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10개월, 가해자는? 제도는?

오다인

| 2018-11-20 09:28:32

유명인에 의혹 잇따라…일부 극단적 선택
사과, 활동 중단, 실형…부인, 손배청구도
파장은 컸지만 법·제도·예산 변화는 '미미'

지난해 10월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1면에 '할리우드 거물이 성범죄 의혹을 받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수십년 간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폭로였다. 이후 10월15일 미국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에 "성희롱 또는 성폭행을 당한 적 있다면 이 트윗에 대한 응답으로 '미투(#MeToo·나도 당했다)'라고 쓰라"고 썼다. '미투' 운동의 시작이었다.

3개월여가 흐른 2018년 1월29일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8년 전 안태근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으며, 사과 대신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는 고발이었다. '검사도 당했다'는 충격이 일었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에서 '미투' 운동이 본격화됐다. 안태근 전 검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돼 형사 재판을 받고 있다.
 

▲ 서지현 검사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안태근 전 검사장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미투' 운동은 올해 한국을 뒤흔들었다. 폭발적인 '미투' 선언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았고, 유명인들의 지위를 추락시켰으며, 정치인들을 움직였다. '미투' 선언을 통해 "이 문제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던 밀라노의 예견처럼 성폭력의 만연함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서지현 검사의 고발부터 현재까지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것은 무엇일까.

고은·이윤택·조재현·안희정…잇따른 성폭력 의혹

지난해 겨울 최영미 시인은 시 '괴물'을 발표했다.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미투'가 확산하던 2월, 'En선생'은 고은 시인으로 밝혀졌다. 최 시인은 20여년 전부터 고 시인이 바지를 내리고 여성 시인들에게 만지라고 요구하는 등 성추행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투' 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7월3일 서울시 성평등 대상을 수상했다. 고 시인은 같은달 17일 최 시인과 언론사 등을 상대로 10억7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미투' 선언은 2~3월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2월13일) △오달수 배우(2월15일)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2월18일) △이윤택 연출가(2월19일) △조민기 배우(2월20일) △배병우 사진가(2월23일) △조재현 배우(2월 24일) △한만삼 신부(2월24일) △최일화 배우(2월25일) △한명구 배우(2월25일) △박재동 만화가(2월26일) △남궁연 음악인(2월27일) △김기덕 감독(3월5일) △안희정 충남지사(3월5일) △안병호 함평군수(3월6일) △정봉주 전 의원(3월7일) △민병두 의원(3월10일) △김생민 개그맨(4월2일) 등의 이름이 잇따라 등장했다.

박삼구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여성 승무원들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매달 첫째주 목요일 오전 여승무원들을 만나 격려를 빙자해 껴안거나 손을 주물렀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불편함을 겪은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며,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사과문을 냈다.

배우 오달수는 여성 두 명에게서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다. 침묵 후 공식 사과했지만 "두 분의 말로 인해 강간범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남녀가 성관계를 맺음에 있어 의사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게 이유였다. 오달수는 '미투' 이후 작품 하차, 자택 칩거, 음주, 입원 등의 과정을 밟았다.

조증윤 극단 '번작이' 대표는 2007~2012년 16살·18살이던 단원 2명을 사무실과 차 안 등에서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피해 단원 중 1명이 페이스북에 폭로하고, 이어 다른 단원도 같은 계정으로 추가 폭로하면서 의혹이 불거졌다.

조 대표는 "서로 호감을 갖고 관계를 맺었지 결코 강제는 아니었다"고 진술했으나 경찰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지난 9월20일 1심에서 조 대표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하자 조 대표가 그대로 기절해 재판이 연기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윤택 연출가는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으로 재임하던 기간 여성 단원들을 성추행 및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를 비롯해 피해자들의 실명 폭로가 쏟아졌다. 이 전 감독은 "18년 가까이 진행된, 생활에서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행태라고 생각한다"며 "제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극단 단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된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지난 9월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이윤택 사건 피해자 공동 변호인단'은 2월28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 수사가 시작됐다. 이 전 감독은 2010년 7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여성 9명을 25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로 4월13일 구속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한국의 '미투' 운동 이래 첫 실형 선고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소나무 사진으로 국내외에 이름을 알린 배병우 사진가는 1981~2015년 서울의 모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아 '미투'에도 이름을 남겼다. 이 학교 졸업생 일부는 그가 작업실이나 촬영지에서 수차례 성추행과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고발했다. 배씨는 2월25일 이같은 폭로가 사실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같은 대학에 재직 중이던 배우 한명구 역시 졸업생으로부터 성범죄자로 지목됐다. 한명구는 "열정적으로 가르치다 보니 늦게까지 작업하는 적이 많았고 술자리도 많았다"며 "그 과정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후 교수직에서 사퇴했다.

