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규 작가 명대사 모음] '올미다'에서 '눈이 부시게'까지

홍종선

| 2019-04-01 09:18:19

개그콘서트 작가로 시작해 시트콤 거쳐 명품드라마 선보여
김혜자 안내상 예지원 김희원 등 배우들 중용하는 의리
배우 이름이 등장인물의 이름으로…독특한 작명도 눈길
▲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한 이남규 작가 [jtbc 제공]

드라마 '눈이 부시게'. 종영한 지 열흘이 훌쩍 지났지만 애시청자들은 아직 여운을 느끼고 있다. 드라마가 남긴 감동이 진했다. '눈이 부시게'를 내 인생 최고의 드라마라고 말하는 댓글이 많을 수 있었던 건 명배우, 명감독과 스태프, 명작가들의 훌륭한 협업 덕이다.

여느 드라마라면 한지민 남주혁, 두 청춘 주인공이 가장 큰 박수를 받았을 터. 하지만 '눈이 부시게'는 주인공 혜자의 부모이자 아들 부부를 연기한 이정은 안내상, 혜자의 오빠 손호준, 혜자의 친구들 김가은 송상은, 혜자가 다니는 '노치원'의 원장이었다가 혜자의 요양병원 간호사였던 김희원과 짝 김광식까지 고루 사랑받았다. 모두가 박수 받고 사랑 받아 마땅한 흠잡을 데 없는 명연기를 펼쳤다.

특히 인생의 황금기가 언제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의 주제에 걸맞게 노익장을 과시한 배우들도 함께 박수 받았다. 남주혁의 할머니 김영옥, 샤넬 역의 정영숙, 노치원의 우현과 전무송은 물론이고 느림보 할머니 장미자를 비롯해 도라에몽 할머니 원미원, 뽀삐 할아버지 정대홍, 쌍둥이 할아버지 심남, 지팡이 할아버지 정진각 등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얼굴들이 노치원 멤버로 활약했다.

이 모든 이들의 정점에 배우 김혜자가 있었다. 79세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소녀 같은 발랄함과 귀여움을 발산하며 "내 안에 한지민 있다"를 온 국민이 믿게 했던 연기장인 김혜자가 가장 큰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한 사람 더, 드라마 종영 후 더 큰 박수를 받고 있는 인물이 있으니 드라마를 집필한 이남규다. 가슴에 오래 남을 좋은 드라마를 선사해 준 이남규 작가에 대한 보답으로 한 명의 애시청자로서 그의 족적을 돌아본다.

지난 2007년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 김대희 신봉선의 부부연기 '대화가 필요해'로 KBS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코미디 부문 방송작가상을 수상한 이남규 작가. KBS '폭소클럽', tvN '코미디빅리그'를 거쳐 시트콤 KBS '달려라 울엄마' '올드미스 다이어리', JTBC '청담동 살아요' 등의 대본을 집필했다. 2015년 JTBC 드라마 '송곳'은 이남규 작가에겐 터닝 포인트가 됐다. 시트콤이 아닌 정통 드라마로 이른바 '웃기는 작품'이 아닌 '묵직한 드라마'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16년 JTBC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 이어 올해 '눈이 부시게'라는 '명품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시청자의 가슴을 파고들며 때로는 배꼽 쥐게 하며 큰 사랑을 받기까지, 이남규 작가의 드라마 속 명대사를 살펴봤다. 

 

▲ 노처녀의 일기장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웃다가 웃었던 시트콤 [KBS2 제공]


◆ 올드미스 다이어리

지난 2004년 11월부터 무려 1년간 전파를 타다 이듬해 11월 종영한 KBS2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노처녀 라디오DJ 미자(예지원 분)의 일과 사랑을 그린 시트콤이다. 대중의 사랑과 지지 속에 이례적으로 '극장판'까지 만들어졌다. 예지원을 선두로 김지영과 오윤아, 그리고 지현우, 김정민, 김영옥, 한영숙, 김혜옥, 임현식, 우현 등의 연기가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 김영옥과 우현은 '눈이 부시게'에서 다시 만났다.


