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성희 작가 "천안을 유리예술의 도시로 만들고 싶다"

박상준

psj@kpinews.kr | 2024-11-04 09:20:01

미술계에 '유리조형'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든 개척자
강원 '도계 유리나라' 제주 '유리의 성' 성공시킨 주인공
사비 들여 21년째 천안에서 국제유리페스티벌도 개최
천안시가 유리테마파크 만들면 작품 500여점 기증할터

유리조형물은 흔히 빛과 색의 예술로 불린다. 모래와 불의 조화로 탄생한 유리는 물성의 속성상 무한변신이 가능하다. 형태와 질감을 가미하면 투명하고 반짝이는 모습으로 경이로운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천안 불당동 스튜디오겸 카페 '유리정원'에서 고성희 작가.[KPI뉴스]

 

신라시대 왕릉에서 출토된 1600년 전 수입 유리식기, 장신구와 강원도 삼척 '도계 유리나라'에 전시된 유리예술작품을 보면 시대를 초월해 예술적 창의력과 화려한 미감에 경탄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금속은 아름다움에 있어서 유리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남긴 15세기 이탈리아 학자 반네지오 구린비치오의 의견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유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은 고단하다. 유리예술작가는 뜨거운 불가마 앞에서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유리를 녹이는 것은 기본이고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내기까지 유리가 지닌 특유의 예민함을 인내해야 한다.


가을비가 흩뿌리는 지난 1일 만난 남서울대 공간조형학과 교수이자 국내 유리조형예술의 개척자인 고성희(64) 작가는 그 고단한 작업을 막 끝낸듯한 모습이었다. 빛 바랜 검정색 점퍼와 헐렁한 카고바지를 입은 덥수록한 중년의 사내는 영락없이 공사현장을 가기 위해 봉고차를 기다리는 '막일꾼'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청년처럼 열정 가득한 눈빛이라고나 할까.


작업복이 평상복인 그를 설명하는 것은 간단치않다. 홍익대 미대를 나와 파리국립미술대학에서 5년간 수학한 뒤 귀국해 국내 최초로 남서울대 유리조형학과 교수로 발탁됐다. 30여년간 숱한 유리예술 작가를 배출했고 유리조형연구소장, 성암현대유리역사박물관장을 맡았다. 그로 인해 '유리공예'는 '유리조형예술'로 확장됐다.


뿐만 아니라 유리테마파크를 국내에 도입해 성공시킨 주인공이다. 관광명소인 제주도 '유리의 성'과 강원도 삼척 '도계 유리나라'도 총감독인 그의 예술가적 안목과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며 대중에게 유리예술의 진수를 선보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무엇보다 그는 여전히 '꿈'을 간직한 현재진행형 작가다. 유리 예술로는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만큼 탄탄한 입지를 굳혔지만 끊임없이 유리를 소재로 한 실험적인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따로 있다.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춘 천안에 유리박물관이나 테마파크를 여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이 오랜 산고(産苦)끝에 빚어낸 소중한 작품 등 500여점을 천안시에 기증할 의사도 밝혔다.


고 작가와 만난 천안 불당동 스튜디오겸 카페 '유리의 정원'은 그와 부인 김은희 작가의 작품이 빼곡히 걸려있어 작은 미술관 같았다. 그는 다변가이자 달변가였다.


▲고성희 유리작품 기억연습-젊은날.[작가 제공]

 

-홍익대와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유리조형으로 전향했나

"유리의 물성이 좋기도 했지만 남들이 접근하지 않는 투명한 재료로 작품활동을 하고 싶었다. 나무와 돌, 금속을 활용한 조각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많다. 하지만 유리작품은'공예'로 취급했을뿐 아니라 당시엔 국내에 유리조형물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작가들도 드물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선택이 옳았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에콜 데 보자르(파리국립미술대학교) 유학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

"파리국립미대 초청 학생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유리예술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다. 또 유럽은 중세시대 이후 유리예술의 보물창고다. 조각으로 유명한 이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5년간 유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유학 중 인근 체코, 이태리, 독일의 미술관, 공방과 유리재료상을 찾아다니며 유리의 물성을 깊이 있게 파고들 수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국내 최초의 유리조형학과 교수로 임용돼 부담이 컸을것 같다.

"마침 남서울대에서 산업대 교수를 뽑았다. 그 전에는 시간강사도 해본 적이 없어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낯설었다. 처음 강단에 섰을 땐 학생들을 바라보면 그저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람을 느꼈다. 또 처음엔 학과 이름이 일본식인 '초자공예과'였으나 이름부터 '유리세라믹디자인과'로 바꾸었다가 지금은 '공간조형디자인학과'로 변경됐다. 유리예술작품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학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 과는 경쟁률도 높고 우수한 유학생도 여럿이다. 30여 년간 대학에 재직하면서 유리조형을 개척하고 초석을 다졌다고 자부한다"


▲강원도 삼척 도계역 앞에 설치된 유리조형물 푸른 기상.[작가 제공]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도 초창기부터 심사위원, 운영위원 등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규모도 크지않고 장소(청주예술의 전당 주변)도 협소했으며 참여 작가도 많지 않았다. 당시 나기정 청주시장과의 인연으로 3회(격년제)까지 꾸준히 참가했다. 3000만 원의 사비를 털어 공예비엔날레에서 가장 큰 5m짜리 부스를 설치해 유리예술 작품을 전시했다. 나름 공예비엔날레 성장에 일조한 공으로 국무총리 포상도 받았다"


-제주도에 조성된 한국 최초의 유리테마파크인'유리의 성' 탄생에 큰 공헌을 했다고 들었다.

