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써라, 그래야 존재할 것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4-11-01 17:30:13
머릿속 생각 번역이 쓰는 행위, 읽는 것도 쓰는 일인 셈
문학의 '악'은 어둠을 통과하는 빛을 그리기 위한 요소
"우리는 여러번 죽음과 출생을 경험하며 거듭 나아간다"
올해 박경리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실비 제르맹(70)이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교보문고(대표 김상훈 안병현)가 주최한 '2024 세계작가와의 대화 초청 강연' 자리에서 독자들과 만났다. 이날 강연에서는 번역가 류재화 교수가 사회자 겸 대표 질문자로 나선 가운데 깊은 울림을 주는 시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작품세계의 실비 제르맹 문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경청했다.
소르본느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소설 쓰기로 전향한 실비 제르맹은 19세기 보불전쟁부터 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유럽의 역사를 1985년 마술적 사실주의를 차용한 신비주의적 서사시 형태로 장엄하게 묘사한 장편 '밤의 책'(참조_ [조용호의 문학공간] "바람과 불이 낱장을 넘기는 거대한 책")으로 펴냈다. 이 첫 장편으로 여섯 개 문학상을 휩쓸면서 화려하게 부상한 그는 후속작 '호박색 밤'을 비롯해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마그누스' '숨겨진 삶' '페르소나주' 등을 출간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 왔다. 국내에도 그의 작품이 다수 소개돼 독자층이 넓은 편이다.
이날 강연 '써라, 그래야 존재할 것이다'는 쓰는 행위의 미궁 같은 욕망의 실체를 파악하고 '읽어라, 그래야 발견할 것이다'와 쌍을 이루는, 파도와 같은 끝없는 쓰기와 읽기의 여정에 대한 실비 제르맹의 성찰로 시작됐다. 인물, 언어, 문장, 공간 등 다양한 문학적 요소들에 대해 경청하는 자리였다. 문학의 근본을 파고드는 곡진한 성찰이 쌀쌀한 광화문 가을밤을 덥혔다.
-'써라, 그래야 존재할 것이다. 읽어라, 그래야 발견할 것이다'는 문장을 읽고 잠시 전율이 일었다. 쓴다는 것은 무엇이고, 읽는다는 건 무엇인가.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1941~2008)의 시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사실 읽지 않으면 쓰지 못한다. 우리가 글을 쓰게 될 때는 독서라는 유산에 근거해서 쓰게 된다. 쓰기 위해서는 이미 읽었어야 한다. 그래야 언어를 획득해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그 의미를 통해서 어떤 지평을 볼 수 있다. 읽지 않았다면, 전혀 독서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글을 쓰지 못한다. 쓰더라도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다. 작곡가도, 화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유산이 없는 헐벗은 상태라면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나이에 도달하게 되면 누구나 내가 도대체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 건지, 삶의 신비와 죽음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문학이 바로 여기에 답을 주거나 답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게 된다. 써라, 그러면 너는 존재할 것이라는 의미는 쓰지 않게 되면 너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미 번역하는 행위이다.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세계와 관련된 생각들, 어렴풋한 의문들을 바로 쓰면서 번역해내게 되는 것이다. 쓴다는 것은 번역하는 것이고, 글을 읽는다는 것은 바로 쓰는 행위이다. 계속해서 오고 가는 파도의 움직임과 같다."
-선생의 작품들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유가 압도적이다. 태어나고 살아온 공간이 궁금하다.
"프랑스 중서부 도시(샤토루)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바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2년도 살지 못했다. 아버지가 공직에 계셨기 때문에 연속적으로 전근을 다녀서 이사를 정말 많이 했다. 어린 시절이야말로 처음으로 어떤 감각을 익히고 느끼게 되는데, 그때 얻은 것들은 정말 강하고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겨울에는 눈도 많이 내려 춥고 여름에는 더운, 프랑스 동쪽에서 주로 자랐는데 나무가 많은 삼림지역이다. 나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사소한 죽음과 출생을 겪게 된다. 사랑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면 새로운 감정과 감각들이 생겨나는 변화가 일어난다. 예술 작품이나 풍경을 보고 감탄하면서 충격을 받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모나 가까운 친구를 잃어 애도의 터널을 통과하면서도 우리는 거듭 작은 죽음과 출생을 되풀이한다. 태어나서 자란 곳도 중요하겠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수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는 일직선으로 사는 게 아니라 지그재그 형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나와 세계, 그 사이를 매개하는 언어를 어떻게 성찰하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인간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 외부 세계를 그 언어로 명명할 수 있다는 것, 그 언어를 통해서 이해하고 번역할 수 있다는 것, 우리의 감정과 감동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너무 어이없을 때나 충격을 받았을 때 할 말을 잃었다는 표현을 하는데, 언어는 풍요로우면서도 한계가 있다. 릴케는 언어가 중개하지 않은 동물의 세계에 대해, 동물은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바라본다고 시를 썼다. 우리 인간들은 멀리 사라져가는 듯 한 자세를 지니고 있다. 무엇을 하든 간에 항상 멀어져 가는 외형이다. 계속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떠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마 언어적 표현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언어는 우리에게 치명적이거나 운명적인 것이면서도 풍요로움이고 기회일 수도 있다."