"맘에 없으면 단둘이 술 마셔 주지도 마. 영화 보자는 말도 하지 마.
전화해서 '뭐 했어요' '미안해요' '다음에 봐요' 그딴 말도 하지 마.
맘에 없으면 떨어져 머리통이 깨져도 그냥 받아 주지 마. 단둘이 술 마시고 만나 주고 그랬으면 그렇게 했으면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해 줘야 해. 그게 예의야, 알아?" (예지원)


"연애란 무엇이냐. 응? 연애란 한 글자로!" (김영옥)
"고, 고?" (김혜옥)
"화투 치냐? 연애란 쇼하는 거야. 그러면 남자는 어떡하는 거다?" (김영옥)
"꼬, 꼬시는 거다?" (김혜옥)
"후리는 거야. 남자는 후리는 거라고!" (김영옥) 

 

▲ 김혜자의 재발견, 이남규가 하면 시트콤도 명품이 된다. [jtbc 제공]


◆ 청담동 살아요

2011년 12월부터 2012년 8월까지 방송된 JTBC '청담동 살아요'는 주소는 '청담동'이지만 재개발 직전의 낡은 2층 건물 안에서 초라하게 살아가는 혜자네 식구들과 이웃들의 세상 살아가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린 드라마다. 청담동을 지향하는 허위에 찬 사람들과 그들의 추함과 존엄을 이야기해 '웃픈'(웃기고 슬픈) 장면들로 시청자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김혜자는 시트콤이든 정통드라마든 이남규 작가의 드라마의 품격을 더하는 보석 같은 파트너다. '눈이 부시게'에서도 이남규 작가의 페르소나인 김혜자가 남기는 내레이션은 드라마의 백미다.


내 상처를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건 내가 그만큼 컸다는 얘기겠죠. 이 나이엔 더 이상 자라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또 한 뼘 자랐나 봅니다. (혜자 내레이션)


옛날에 명동에 마리서사라는 조그만 서점이 있었지요.
김수영, 박인환 같은 훗날 유명 시인이 될 청년들이 책을 사고 토론을 벌이던 곳. 끝을 알고 봐서 그런지 먼지 덮인 그곳은 왠지 예술인들의 공간답게 낭만적이고 드라마틱해 보입니다. 우리가 다 예술인이 된다면 지금의 이 청담만화방도 훗날 누군가 보기엔 낭만적이고 드라마틱한 공간이겠죠. 거기에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이미 그렇게 결정나있고 끝을 알고 가는 여행이라고 그렇게 믿고 가 보렵니다. (혜자 내레이션) 

 

▲ 지현우는 이남규 작가를 만나야 빛이 난다. 이 작가의 유일한 남성 페르소나 안내상 [jtbc 제공]


◆ 송곳

2015년 10월부터 11월까지 방송한 JTBC 드라마 '송곳'은 대형마트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최규석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깊이 있는 소재와 묵직한 무게감을 매끄럽게 풀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남규 작가에겐 정통드라마 합격통지서 격의 작품이다.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 이어 지현우가 다시 등용됐고 구고신 역의 안내상이 이남규의 작가의 페르소나로 맹활약했다. 안내상은 '눈이 부시게'에서도 장애를 갖게 된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 품는 원망, 그것이 자신의 오해였음을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서야 알고 통곡하는 아들의 등을 명품 연기로 소화했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기어이 한 발을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안내상)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살아 있는 인간은 빼앗으면 화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안내상) 

 

▲ 불륜도 이남규 작가가 손을 대면 소통의 드라마가 된다. [jtbc 제공]


◆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2016년 10월 방영을 시작해 12월 종영한 JTBC 드라마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는 남편이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뒤 SNS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교감하는 내용을 그리는 드라마다. 이선균, 송지효, 권보아, 이상엽, 김희원, 예지원 등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는 남녀들이 SNS를 통해 속내를 털어놓는 모습으로 기혼남녀뿐만 아니라 연애 중인 남녀들에게도 공감을 얻었던 드라마다.

