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mm 펜으로 그린 문화재, 일본을 매혹시키다 '

이성봉

sblee@kpinews.kr | 2018-07-24 08:41:53

김영택 화백,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세계의 건축문화재 펜화전' 열어

섬세한 펜으로 한국과 일본, 나아가 전세계의 문화재를 실감나게 표현하는 '김영택 펜화전'이 일본 도쿄에서 열린다.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과 수림문화재단은 오는 26일부터 8월 21일까지 도쿄 신주쿠에 있는 한국문화원 갤러리에서 펜화전을 개최한다고 24일 밝혔다.

 

▲ 주일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에서 오는 26일부터 전시예정인 '김영택 펜화전' 포스터 이미지 [김영택화백  제공]

 

김영택 화백(1945~)은 서양화의 투시도법과 인간의 눈으로 보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한 작가 특유의 '인간시각도법'으로 0.05mm의 가늘한 펜으로 고건축물을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한국의 고건축물 15점과 일본의 고건축물 15점, 세계 건축물 15점 등 모두 45점을 소개할 예정이다.

첫날인 26일 오후 5시부터 시작되는 개막식에는 승무 예능보유자인 고(故) 심화영의 외손녀인 이애리씨가 일본의 샤쿠하치, 중국의 비파와 함께 한국의 승무를 공연할 예정이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2004년 김화백의 '펜화 기행 Ⅰ전(학고재)' 전시회 소개글을 통해 "김화백의 펜화에는 정밀한 사실묘사에서 느껴지는 이성적 감각과 함께 동양화에서의 감성적 감흥이 함께 존재한다. 서양의 펜화가 아닌 자신만의 펜화를 만들려는 작가의 투혼이 살아있는 것이다. 독학으로 펜화에 영감을 담아내고 인간시각도법을 창안하여 새로운 작품세계를 개척하는 선생의 열린 사고에 '항상 솟아나는 샘'이라는 의미의 '늘샘' 이라는 호가 참 잘 어울려 보인다."며 김화백의 작품을 평가했다.

다음은 일본전시를 앞두고 김 화백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오는 26일부터 시작되는 일본 전시를 앞두고 김 화백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화백은  홍익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로 ITC에서 선정한 세계 54대 디자이이자 1993년'디자인 대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4년부터 전업 펜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이성봉 기자]

 

- 펜화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인천 태생으로 제물포고를 졸업하고 홍익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1990년에는 CI 디자이너로서 ITC(International Trademark Center) 인정작가로 선임되었고, 1993년에는 전 세계 전문 디자이너 중 54명의 톱 디자이너에게 수여하는 '디자인 대사(Design Ambassador)' 칭호를 받았다.

"제일기획과 대한항공, 일양약품, 나라기획 등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고, 1977년부터 1997년까지는 홍인디자인그룹을 설립해서 직접 크리에이터겸 대표를 지냈다. 나름 잘 나가는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1994년 유럽에 디자인 대사 행사에 참석했다가 펜화를 접했다. 충격이었고 뭔가 나를 끄는 것이 있었다. 펜화로 그간 디자인 작업에서 일러스트 작업을 해 오던 나에게 뭔가 새로운 도전 의식이 생긴 것이다.

디자이너로 늘 남의 작업만 하는 사람이란 회의가 들어 1994년부터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로 했다. 이후 '창의적이고, 한국적이고, 내 것으로써 펜화'에 대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 언제부터 펜화가로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나.

"펜화 작업으로 광고 속 일러스트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사랑 받게 된 계기는 2001년 2월 15일 시작된 중앙일보의 '펜화기행'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재를 화폭에 담고 단상을 전하는 이 '펜화기행'이 무려 11년간 이어지면서 펜화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2004년 '펜화 기행 Ⅰ전'은 4주간의 전시였다. 펜화가 다른 미술품과는 달리 소장가치가 높지 않을거란 생각과 신예작가의 전시라 한 점을 팔기도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었다. 전시 첫날 폭우가 쏟아졌다. 그날 전시장을 찾은 배우 고두심 씨가 첫 콜렉터로 내 작품을 사주셨다. 기간 중 원화가 완판되었고, 556권의 도록판매와 엽서, 포스터까지 완판을 기록했다.