-선생의 등장인물은 전통 소설의 인물과는 등장 방식부터 다르다. 비물질적이고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도 모르게, 느닷없이 난입하듯 벽을 통과해서 온다. 선생의 '페르소나주(personnage)'가 궁금하다.
"이런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페르소나주'라는 짧은 책을 썼는데, 명확하지 않았나 보다(웃음). 사실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데, 실존 인물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보통 등장인물을 만들어내곤 한다. 많은 소설가들은 사실 그것뿐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서 창조하기도 한다. 저는 그런 쪽인데,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나 이미지가 있고 그것이 다시 자꾸 떠오를 때면 왜 그러는지, 소설가라면 더욱 그런 질문이 생길 것이다. 이런 이미지가 나에게 완전히 들어와버리면 그 인물에 호기심을 느끼고 왜 나를 이 침묵 속에서 부르는지, 그 인물이 이야기 해주기를 기다리게 된다. 그걸 글쓰기를 통해서 구현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쓰라고 나에게 명령을 하는 거다. 그래야 내가 존재할 수 있으니 나에 대해서 써라, 이렇게 명령하는 것과 같다. 국가를 뒤흔드는 어떤 사건이나 역사가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등장인물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 울고 다니는 여자는 두 가지 세계 사이에서,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 현재의 세계와 과거의 세계, 살과 숨의 세계와 먼지와 침묵의 세계 사이에서 끝없이 다리를 쩔뚝거리고 있다. 그 여자는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 사이를 오간다. 사라진 자들과 살아 있는 자들의 것이 한데 섞인 눈물의 남모르는 밀사가 되어. _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김화영 옮김)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의 주인공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상징적인 형상이다. 문학은 스토리나 메시지만이 아니라 이마주, 혹은 '상'(像)일 수도 있는가.
"문학은 우선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철학은 그럴 수 있지만, 문학은 좀 다르다. 문학이 개념에 영향을 받을 수는 있지만 개념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문학이 아니라 나쁜 철학이다. 이미지는 중요하다. 문학은 이미지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음성, 언어의 소리가 있다. 소리 내지 않고 어떤 텍스트를 읽고 있다고 하더라도 머릿속에서는 바로 그 음향이 들린다.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의 생각 습관을 바꿀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 문학에는 우리가 가진 그런 것들을 완전 흔들어버릴 요소가 있어야 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쪼그라들고 완전히 굳어져버리게 된다. 특히 종교에서 그러하다."
-문학은 폭력, 악, 고통 들을 껴안는다. 문학이 이런 것들을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진정시킬 수는 있을까. 문학과 '악'은 어떤 관계인가.
"대문자로 쓴 악과 선 사이의 관계는 사실 굉장히 복잡하다. 완전히 이기적이고 별로 친절하지 않았던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용기를 내서 다른 사람을 돕는가 하면, 반대로 평상시에는 굉장히 친절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극한 상황에서 서로 반대가 되는 변화가 가능하다. 그게 바로 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악에는 우리를 매혹시키는 그 무엇인가 있다. 성적인 것을 읽을 때도 독자의 머릿속에서는 뭔가를 기대하게 되는 흥미를 유발하지 않나. 아름다운 장면이라는 건 그렇게 흥분시키는 요소가 아니다. 문학도 물론 선의와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빈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어둠이 필요하다. 광선은 어둠을 통과해야 보인다."
실비 제르맹은 '작가의 운명'을 언제 느꼈느냐는 질문에 "미술학교에 가서 화가가 되려다 고등학교 철학 수업에 흥미를 느껴 대학에서 8년 동안 철학을 전공하고 박사논문까지 쓰고 난 뒤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면서 "계속 글을 쓰기 위해 소설 쪽으로 나아갔다"고 답했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는 "억지로 더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서 "다른 것도 읽고 다른 일도 하면서 생각의 줄을 잃어버리지 않은 채로 다른 것에 몰두하면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개기일식 때 체험한, 대지를 압도한 어두운 침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강연을 맺었다. '호박색 밤'의 작가가 말하는 밤.
"밤에는 시작이 있고 밤에는 끝이 있습니다. 밤은 어둡고 신비스럽고 모든 것이 떠오를 수 있는, 부상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