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그림을 곁들여 시를 파는 시(詩)팔 놈입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3-12-01 17:43:45
치유의 방편으로 그린 그림들, 시쓰기의 연장으로
무작정 떠나 낮은 곳에서 만난 이들의 '높은' 말 기록
"시와 그림이 만나서 제3의 존재로 폭발하길 기대"
'그림에 미친 화가의 멋진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렇게 그림과 글에 매달려 이틀이고 사흘이고 지나고 나면 나를 괴롭히던 생각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잊으려고 그리고, 무서워서 그리고, 두려워서 그렸다는 얘기다. 그리는 동안은 아무 생각 안 하게 되니까. 가족 걱정, 돈 걱정, 인연 걱정, 할 일 걱정, 미룬 일 걱정, 약속 걱정 따위 다 잊을 수 있으니까 그린다.'
김주대 시인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불과 9년 전부터다. 그동안 운문 형식의 시화집 3권과 이야기 서화집을 펴냈고 이번에는 그림산문집 '방방곡곡 사람냄새'(詩와에세이)를 추가했다. 말 그대로 훌쩍 발길 닿는대로 방방곡곡으로 떠나 생활의 현장에서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이들의 육성을 생생하게 그림과 이야기로 담은 산문집이다.
전업화가가 아닌 사대부들이 여기로 그림을 그리고 싯구를 적어 넣었던 문인화의 형식을 잇되, 매화나 난초 같은 사군자 중심의 한가로운 그림이 아니라 시의 연장으로서 사람과 생활을 담아내는 김주대 스타일의 새로운 문인화를 지향하는 맥락이다. 그에게 이제 그림은 시의 확장이자 자신을 치유하는 매개물이기도 하고, 밥을 먹여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매체로 자리잡았다. 사람들을 만나러 무작정을 차를 끌고 떠나 필부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같은 풍경이 되어 그림과 시로 육화해내는 일이 그가 해온 작업이다. 이번 서화집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그의 '문인화'들과 함께 펼쳐진다.
-2012년 시집 '그리움의 넓이'를 낸 이후 시보다는 그림이 더 눈에 띄는 길을 걸어온 것 같다.
"왜 시만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느냐고 흔히들 묻는데, 그림은 시의 연장, 그러니까 결국 그림도 시라고 대답한다. 그림을 그릴 때 지켜온 규칙이라면 무조건 글을 쓰고 나서 그림을 그린다는 거다. 그림을 먼저 그리면 화가 아닌가. 시를 쓰면서 사실 이미지가 많이 떠오른다. 쓰면서 그림은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완성되는 셈이다. 시가 그림으로 설명되거나 시의 모자란 부분을 그림이 보완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는 이들도 많은데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 어렵겠지만, 시와 그림이 만나서 제3의 존재가 된다. 예컨대 파란 물감과 붉은 물감이 만나서 보라색이 되는 게 아니라 불과 기름이 만나서 폭발하는 그런 관계, 그런 문인화를 지향한다."
-그림을 어떻게 시작했는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부 한 달 했다. 아버지가 찾아와서 미술부 그만 하라고 찰흙으로 만든 조소 작품을 다 부셨다. 가계에도 예술 쪽으로 소질 있는 사람은 없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스승이었다. 페친 한 분 작업 현장에 놀러갔다가 붓을 선물받아 집에 와서 시도해봤다. 사진을 보고도 그리고 내 얼굴을 그리기도 했다. 낙관과 두인을 찍는 것도 페친들이 가르쳐줬다. 초기 그림은 아주 허술해서 만화 수준에도 못 미친다. 재미로 그리는 사람은 못 당한다고 누가 말하던데,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렸다. 판 것과 전시한 작품 빼고도 지금 600장 가까이 쌓여 있다."
-짧은 기간에 이 정도 성취를 이루었다니, 전생에 화가였던 모양이다.
"그건 모르겠다. 살기 위해 그렸다. 운영하던 학원이 망하고 말 그대로 길거리에 나앉았다.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6개월 간 신경정신과에 다니면서 약을 먹었다. 혼자 나와서 사는데 헛것이 보였다. 뱀이 몸을 휘감는데 손에 잡히는 느낌이었다. 맨발로 밖으로 뛰쳐나가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약을 먹으니까 좀 났던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차츰 줄이다가 약을 끊게 됐다. 처음에는 페친이 선물한 아이패드로 그리다가 붓으로 그리기 시작하니까 표정들이 세밀해져서 재미있었다.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 못 보면 그리지 못하는데 보면 비슷하게 그릴 수는 있다. 시를 그림으로 그리는데 굳이 잘 그릴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있었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스승이고, 이들이 또 내 그림을 사주는 이들이다."