언론의 관심도 대단해서 신문 뿐 아니라 공중파 3개 방송사에서 저녁 주요 뉴스로 전시회를 소개했다. 이후 2006년 '펜화 기행 Ⅱ전 (학고재)'과 2009년 '통인화랑 초대전' 등을 통해 펜화가로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 깅영택화백이 그린 1890년대 광화문 복원도. 현재와는 달리 당시에는 층계가 있었다. 고종 황제가 타고 다니던 어차가 다니면서 지금과 같이 평지로 만들었다. (2007년 작)

 

- 국내 문화재뿐 아니라 외국 문화재에 대한 작품도 많은데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나.

"국내 문화재를 주로 작업 해 오던 중 2009년 4월 15일부터 시작된 중앙일보와의 '세계건축문화재 펜 기행'은 내 눈을 세계로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첫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일본의 나라 호류지 금당과 5층탑 복원도 작업이었다. 처음 본 순간 오랜 친구를 보는 듯 전혀 낯설지 않았다. 백제 건축의 원형이 살아 있는 듯 보였다. 처마 곡선과 비례 등에서 한국의 미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림을 위해 찾았던 두 건물은 모두 1층 모양이 매우 어색해 보였다. 당시 안내를 하던 쇼카쿠 후류야 집사장 스님이 나라 시대에 덧붙여지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한국 건축물의 복원도를 그리던 것처럼 고쳐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유물 전시관에서 5층탑 원형 모형을 만났다. 내 눈치를 챘는지 스님이 특별히 촬영 허가를 해주어 그런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 덕분에 일본 첫 작품이 복원도가 되었다." 

 

▲ 2009년 4월 15일부터 시작된 세계건축문화재 펜 기행은 김 화백의 눈을 세계로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첫 작업으로 선택한 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나라 호류지 금당과 5층탑 복원도 작업이었다. (2009년 작)

 

- 이번 일본 전시는 어떤 작품이 소개되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이번 전시에선 한국의 고건축물 중 경복궁 근정전, 경복궁 광화문복원도 등 15점과 일본의 고건축물 중 나라 약사사 동쪽탑, 나라 동대사 대불전, 교토 헤이안신궁 태평각을 포함한 15점, 세계 건축물 중 몽생미쉘, 콜로세움, 타지마할을 포함한 15점 등 모두 45점을 소개한다.  일본 문화재를 펜화로 지속적으로 작업하면서 일본 진출을 나름 기대하고 있었다. 아울러 몇 차례 작품을 통해 일본 언론과 만나게 되면서 이번에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이다. 한국문화유산국민신탁과 아시아문화경제진흥원의 도움을 받고 수림문화재단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셨기에 이번 전시가 가능하게 되었다. 수림문화재단과는 내년 1월 전시관 개관 이벤트로 펜화 작품 130점을 기증해 전시할 예정이다." 

 

▲ 일본을 통일한 히데요시가 축성한 오사카성을 펜으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2010년 작)

 

- 앞으로의 계획은.

"단순히 전시회 뿐 아니라 펜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데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11년부터 국내에서 펜화협회를 만들어 현재 35명 정도가 함께 매년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번에 일본에서도 전수자 양성을 발표할 예정이다. 나 혼자 작업하면 1년에 12작품 정도 밖에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일본 건축물을 내 펜화로도 담겠지만 앞으로 2대, 3대 김영택이 나와서 계속 작업을 이어 갔으면 한다. 후계자를 위해서 김영택 펜화 후계자란 상징물인 '여의'도 준비했다. 펜화는 본인의 타고난 재능과 노력, 여러 기초 학문적 지식이 복합해서 이루어진 기술의 장르이다.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처럼 도제식으로 가르치겠다."

- 김영택류라는 독자적인 화법은 어떤 건가.

