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 한국, 전전긍긍 일본…"양국 기업 모두 패자"

온종훈

| 2019-07-06 11:06:45

화웨이에 이어 日수출규제까지 '기로에 선 韓기업'
"韓日 기업 모두 피해…中 기업만 '어부지리' 할 수도"

"화웨이 사태에 이어 당혹스럽다. 입장을 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일본이 한국의 세계 1위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을 겨냥해 제품 생산에 필수인 핵심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공식화한 이후 나온 해당 기업의 반응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 때문에 '냉가슴앓이'해 오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고 완전히 수습되지도 않았다. 여기에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까지 겹쳐 두 번의 충격파를 직접 받은 전기ㆍ전자 분야 기업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일본의 반도체 핵심 부품 수출규제 실시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4일 오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고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을 대면했다.


손 회장의 초청으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 투자책임자(GIC)도 참석했으며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도 함께 했다. 40~50대의 대표기업인들이 같은 자리에 모인 것이다.

문 대통령과의 면담도, 경영인과 만찬회동도 미리 예정된 것이고, 공식적으로 손 회장이 강조한 것은 인공지능(AI)에 관한 얘기다. 하지만 언론은 손 회장이 일본 국적의 성공한 경제인이기 때문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의견도 요청받았을 것으로 봤다. 실제 손 회장도 국내 기업인과 만찬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그 부분(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 많은 것을 얘기했다"고 했다.


국내 기업의 고민은 당장 3개 소재의 수출규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소재와 완제품 재고 물량을 점검하면서 실제 공급 중단까지 이어지는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더욱 우려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규제 품목을 확대하는 등 다른 업종까지 대상을 확대해 전면전에 나서는 것이다. 일본 언론과 기업들도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한다는 위기감 속에서 양국 정부 간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반일감정에 불이 붙었다. 지난 5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관계자들이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일본 제품 불매운동 선언 기자회견에서 내건 플래카드. [정병혁 기자]


소재산업 육성 등 너무 먼 얘기…기업에는 'NO답'


일본은 소재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다. 국내 기업은 일본산 소재를 수입해 완제품이나 반제품, 부품을 만들어 중국과 미국 등에 수출한다. 이런 국제 분업 구조가 정착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미국에 360억 달러, 중국에 460억 달러의 상품 수지 흑자를, 일본에는 170억 달러 적자를 봤다. 화웨이 사태 당시 우리 기업들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던 것도 이 같은 분업구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발표된 지난 1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구매 담당팀은 일본으로 날아갔다. 일본의 소재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기 위한 것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말했듯 3개 소재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을 만들 때 가장 필수적인 품목이기 때문이다.


관련 한국기업이 생산차질에 이르는 기간에 대해 이견은 있지만 기업은 다급하다. 그 만큼 불화수소(에칭가스),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개 품목은 일본 기업이 세계시장의 70~90%를 장악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소재 중 1월부터 5월까지 이들 품목의 일본산 수입 비중은 불화수소 43.9%,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93.7%였다.

더 큰 우려는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연구ㆍ개발(R&D)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자‧이온빔 등은 회로 선폭을 줄이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필수적인 광원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연구‧개발과 대형 선(先) 투자로 경쟁하는 '시간 경쟁업'이 본질이다. 이번 수출규제가 본격화해 실제로 현장에 소재 공급이 중단되면 그 충격은 예상을 웃돌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정부와 업계는 이번 사태 이전에도 소재와 관련해 일본에 대한 종속성을 탈피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불화수소의 경우 이미 지난해부터 공급 중단 가능성을 대비해 대만 등 공급 루트 등을 다변화했고 일정부분 성과를 내기도 했다.


관련 기업들은 매년 1조 원씩을 투자해 소재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환영하면서도 국산화까지 걸릴 시간이나 성공 여부 등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특히 이번 사태가 외교 문제로 발생한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서 빠르게 해결책을 마련해 주길 희망하고 있다.


전자업체 한 관계자는 "이 분야의 산업구조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어떤 형태든 정부 관계자와 기업인들의 만남은 그저 부담일 수 있다"며 불편한 속내를 털어놨다.

日기업도 이대라면 '공멸'…中 '어부지리' 경계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5일 '반도체 소재 규제 대상 확대를 경계하는 한일 기업'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반도체 외 다른 업계에서도 한국과 일본 산업계가 경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공작기계 업체 간부의 말을 인용해 이번 사태가 확산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 일본 언론들도 관련 기사와 사설을 통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주도한 이번 조치가 자유무역의 근간을 흔들고 있으며 결국 최대의 피해자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기업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장 3개 핵심 소재의 수출 규제로 우리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생산의 차질이 발생하면 다시 우리 기업으로부터 패널 등을 공급받는 일본 기업의 피해도 불가피하다. 실제로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TV업체 대부분이 한국 기업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을 공급받고 있다.


한국산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경로로 일본의 컴퓨터 제조 등 전기‧전자 업체에 공급되고 있어 이번 조치로 발생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의 타격은 고스란히 일본 기업을 향한 부메랑이 될 수 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사태에 대해 "결국 양국 기업 모두에 피해를 줄 것이며 그 뒤를 바짝 쫓는 중국 기업이 유일한 승자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의 신화통신조차 이번 사태를 전망하면서 양패구상(兩敗俱傷ㆍ쌍방이 다 패하고 상처를 입음)이라고 지적했다.

 

KPI뉴스 / 온종훈 기자 ojh111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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