예지원은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 이어 호연을 펼쳤는데 천천히 잘 늙는다면 김혜자가 될 수도 있는 저력의 배우다. 김희원은 '눈이 부시게'에서 외모답게 악랄한 원장과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선한 간호사를 오가며 웃음을 선물했다.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에서 도현우를 연기한 이선균은 이후 사람들에게 인생드라마로 불리는 또 다른 명작 '나의 아저씨'를 이끌었다, 다음번엔 이남규 작가의 드라마에 등장할까. 이남규 작가는 같은 배우의 여러 얼굴을 우리에게 꺼내 보여 주는 재주가 있으니 왠지 기대가 돋는다.

가수 보아는 권보영 역을 통해 배우 권보아의 얼굴을 하나 더 갖게 됐다. 이남규 작가는 종종 연기자의 본명과 비슷하게 등장인물을 작명한다. '눈이 부시게'에서 윤상은 역의 송상은도 그렇고, 김희원은 김희원 역을 연기했다. '청담동 살아요'에서는 등장인물이 배우와 이름만 같거나 아예 성까지 같기도 했다. 그리고 김혜자는 언제나 김혜자다.


방심.
그건 우리 가장 가까이 있는 적이다. (이선균 내레이션)


워킹맘으로 산다는 건 잘해야 본전. 못하면 욕만 먹는 일이잖아요. 사모님도 늘 무리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신 거예요, 이 컵의 물처럼요. 괜찮아 보이죠? 안 넘칠 거 같죠? 그런데 여기에 한 방울의 물만 떨어트려도…사모님은 이 한 방울만 막아주길 바랐을 거예요. 전체를 막아달라는 게 아니라 이 한 방울만. '꼭 좋은 엄마, 아내가 될 필요는 없다'라는 말만 해 줬으면 어땠을까요? '당신 그동안 애 많이 썼어', 이런 말만 한마디 해 줬어도 있는 힘껏 버티지 않았을까. (권보아) 

 

▲ 이때는 시간을 되돌린 대가로 몸만 늙은, 젊은 혜자인 줄 알았지. 그게 인생이라는 걸 뒤늦게 자각. 노인의 실존적 존재, 그 외로운 속마음을 이토록 잘 표현할 수 있을까. [jtbc 제공]


◆ 눈이 부시게

지난 2월 시작해 3월 종영한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시계를 매개로 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 슬립 드라마인양 감각적으로 시작했다가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는 명품 드라마로 막을 내렸다. 예상치 못한 반전에 감동은 두 배. 탄탄하고 촘촘한 서사 속에 회마다 시청률이 올라 3.185%(닐슨코리아 전국 시청률 기준)로 시작해 9.731%로 마침표를 찍었다. 드라마는 끝났어도 명대사가 남았다. 온 국민을 울리고 웃긴 건 모든 제작진과 출연진이었지만 명대사는 이남규 작가의 페르소나 김혜자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리고 김혜자, 김해숙에 이어 국민엄마의 길로 들어선 혜자 엄마 이정은에게도 명대사가 맡겨졌다.


"잘난 거랑 잘 사는 거랑 다른 게 뭔지 알아?
못난 놈이라도 잘난 것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서
나 여기 살아있다, 나보고 다른 못난 놈들 힘내라,
이러는 게 진짜 잘사는 거야.
잘난 거는 타고나야 하지만 잘사는 건 네 하기 나름이라고."(이정은)


"오로라는 에러야. 원래 지구 밖에 있는 자기장인데 어쩌다 보니 북극으로 흘러들어왔다는 거야. 그런데 너무 아름다운 거야. 에러도 아름다울 수 있어" (김혜자)


"원래 죽음이 이런 건가? 죽는다는 건 너무 허무해. 어제까지만 해도 나랑 얘기하고 체온이 느껴지던 사람이, 아예 없던 사람처럼….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나도 죽으면…." (김혜자)


"난 말이야. 내가 애틋해. 남들은 다 늙은 몸뚱어리, 더 기대할 것도 후회도 의미 없는 인생이 뭐가 안쓰럽냐 하겠지만 난 내가 안쓰러워 미치겠어. 너도, 네가, 니(네) 인생이 애틋했으면 좋겠어." (김혜자)


"긴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습니다.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 (김혜자)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런데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혜자 내레이션)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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