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중앙은행가 DNA 굳건한 파월···유력 차기 한은 총재는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hongkyooncho@korea.ac.kr | 2026-03-19 10:58:17

파월 美연준 의장, 트럼프 행정부 압력에도 중앙은행가 DNA 굳건
차기 한은 총재, 경험·통찰력 축적한 진정한 중앙은행가 정신 필수

'통화정책은 끊임없는 상충 관계를 나타낸다. 금리 인하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임금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이러한 효과는 동시에 나타나지 않는다. 금리 인하는 단기적인 경기 호황을 촉발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단기적인 이익과 장기적인 비용은 집권 정치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과 국가의 장기적인 경제 안정에 최선인 것 사이에 갈등을 야기한다. 국가 경제 성과에 대한 책임이 가장 크고 그래서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금리를 인하하려는 유혹이 가장 큰 정치인은 바로 대통령이다. 의회는 이러한 위험을 예견했다. 따라서 금리 결정권은 연방준비제도(연준)에 위임하고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연준을 보호했다. 의회가 만든 제도 하에서 목표 금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결정한다.'

 

▲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배경은 연준 건물과 한국은행 전경. [챗GPT 생성]

 

미국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의 지난 금요일 판결문이다. 미 연준 본부 건물 개보수 공사 비용이 예산을 초과했다며 법무부가 착수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형사 수사와 관련하여 발부된 소환장(subpoena)을 차단한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공사와 관련하여 파월 의장에 대한 소환장이 부당한 이유를 설명함에 있어 중앙은행 독립성의 본질을 명확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연준을 보호하는 것이 왜 제도적으로 중요한지를 분명히 했다. 법무부의 수사는 연준 이사회가 공사 계획을 승인한 지 9년, 공사가 시작된 지 4년 만인 올해 1월 시작되었고 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나온 것이다.

제임스 보아스버그 미 연방 판사는 이번 판결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 본부 건물 개보수 공사 비용에 대한 수사를 통해 파월 의장이 대통령의 끊임없는 금리 인하 요구에 굴복하도록 압박하려고 했음을 지적했다. 파월 의장에게 발부한 소환장의 지배적인 목적이 파월을 괴롭히고 압박하여 대통령에게 복종하거나 사임하고 대통령의 뜻에 순응할 다른 연준 의장에게 자리를 내주도록 하는 것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파월 의장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사실상의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며 행정부의 주장은 매우 빈약하고 근거가 부족하여 핑계(pretext)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과 미 공화당 일부 의원들마저 파월 의장에 대한 이번 수사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 왔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유례없는 시도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파월 의장은 법무부의 수사를 연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전례 없는 시도라며 강력하게 비판해 왔다. 트럼프는 법무부의 수사에 본인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부인했으며 백악관은 이번 판결에 대한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공화당 톰 틸리스 상원의원은 파월에 대한 법무부 수사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트럼프가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케빈 워시에 대한 상원 인준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틸리스 의원은 파월에 대한 형사 수사가 얼마나 허술하고 경솔했는지를 사법부의 판결이 확인시켜 주고 있으며 수사는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려는 실패한 공격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도와 정책이 매우 혼란스러운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미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여전히 굳건함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파월 의장에 대한 부당한 형사 수사를 둘러싸고 이루어진 사법부의 판단과 입법부의 일부 움직임은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살아있음과 함께 중앙은행 독립성이 지니는 의미를 새삼 일깨워 준다. 아직 상원 인준 절차가 남아 있는 워시에게도 트럼프의 온갖 압박에 굴하지 않으며 국민경제를 위해 통화정책을 결정해 온 파월의 중앙은행가다운 의연함과 굳건함은 차기 의장직 수행에 귀감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중앙은행 총재가 여러 형태로 다가올 수 있는 행정부의 압력과 마주하는 것은 감당해야 하는 중앙은행가의 책무이자 숙명이라 할 수 있다. 중앙은행은 그 장(長)의 임명을 대통령이 하지만 대통령의 직접 지휘를 받는 내각(cabinet)과는 달리 업무의 독립성이 철저히 보장되어야 하는 기관이다. 중앙은행 총재의 직은 독립성에 관한 성찰을 일상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자리이다. 대통령의 직접 지휘를 받지 않는 독립적 기관을 이끄는 중앙은행 총재에게 필수적으로 요청되며 반드시 갖춰야 하는 조건은 파월이 보여주고 있는 중앙은행가 정신(central banker spirit)이자 DNA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중앙은행가 정신과 DNA는 단시일 내에 체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의 오랜 시간과 성찰과 사회적 신뢰를 통해 만들어지는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유력 차기 한국은행 총재가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만일 대통령의 직접 지휘에 익숙한 행정부처 관료로 잔뼈가 굵은 인사라면 중앙은행가 정신과 DNA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치열한 현장 경험이 부족한 채 관찰자적 입장에서 원론적 시각을 강조하게 될 개연성이 있는, 예컨대 국제기구나 학계, 연구기관에 주로 몸담은 인사라면 중앙은행가 정신과 DNA를 기대하기란 또한 쉽지 않을 수 있다.

중앙은행이 걸어온 영광의 시기 그리고 시련의 시기를 지나며 중앙은행가에게 오랜 기간 축적되어 온 경험과 통찰력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대전환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될 터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중앙은행가의 존재와 책무는 우리 시대에 매우 소중한 가치로 다가온다. 오랜 경험과 통찰력을 축적한 진정한 중앙은행가 정신은 차기 한국은행 총재의 필수조건이다.
 

▲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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