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의 두 번째 입을 발견한 건 지난 주말이었습니다. …물에 젖어 드러난 램의 뒷덜미에 평소와 다른 뭔가가 보이는 거예요. 뻐끔거리는 연한 분홍색 입술이랑 삐뚤빼뚤한 이빨. 아무리 봐도 그건 입이었어요. 코 밑에 달려 있어야 하는 입이요! 우리 인류는 입이 두 개이지도, 뒷덜미에 입이 나지도 않잖아요.
| ▲호러와 SF, 드라마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소설가 조예은. [자음과모음 제공] '이교'가 절친 '램'의 뒷덜미에서 두 번째 입을 발견했다. 다른 친구가 이 사실을 학교에 신고했고, 램은 죽음이 기다리는 황량한 타운 바깥으로 추방될 처지에 놓인다. 입은 한 개, 코도 한 개, 눈은 두 개인 형태가 '정상' 인류인 집단에서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더 돋아나면 괴물 취급을 당하는 '타운'이 있다. 이 공동체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제1규칙은 '얼굴이 아닌 곳에 난 이목구비를 보면 신고하라'는 것이었다.
이교가 태어나기 육십여 년 전 인류는 멸망했는데 극지방 빙하가 대부분 녹아내린 게 그 발단이었다. 대도시들은 잠겼고 쓰나미로 원자력발전소들이 파괴되면서 무수한 죽음과 난민 행렬이 이어졌다. 여기에다 빙하 깊숙한 곳에 얼어 있던 고대 바이러스들 중 하나가 신의 형벌처럼 기괴한 '저주병'을 감염시켰다.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초기 증상은 눈이었다. 얼굴에 달린 두 개의 눈 말고도 몸 곳곳에 종기처럼 눈이 생겨 났다. 귀거나 입인 경우도 있었다. 그다음은 사지였다. 손과 발, 팔과 다리 그리고 심하면 머리까지도. 변형이 어디까지 진행되는지는 각양각색이었다.'
이들 감염자들은 괴물이 되어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를 무자비하게 물어뜯고 씹어 삼킬 뿐이었다. 교과서에 실리지는 않았지만, 타운의 사람들은 그런 내용으로 교육을 받았다. 기실 '이교' 도 태어나면서부터 등 한복판에 눈이 있었는데, 용케도 심판관들의 눈을 피해 정상인으로 분류됐다. 의사인 아버지가 그 눈을 꿰맸고, 어머니는 눈꼬리 부분에 색을 칠해 눈이 아니라 상처처럼 보이도록 위장했다. 이교는 등에 눈을 달고 성장했어도 괴물이 되지는 않았다. 과연 타운 지배자들의 '저주병'에 관한 판단은 타당한 것일까. 이교는 뒷덜미에 입이 생긴 램을 떠나보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그 친구를 찾아가리라고 다짐한다.
조예은 연작소설집 '꿰맨 눈의 마을'(자음과모음)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작금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풍자한다. 기묘한 이야기로 흘러가는 서사는 어둡지만 따스한 사랑과 희망을 방기하지 않는다. 호러와 SF, 드라마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조예은의 신작이다. 이른바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가 희미해진 흐름의 현장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텍스트라 할 만하다. 초두를 장식한 표제작 '꿰맨 눈의 마을'에서는 세 번째 눈을 등에 숨기고 사는 '이교'와 뒷덜미에 두 번째 입이 생긴 '램'을 등장시켜 차별의 시스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어지는 '히노의 파이'에서는 이 시스템에 복무하는 부품 같은 역할을 하는 '백우'와 '히노'의 사랑 이야기를 펼친다. 백우는 감염자들을 황야로 내쫓는 '문지기' 역할을 맡았고, 히노는 추방당하는 이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독이 든 파이를 만들어 제공하는 역할이다. 백우와 히노가 소통하고, 히노는 추방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악역을 피하기 위해 별도의 레시피로 파이를 만든다. 타운의 유일한 외부 출신 히노도 어느 사이 날개 같은 손가락들이 몸에 생겨나 추방당해야 하는 처지에 이른다. 문지기는 자신이 추방했던 사람들이 간 곳으로 연인과 함께 떠난다. 세 번째 연작 '램'에 이르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의 싹이 보인다. 램은 먼 곳의 보이지 않는 신인류의 통신에 응답한다. '살려주세요…'
-구인류가 뭔지 몰라? 그럼 신인류가 뭔지도 몰라? …내 손등과 이마의 눈, 그리고 네 등의 눈. 너랑 내가 바로 신인류잖아. 진화를 거부하거나 실패한 이전 세대 인류가 바로 구인류고. …물론 이 급격한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던 이들도 있었지. 대부분은 변이를 겪지 않은 구인류였어. 신인류들과 함께 변화한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이들이 훨씬 많았지만 견디지 못한 이들은 도시를 떠났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신인류들이 닿지 않는 곳, 인적이 드문 황야나 버려진 땅에 자기들만의 마을을 만들었지. 그게 타운이야. | ▲조예은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듯하지만 정작 세부를 들여다보면 차별과 배척은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자음과모음 제공] 램이 황야에서 만난 여자는 신인류였다. 