-시인에게 그림이 치유와 생계까지 도와준 중요한 매체가 됐다.
"나는 시를 그리는 것이지 그림을 그리는게 아니니 화가들에게 질투하지 말라고 했다. 사실 나는 화가들보다 글을 조금 더 잘 쓰니 그들에게 고개 안 숙여도 되고, 시인들에게도 내가 그들보다 그림을 좀 잘 그리니 고개 안 숙여도 된다고, 그렇게 교활하게 말하곤 한다."
-화가는 아니고 시에 그림을 곁들여 파는 '시(詩)팔 놈'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심각한 것도 재미 있게 웃기게 쓰자는 쪽이다. 서부영화 보면 껌 씹으면서 쏘고 장난 치면서 죽어가지 않나. 안 그러면 또 병 날까 겁이 난다. 아직 후유증이 살짝 남아 있다. 지하철 같은 거 못 탄다. 타면 식은 땀이 나고 숨이 막힌다. 낮에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린 그림도 많다. 덜 그린 거는 잠자리에 가지고 들어간다."
-책 제목이 '방방곡곡 사람냄새'인데, 줄기차게 어떤 사람들을 찾아 헤맨 건가.
"결국 돈도 사람의 문제이니 사람 때문에 입은 상처가 크다.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런 사람들을 찾고 싶었다. 무작정 떠나서 시골에서 마주친 이들 중에는 도인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툭툭 뱉는 이들이 있다. 이번 책에는 그런 분들 만난 이야기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경지는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생활 속에서 터득한 것이다. 그분들도 발표만 하면 되는데 시간도 기회도 없을 뿐이다. 쓸데없는 이들이 더 많이 발표하고 문학적으로 유명해지고 그런다. 진짜 깨달은 도인들은 발표도 못하고 농사만 짓고 있다. 페이스북에 이들과 대화한 내용의 핵심을 다 올리곤 한다. 이번 책에 나온 이들을 찾아가 책을 전달하고 다시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양양에서 만난 늙은 여인의 말. '감동만 쫓아가는 것보다 시인님 말씀대로 식상하더라도 성심을 가지고 밀고 가야지 싶어요. 정치 얘기 하다 보면 왜 싸우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각자 자기 삶에서 나온 판단일 텐데 그걸 존중해주면 될 텐데 말예요. 우리 동네 사람들도 아저씨들 모이면 그걸로 맨날 싸워요.'
-정치적 색채가 짙은 글이 많은 편이다.
"정치에 복무하는 시나 올린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건 시를 하찮게 보는 시각이다. 정치와 시를 다르게 분리해서 보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다. 정치는 현실 정치판에만 있는 게 아니라 대자연 속에도, 사랑 속에도, 심지어 음식에도 있다. 음식 만들 때 너무 달면 좀 덜 단 것을 첨가해야 되지 않나. 정치라는 게 그런 거다. 사람들 관계에서 너무 모난 건 깎고 모자란 건 보태주어서 함께 잘 살기 위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게 정치라면, 자연도 그렇다. 너무 뜨거움과 차가움이 분리되면 바람이 그것을 잘 중화시켜서 평온한 공기 상태로 만드는 정치를 하는 거다. 땅의 말을 대신해서 허공에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게 꽃의 정치고, 높은 곳과 낮은 곳은 폭포가 생겨서 그 둘을 이어주니까 물의 정치인 거다. 정치를 따로 떼어놓고 구분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대신, 제가 정치를 말할 때는 사람들이 생경하지 않게 항상 문학과 함께 대자연의 현상과 함께 시인이 볼 수 있는 예술적 현상과 함께 말하겠다는 기본 생각이다."
김주대는 그를 치유해주고 생계까지 도와준 그림에서 한 발짝 떨어져 다시 시에 무게중심을 싣겠다고 했다. 그림은 지속적으로 그리되 시를 더 앞세우겠다는 말로 들린다. 이미 시집 원고는 출판사에 넘겨놓은 상태여서 조만간 독자들에게 다가갈 것 같다. 그가 책 속에서 큰스님의 입을 빌려 일갈하는 문학론.
'요즘 보면 시인은 시인이 읽을 시를 짓고, 소설가는 소설가가 읽을 소설을 쓰고, 평론가는 평론가가 볼 평론을 하는데 그따위가 무슨 문학이냐. 즤들끼리 놀고 자빠졌잖느냐. 독자 없는 작가는 작가가 아니라 자위가다. 독자들 눈치를 살살 보면서 거기에 맞추어 문학을 기호품처럼 만들어내는 것도 문제지만 독자가 없는 문학도 문학이 아니다. 페이스북은 좋은 마당이다. 페이스북의 수준에 머물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페이스북 하면서 페이스북 살살 씹는 문인들도 간사하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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