"유리의 성은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제주에서 광어양식을 하던 사업가가 100억 원의 민자를 유치해 2008년 조성됐다. 이 분이 천안까지 찾아와서 총감독을 요청했을때 처음엔 내가 생각한 컨셉과 달라 거절했으나 대화를 통해 의견의 일치를 보여 참여하게 됐다. 세계 최초로 조성된 유리 미로, 세계 최대 크기의 유리구(球)와 유리 다이아몬드, 유리 돌담, 거울 호수, 유리 다리 등과 이탈리아와 체코, 일본 등 세계 유명 작가의 유리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어 관람객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강원도 삼척 도계의 유리나라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대학에서 후학양성과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는데 2016년쯤 강원도와 삼척시에서 도계유리나라 건립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처음엔 난색을 표시했으나 거듭된 제의에 총감독을 맡아 밑그림을 그리고 아이디어를 짜냈다. 또 개장을 앞두고 내가 오랜 세월 모아놓은 유리작품을 무료로 빌려주게 되면서 유리나라에 '유리작가관'도 만들어졌다. 당시 얼마나 바쁘게 움직였는지 천안서 도계까지 260㎞를 하루에 두번 왕복하기도 했다. 유리재료와 작품을 실어나르던 SUV차량을 폐차했을만큼 고생한 기억이 있다. 물론 지금은 '유리나라'가 성공해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 한때 삼척시 홍보대사를 맡은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이다"


▲삼척 '도계 유리나라' 중앙에 설치된 유리분수 '담다'.[작가 제공]

 

'도계 유리나라'는 2018년 3월 개장 첫해 16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성과를 거두며 국토교통부 지역개발사업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마땅한 산업시설이 없는 폐광도시의 명소로 부상했다. 하지만 삼척시가 운영하는'유리나라'는 유리의 특성상 야외에 설치한 조형물이 야간에 빚을 받으면 더욱 현란하고 화려한 풍경을 연출해 더 많은 관람객이 방문할 수 있지만 오후 6시면 문을 닫는다. 관료적 사고의 한계로 지적된다.


-우리나라 유리조형의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일제강점기만해도 우리나라는 유리조형은 커녕 유리공예품도 내세울만한 것이 없었다. 고작 잉크병이나 전구 정도만 만들었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에 비해 30년이나 뒤졌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엔 우리나라 유리조형예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지금 남서울대에선 라트비아에서 온 유학생도 있고 태국 왕립대학 교수도 유리조형술분야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대학원에 재학중이다. 그만큼 수준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유리조형예술을 전공한 실력있는 신진작가들이 맹활약하는 것을 보면 미래도 밝다"


-사비를 들여 국제유리페스티벌도 열고 있는데 어려운점 은 없나.

"15개 외국대학과 MOU를 맺고 국제유리페스티벌을 21년째 열고 있다. 처음엔 유리조형의 '불모지'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개최하게 됐다. 지난 21년 동안 우리보다 한발 앞선 외국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도 많은 것을 배웠다. 관련기관의 인식부족으로 예산 지원이 안돼 행사를 치를 때마다 수천만원대의 사비가 들어가지만 큰 보람으로 느낀다"


▲마치 회화같은 유리작품을 배경으로 고성희 작가.[KPI뉴스]

 

 -시인 사무엘 울만은 '나이를 먹는다고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었을때 늙는 것'이라고 했다 고 작가는 아직도 꿈이 있는가.

"꿈이라기 보다는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 천안을 '유리도시'로 만들고 싶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체코 프라하, 일본 오타루는 공예도시이자 유리의 도시로 글로벌 관광명소다. 난 천안도 유리도시의 최적지라고 본다. 우선 수도권과 가깝고 교통인프라도 좋다. 또 국내 최고의 유리조형학과가 있는 남서울대가 소재해 우수한 작가들도 폭넓게 분포돼있다. 전북 진안군이 비슷한 제안을 해왔지만 선뜻 응하지 못한 이유도 천안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천안에 유리박물관이나 테마파크가 있다면 관광 활성화는 물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다"


-'유리도시' 프로젝트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부지와 예산도 필요하지만 콘텐츠가 중요하다. 유리도시를 위해 고 작가는 천안시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

"무작정 유리박물관이나 테마파크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난 500여 점의 유리조형작품을 기증하겠다. 그 중엔 내 작품도 있고 세계적인 작가나 장래가 촉망되는 제자들의 작품도 있다. 또 도계 '유리나라'와 제주 '유리의 성' 총감독을 맡았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전면에 나설 뜻도, 내 이름을 내세울 의사도 없다. 그저 천안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예술가로서 지역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고 작가는 천상 예술가다. 교수로서 권위의식은 찾아볼 수 없을만큼 순수하고 소탈하다. 학교에서도 '노가다 십장'처럼 늘 작업복 차림이라고 한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눈과 입에 생기가 돈다. 부인 김은희씨도 유리조형작가다. 대학원 제자였던 부인에 대해 고 작가는 "가장 힘들때 곁에 있어준 은인이자 작가로서 생명력을 이어준 소중한 사람"이라고 했다. 함께 있으면 외모는 대조적이지만 분위기는 닮은꼴이다. 예술가로서 지향점도 같다. 이들 부부의 소망은 과연 이뤄질수 있을까.


KPI뉴스 / 박상준 기자 ps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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