신체 변형자의 비율이 전 세계 인구의 87퍼센트에 달했을 때 사람들은 이 범세계적인 증상을 질병이 아닌 진화라고 명명했지만, 자신들은 다르다고 여기는 '구인류'들이 그들만의 타운을 만들고 가짜뉴스로 구성원들을 현혹하며 철저하게 배타적인 공동체를 고수한 것이다. 전화로 만난 조예은은 "이 소설을 착상한 시점은 장애인들 통행권 시위 때문에 말도 많았고, 아파트 촌에서도 외부인과 입주자 통로를 구별하면서 충돌이 생기던 시기였다"면서 "서로 배척하고 소외시키는 행태들이 지긋지긋해서 소설로 써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이즈음 한국사회도 '구인류'와 '신인류'가 자신들만의 성벽 안에서 서로 배척하며 살아가는 형국은 아닐까. "그렇죠. 구인류와 신인류가 혼합된 상태로 볼 수 있는데 아직까지는 구인류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생각해요. 이전에 비해서는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하지만, 세밀한 부분에서는 오히려 구별 짓고 차별하는 행태들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옷을 입고 있느냐까지, 더 세밀한 부분에서 심하게 구별 짓고 있는 것 같거든요. 반발 작용처럼 양측이 같이 커지면서 중간 지점에서 부딪쳐 파동이 더 커지는 양상인 거죠."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조예은은 교양수업 시간에 교수가 내준 '좀비소설' 숙제를 계기로 소설 쓰는 대열에 접어들었다.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서 숙제로 썼던 단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로 우수상을,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첫 장편 '시프트'로 대상을 수상하며 본격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어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장편 '스노볼 드라이브'를 비롯해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를 펴냈고, 소설집으로는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등을 숨가쁘게 출간했다. | ▲조예은은 "세상을 본뜬 모형을 만든다는 점에서 소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20대 초반에는 책보다는 영상물을 많이 봤어요. 영상물과 책(소설)의 공통점은 어쨌든 허구의 세계를 그린다는 거잖아요. 저는 그 이야기라는 가상의 세계에 매료됐었거든요. 영상 콘텐츠는 자본과 투자가 커질수록 한계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영상은 자본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고, 실제로 판타지를 구현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얼마어치를 구현하느냐, 이런 거에 따라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 있는 반면에 소설에서는 작가가 구현하고 싶은 만큼 마음껏 펼쳐낼 수 있잖아요."
다양하고 기묘한 설정을 현란하게 동원해 이야기를 펼쳐가는 조예은의 세계를 담아내기에 영상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호러물을 특히 좋아한다는 조예은은 "호러 좋아하는 사람들을 잔인하고 끔찍한 것을 즐기면서 자극을 추구하는 이들로 평가하는 건 일차원적인 생각"이라며 "사람들이 공포감을 느끼는 이유는 고통과 죽음에 맞닿아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죽음은 사실 엄청나게 멀리 있는 게 아니라 항상 가깝게 있는 거고, 그것을 한 번만 뒤집으면 삶 그 자체와도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에 그 모든 걸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호러라는 장르가 매력있다"고 덧붙였다. 조예은 표 소설에는 '공포와 온기'라는 상충된 키워드가 공존한다. 이전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푸른 머리카락의 살인마'의 시공을 넘나드는 푸른 마녀에 얽힌, 붉은 피가 낭자한 살인 서사에서조차 온기가 느껴진다. 조예은은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를 어울리게 만드는 작업 자체가 재미있다"면서 "전략적으로 온기를 동원한다기보다 제가 지닌 바탕색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예은은 "세상을 본뜬 모형을 만든다는 점에서 소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면서 "그런 모형을 먹음직스럽게 잘 만드는 사람이 항상 되고 싶다'고 말한다. 소설집 말미에 붙인 에세이 '빛나는 모형들'. -음식점 앞에 선 사람들은 진열대 너머의 모형이 모형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다. …최대한 먹음직스럽고, 진짜 같지만 어딘가 이상한, 이상해서 계속 보게 되지만 끝내 진짜라고 믿고 싶어지는 그런 걸 만들고 싶다. 나는 모형들이 좋다. 지면과 스크린의 진짜인 척하는 모든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래서 일단은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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