 봤었고."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무서운지 공포영화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새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충분히 전달했다.
"'범죄도시', 선물이었죠. 정말 단비 같은. 너무 행복했죠. 지금은 다시 열심히 해야죠. 그건 선물처럼 주신 거니까. 인생이란 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잘해야 한다는 강박도 생기고 잣대도 생기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게 좋다 싶습니다. 저는 똑같아요. 연기하면서 죽을 것 같이 힘들고, 이것밖에 안 되나 좌절하고. 다만 조금씩, 조금씩 알아간다기보다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음, 이렇게 보일 수 있게 해 볼까? 이 장면에서 이것만은 해야 돼! 하지 않아요. 그래도 똑같아요, 나 여기(이 영화, 이 현장에) 잘못 온 것 같아ㅠㅠ 하는 느낌은요."
"시나리오 들어오면 너무 하고 싶은 걸 떨려하면서 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연기하는 게 너무 좋아서 행복합니다. 예전에는 사실 대중적 사랑을 받는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나리오 선택에)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제가 들어갈 수 있는 시나리오가 들어오니까 행복한 상황이에요."
차기작 질문이 오늘, 그리고 앞으로 영화를 대하는 자세에 대한 답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배우인지, 대중이 얼마나 윤계상을 사랑하는지 몰라서 더 매력이 넘쳤다. 그의 매력을 십분 맛볼 수 있는 영화 '말모이', 내일이면 볼 수 있다.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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