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살만 루슈디 "우리는 진실의 폐허에 서 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5-10-24 16:07:38

표현의 자유 상징하는 치열한 작가 루슈디 '진실의 언어'
'사형선고' 헤쳐온 그가 옹호해온 창작, 예술, 진실의 가치
사실보다 더 진실을 담아내는 '환상'으로 이야기의 힘 발휘
"작가 언론인들, 새로운 언어로 바닥에서부터 재건하라"

인도 봄베이 출신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1947~ )의 삶은 현대 문학사에서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치열한 투쟁의 역사 그 자체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1981년 두 번째 작품 '한밤의 아이들'로 부커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1993년 '부커 오브 부커스', 2008년 '베스트 오브 더 부커'까지 수상하며 '부커상 3관왕'이라는 유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 소설 '악마의 시'가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무슬림의 사형선고를 받고 은신하다, 괴한의 난자로 오른쪽 눈을 실명한 작가 살만 루슈디. 그는 작가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난관을 헤쳐나오면서도 진실와 용기에 대한 신념을 꺾지 않았다. ⓒ Rachel Eliza Griffiths

  

'한밤의 아이들'은 신화와 환상, 현실이 뒤섞인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으로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던 날 자정에 태어난 아이들을 내세워 인도의 현대사를 담아낸 서사다. 일찍이 남미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백년의 고독'으로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주자로 각인됐지만, 루슈디는 인도의 이야기 전통을 바탕으로 그들의 신화와 환상을 새롭게 음각해냈다.

환상적 기법으로 1988년 펴낸 '악마의 시'는 그의 작가 인생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 소설이 예언자 무함마드를 불경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1989년 이란의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작가 처단을 명령하는 종교 법령 '파트와'를 선언했고, 이로 인해 루슈디는 약 10년간 영국 정부의 보호 아래 은신 생활을 해야 했다. 이 책의 번역가와 출판 관계자들이 살해되거나 습격당하는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죽음의 위협은 2022년 8월 뉴욕 강연장에서 발생한 피습 사건으로 현실화됐다. 루슈디는 극단주의자 청년에게 칼로 15번 난도질당해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지만, 이후 회고록 '나이프'를 통해 "언어가 나의 칼"이라고 선언하며 폭력에 예술로 응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피습 사건의 피해자에서 벗어나 그 재난을 극복하는 서사를 펼쳐냈다.

최근 국내에 소개된 '진실의 언어'(유정완 옮김·문학동네)는 그가 2003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한 강연, 에세이, 비평 등을 모은 산문집으로 그가 옹호해온 창작, 예술, 그리고 진실의 가치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진실이 모든 곳에서 공격받는 시대에 이야기를 도구로 삼는 문학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젊은 세대는 어떤 태도로 진실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설파하는 대목들은 특히 각별하다.

오늘날 많은 젊은 작가들은 '당신이 아는 것을 써라'라는 주문을 책상 앞에 붙여놓고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창작 글쓰기 수업을 경험한 사람은 누구나 증언할 수 있듯이 도심 변두리의 사춘기적 불안에 관한 글이 너무 많아졌지요. 내 권고는 약간 다릅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이 정말로 흥미로울 때만 아는 것을 쓰십시오. …픽션은 허구라는 걸 기억하고, 이야기를 지어내려 애써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꿈을 꾸는 존재들입니다. 종이 위에 꿈을 꾸세요. _ '마법 이야기'

루슈디는 "픽션의 허구성fictionality을, 상상력의 상상성을, 꿈속의 노래를 해방시킴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것에 다가가기를, 사실보다 흥미로운 픽션을 다시 한 번 창조할 수 있기를 희망할 수 있다"면서 자유로운 상상력과 이야기의 힘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는 비사실주의로 눈길을 돌려서 거짓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면서 "내 어린 시절 마법 이야기들은 그런 접근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 방식이 거의 무한할 만큼 다양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즐겁다는 걸 내게 가르쳐주었다"고 술회한다.

그는 "책과 영화로 저속한 픽션을 납품하는 사람들 또한 환상의 힘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납품할 수 있었던 것이라곤 모두 이차원으로 축소 된 연재만화의 환상뿐"이라면서 "(내가 구사한 환상은) 삼차원 세계에서 도망쳐 슈퍼히어로 뱀파이어의 환상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의 경험을 풍요롭게 하고 강화해주는 그런 방법이었다"고 말한다.