배우 조재현은 배우, 제자, 스태프 등에게 성폭행을 저지른 의혹을 받았다. 그는 입장문을 통해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께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잘못을 시인하고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겠다"며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10월15일 조재현이 14년 전 미성년자였던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의 '미투' 폭로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조재현 측은 "성관계를 가진 건 사실이나 미성년자임은 몰랐다"고 해명했다.

김기덕 감독도 '거장'에서 '성범죄자'로 추락했다. 김 감독은 여배우에게 지속적인 성관계 요구, 성적 폭언 및 모욕, 강간 등의 혐의를 받았다. 그는 피해를 주장한 여배우들을 비롯해 언론사 등을 상대로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종교계도 '미투'를 피해가진 못했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한만삼 신부는 2011년 남수단에서 자원봉사자 여성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천주교 수원교구는 한 신부의 주임신부직을 박탈하고, 미사 집전 자격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사제직 박탈이나 교구 성폭행 전수조사 등의 요구를 묵살하면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따랐다.

'미투'가 거세지며 과거 성추행에 대해 '자수'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배우 최일화가 대표적이다.

박재동 만화가는 빠르게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는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러 온 후배 작가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음악인 남궁연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됐으나 최근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정무비서 김지은씨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김씨는 안 전 지사가 자신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김씨 폭로가 있던 날 안 전 지사는 지사직에서 사퇴하고 정치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김씨는 안 전 지사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안 전 지사는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반박했다.
 

▲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8월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은 안 전 지사에 징역 4년을 구형했으나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무죄 선고는 '안희정 유죄, 사법부도 유죄'라는 대규모 규탄 집회를 낳았다. 유죄 판결을 촉구해온 시민단체들은 "이 판결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침묵에 대한 강요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병호 함평군수는 여성 3명이 '미투' 선언을 하면서 낙마했다. 여성들을 모텔, 집무실 등으로 불러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했다는 의혹이다. 그는 "음해성 보도", "사실무근", "배후세력" 등을 언급하며 강하게 부인, 이들 여성을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했으나 최근 상습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정봉주 전 의원은 2011년 기자 지망생을 서울의 한 호텔로 불러 성추행한 의혹을 받았다. 그는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 2명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소했다가 돌연 취하,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10월16일 정 전 의원은 언론사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거 노래방에서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곧바로 의원직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두달여 만인 5월4일 "당과 유권자의 뜻"이라며 사직을 철회했다.

개그맨 김생민은 데뷔 25년 이래 첫 전성기를 구가하던 4월, 과거 한 노래방에서 방송 스태프 2명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방송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는 "제 부족한 행동으로 상처받았을 그분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무겁고 죄송하다"며 의혹을 인정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일부 남성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배우 조민기는 부교수로 재직하던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은 지 18일 만에 오피스텔 지하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A씨도 제자에게 "남자랑 옷 벗고 침대에 누워본 적 있냐"는 등 성희롱 발언을 한 것이 폭로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용상 성평등 목표로 한 정책 추진해야"

김수희 한국여성단체연합 부장은 "'미투'는 기존에 없었던 게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온라인에서의 고발은 2016년부터 있어왔다"며 "올해는 '미투'라는 이름이 출구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동안 여성들의 목소리를 정부·국가·법원·언론에서 듣지 않다가 '미투' 운동이 커지고 나서야 듣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 '미투' 집회 [뉴시스]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은 "올해 '미투' 운동이 일상에 만연한 성폭력과 성차별 현실을 말했다"며 "한국 사회의 권력구조가 얼마나 성차별적으로 구성됐는지, 이런 문제를 해결할 법·제도 시스템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고 평가했다.

이영희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미투 대책은 대부분 공공기관의 사업주로서의 역할일 뿐, 국민의 정부로서 법률을 집행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대안으로 그는 "'미투'가 고발하는 성폭력은 대부분 일터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부에 '고용평등국'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 '미투' 예산으로 증액됐다고 할 만한 부분은 고용평등상담실 지원금을 2억원 늘리겠다는 게 전부"라며 "정부는 '미투' 운동에 대한 응답으로 개별 사건 대책을 넘어 고용상 성평등을 목표로 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오다인 기자 odi@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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