"펜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인간의 원근법과 인간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서양화의 원근법은 바늘구멍 사진기(핀홀카메라)를 토대로 만들어진 화법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 우리 기억은 그것과 다르다. 사람의 눈은 보고자 하는 것의 중심 부분만 상세하게 보이고 주변부는 흐릿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는 이미지는 1장의 이미지가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보고 둘러보고 난 뒤에야 전체가 되는 거다. 이런 인간의 시각적 특성에 맞춰 만든 원근법이 바로 '인간시각도법'이다. 독특한 나만의 방식이란 점에서 김영택 원근법이고, 김영택류라 했다. 이 원근법에 따라 나름대로 포인트를 줘서 그린 그림은 마치 현장에서 보는 것 같은 감흥을 주는 것이다."

 

▲ 금강산에 신계사는 소나무 군락이 천만병사 처럼 도열했고, 그 너머로 금강산 집선연봉(集仙連峯)이 병풍처럼 장대하게 둘러서 있다. 이런 느낌을 김영택류로 표현했다. (2007년 작)

 

- 실제 작품을 통해서 어떻게 표현 되었는지.

"2004년 금강산 신계사(神溪寺)를 그린 적이 있다. 6.25동란으로 삼층탑 하나만 남아있던 폐허에 13개의 전각을 복원해 옛 대찰의 모습을 그리는 작업이었다. 금강산에 가보면 절 앞으로 소나무 군락이 천만 병사로 도열하였고, 그 너머로 금강산 집선연봉(集仙連峯)이 병풍처럼 장대하게 둘러 서 있다. 서양화법으로 보면 앞쪽 건물과 뒤쪽 건물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병풍같은 연봉도 왠지 왜소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실제 느낀 느낌을 살리기 위해 뒤 산봉우리를 약20% 확대시켜 바위의 모양을 정밀하게 선명하게 그리고 그 앞 소나무 숲을 10% 정도 비율로 크게 그렸다. 본채 13채 건물의 비율도 조절했다. 4년간 작업을 걸쳐 2007년 완성했다. 해남 미황사 대웅전 그림이나 나라 호류지 금당과 5층 석탑, 진천 보탑사 등에서도 이런 김영택 원근법이 잘 나타난다."

- 앞으로 그리고 싶은 작품은.

"북송시대 장택단이 그린 국보 1호급인 '청명상하도' 같은 느낌의 대작에 도전해 보고 싶다. 상하이엑스포에서 만난 '청명상하도'는 감동이었다. 수도 변경을 흐르는 변하를 사이에 두고 교외, 시내, 배다리, 성문, 시가가 순서처럼 나타나고 술집, 상점, 노점, 상인, 우마차, 군중 등이 나타나는 그림이다. 이런 그림처럼 청계천이 시작하는 살곶이다리부터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보고 싶다." 

 

▲ 김영택 화백이 그린 황룡사 9층대탑 복원화. 통일신라 645년경을 시점으로 복원하고자 했다. 목조건물로 고려 때 몽고의 침략으로 불에 타 없어졌다. 몽고군은 당시 정신적인 지주인 불교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말타고 구석구석까지 내려와 사찰과 불경을 불살라 없애려했다. (2016년 작) 

 

- 왜 펜화에 집착하고 계신지.

"제 작품이 호당 200만원 정도로 작품당 약 2500만원에 팔리고 있다. 현재 활동하는 화가로는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하지만 1년에 그릴 수 있는 작품 수가 열 몇 편이 채 되지 않는다. 수입으로 보면 대기업 부장급 수준이다. 디자이너로 작업했으면 훨씬 더 많이 벌었을 거다. 역사를 기록하고 복원한다는 사명감이 나를 붙잡은 것이다. 20여 년을 문화재를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부터 제가 욕심이 많았다. 특히 명예욕이 아직은 있는 것 같다. 기성의 화단에서 질투를 하고 무시를 해도 펜화를 인정받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은 것 같다. 북한과 일본, 중국 등에도 펜화를 전파하고 많은 인재도 키워낼 생각이다."

 

- 장시간 말씀 감사하다. 앞으로 더 큰 성취 거두시길 기대하겠다.

 

KPI뉴스 / 이성봉 기자 sblee@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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