루슈디는 작가들이 제대로 구사해낸 '거짓(비사실·픽션)의 진실'이야말로 이야기가 발휘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현재와 같이 진실이 모든 곳에서 공격받는 시대"에는 "자기 이익을 노리는 거짓말이 감쪽같이 사실이라며 제시되고, 반대로 좀 더 믿을 만한 정보가 오히려 '가짜 뉴스'라고 폄하된다"면서 "허위 정보를 차단하려고 애쓰는 진실의 옹호자들은 진실이 보편적으로 수용되던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진실 속에 살지 않으며 세계는 이제 충돌하는 이야기들과 불화하는 기억들의 집합으로서만 설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진실을 포기하자는 견해는 아니다. 루슈디는 카슈미르와 중동에서, 미국의 진보적인 사람들과 트럼프 진영의 전투에서 보듯 양립불가능한 상황에서 사실에 관한 새롭고 논쟁적인 사고방식을 문학이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더욱 다양한 목소리가 공적 담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긍정적이며, 그로 인해 우리의 문학이 풍요로워지고 세계를 더 복합적으로 이해하도록 만들어주리라 믿는다"고 말한다.

중요한 정보와 완전한 쓰레기가 언뜻 보기에 동일한 수준의 권위를 가지고 나란히 공존하며, 사람들이 그것들을 구별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평행우주에 우리는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과학적 사실,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사실에 관해서마저 대중의 수용이 약화되는 현실에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 유권자들에게 사실상 "내 말이 진실이니, 나 말고는 어떤 것도 믿지 마시오"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는? 그런 것에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특히 예술의 역할, 작가의 역할, 그리고 문학예술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가. _ '진실'

루슈디의 이러한 질문들은 작금의 세계가 처해 있는 가장 위험하고 근본적인 문제일 것이다. 각자 자신들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외치는, 다른 이들의 말에는 원천적으로 귀를 닫아버리는 행태는 디지털 시대 전 지구적인 심각한 재난이라 할 만하다. 루슈디는 자신이 던진 이러한 질문에 "나는 완전한 답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지 않는다"면서 "진실에 대한 모든 사회의 관념은 항상 논쟁의 산물이라는 걸 인정하고, 우리가 그런 논쟁에서 더 잘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자답한다.

민주주의는 공손하지 않다. 광장에서 소리지르기 시합인 경우가 많다. 논쟁에서 이길 기회를 잡고 싶다면, 그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 … 작가의 경우에는, 증거에 근거한 주장에 대한 우리 독자들의 믿음을 재건하고, 소설이 항상 잘 해오던 일,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사실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해를 구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 _ '진실'

 

▲ 루슈디는 "세상의 경이로운 것들 위로 매일같이 쏟아지는 겹겹의 횡설수설을 긁어내버릴 수만 있다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꾸며낸 세계를 팔러 돌아다니는 다양한 허풍쟁이 사기꾼들을 제거해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Rachel Eliza Griffiths

 

루슈디는 "사회에 관한 더 넓고 더 논쟁적인 관점이 현대문학에 나타났으면 한다"면서 "우리가 좋아하거나 심지어 사랑하는 책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책에서 묘사하는 인간의 삶에 동의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서 "문학이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점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들은 "이 극단적인 이견의 시대에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이라는 위대한 불변의 진실에 대해 동의하게 할 수 있다"면서 바로 "여기에서 시작해보자"고 호소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폐허문학이라 불린 것에 속하는 작가들이 폐허가 된 나라와 나치즘에 의해 오염된 그들의 언어를 재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그들은 폭격 맞은 도시가 재건되어야 하듯이 진실과 현실도 새로운 언어로, 바닥에서부터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소개한다. 바로 이 전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루슈디는 "이유는 다르지만, 우리는 다시 진실의 폐허 한가운데에 서 있다"고 말한다.

그는 "독자들의 진실에 대한 신뢰와 사실에 대한 믿음을 재건하는 과업을 담당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작가들, 사상가들, 언론인들, 철학자들"이라면서 "새로운 언어로, 바닥에서부터 재건하자"고 제안한다. '진실의 폐허'에 내리는 한 줄기 빛.

모든 것을 의심하세요. 어떤 것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마세요. 모든 통상적 관념과 논쟁하세요. 존경할 가치가 없는 것들은 존경하지 마세요.…여러분의 정신이 다른 누군가가 닦아놓은 궤도를 따라서 달리게 놔두지 마세요. 꿈꾸세요. 말하세요. 세상을 재창조하세요. _ '에머리대학교 졸업식 축사'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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