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그들은 언제나 홀로 누워 잠들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3-10-30 09:57:07
헝가리에서 구상한 머무르지 않는 자유인의 삶
일생 단 한번도 홀로이지 않은 적 없는 '혼어미'
모두의 어머니, 누이, 연인, 스승인 여자의 노래
‘작가의 작가’가 쓰는 새로운 '소설에 대한 소설'
-영웅과 후예들은 천진난만했다. 그들은 적과 싸우다가도 시야에 포착된 토끼가 마음에 들면 미련 없이 전쟁을 중단했다. …알뜰한 그들은 시간을 낭비해가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증오하지도 않았다. 사실 홀로 충만하기만도 벅찼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눈이 아리고 싶지도 않고, 서로에게 올무가 되는 치렁치렁한 관계 따위도 맺고 싶지 않은 그들은 언제나 홀로 누워 잠이 들었다.
떠나기에 좋은 계절이다. 머무르고 머무르다 고이고 고여서 진저리가 쳐질 즈음이면 훌쩍 떠나보는 것도 좋은 처방이다. 몸이 떠나는 게 여의치 않다면, 일찍이 ‘말 엉덩이에 청동솥 하나를 매단 채’ 머무르지 않고 떠나고 또 떠났던 먼 과거의 ‘영웅’들을 떠올려보는 것도 대안이다. 소설집 ‘신의 한수’로 각광을 받았던 심아진이 최근 펴낸 장편 ‘후예들’(솔)은 머무르지 않고 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영웅의 후예들에 관한 이야기다.
효령, 귀연, 요세핀이 중심인물이다. 이 세 여성 주변에 ‘혼어미’가 서성거리고, 작가가 만들어낸 또다른 작가 ‘나’가 이들의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안주하고 있는 땅을 떠나 대승적으로 자유를 구가하는 영혼들을 지향한다. 효령과 귀연은 호적상 자매관계인데, 귀연은 오래전 이 땅의 모든 인연과 스스로 단절된 채 유럽을 떠돌다 헝가리에 정착한 인물이다.
효령은 어린시절 귀연이 자신을 보살폈던 아득한 기억을 떠올리며 귀연이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미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는다. 그 ‘버림’에 복수하기 위해 귀연이 헝가리에서 낳은 딸 ‘요세핀’을 그녀로부터 떼어 한국으로 불러들일 계획을 세운다. 젊은 요세핀은 자유로운 인물로 효령이나 귀연처럼 맺힌 건 없다. 강물이나 돌로 조각한 공주와도 소통한다. 거칠 것 없는 요세핀이야말로 먼 과거 영웅의 기질을 제대로 물려받은 후예에 가장 가깝다.
“소설가로 홀로 꿋꿋하게 가려고 했던 결심이 현실에 많이 부딪쳐서 힘들 때 구상했어요. 소설 속 세 여인의 모습이 사실 다 제 모습과 흡사해요. 효령으로 사는 측면이 있었고, 요세핀으로 살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고, 또 귀연처럼 살고 있는 거 같기도 해요. 하여튼 그 세 사람의 모습이 다 겹쳐 있었고, 거기서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될지 방황하면서도 결국은 소설에 나오는 ‘혼어미’의 후예로 영웅처럼 살고 싶었던 거죠. 그 과정의 갈등을 다 합쳐서 썼던 것 같아요.”
심아진은 이 소설을 2000년대 초반 4년 동안 헝가리에 체류할 때 구상했다. 헝가리인들은 마자르 족의 뿌리가 한반도까지 이어진 공통의 조상으로 여기는데, 우연히 BBC 다큐멘터리에서 한반도 남단까지 이어진 기마인들의 이야기를 접한 뒤 이 웅대한 영웅의 후예들에 관한 소설을 착상하게 됐다고 심아진은 말한다.
“정착하지 않는다는 것,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자꾸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러저런 역사서를 참고하긴 했지만, 그걸 가지고 제가 역사서를 쓸 건 아니니까 상상력을 발휘를 해본 거죠.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고 뭔가에 집착하게 되면 떠나기 어렵잖아요. 우리가 사는 현대는 너무나 많은 것들에 매여 있고 거기서 벗어나서 홀로 있는 걸 두려워해요. 홀로 설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남들도 더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고 주변도 더 잘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홀로’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던 거죠.”
-하늘로만 타오르는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수염을 가진 남자가, 선택받은 이들의 조상이었다. 모두의 어머니이고 누이이고 연인이며 스승인 여자는 혼어미라 불렸고, 모두의 아버지이고 오라비이고 애인이며 지도자인 남자는 혼아비라 불렸다. 두 영웅이 상대를 사랑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을 때, 기만 없이 순수하게 자신을 사랑했을 때 세상은 빛났다. 그들은 건강했고, 따라서 세상도 건강했다.
요세핀이 귀연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오는 D데이까지 전개되는 이 소설은 매 장마다 서두에 ‘영웅’의 모습을 서사시처럼 펼쳐낸다. 그 영웅의 기질을 지니고 수천 년을 살아온 ‘혼어미’는 효령의 ‘머무르고 집착하는’ 삶이 안타까워 그녀 곁을 맴돌며 영향을 미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효령은 딸 윤지를 끔직이 아끼고 남편의 쾌감을 살피는 평범한 전업주부의 삶에 매달리지만, 뿌리가 흔들리는 결핍감에 시달리는 삶을 이어간다.
귀연은 모든 걸 버리고 먼 곳으로 떠났는데, 의도치 않게 타국 땅에서 ‘프란츠’를 만나 ‘요세핀’을 낳고 이혼했다. 그 딸이 예전에 귀연이 버리고 떠났던 효령처럼, 이제는 자신을 버리고 한국으로 떠나려하니 상심이 크다. 귀연이 붙잡고 놓치 못하는 또 하나는 ‘그림’이었다. 딸 이전에 그림 그리는 일에 모든 것을 쏟으려했으나 이마저 여의치 않았다. 버리고 떠났지만 소유와 정착의 수레바퀴에 매여 있는 귀연이나, 성공적으로 안주한 것 같지만 기실 허공에 떠 있는 효령에 비해 요세핀은 아직 거칠 것 없는, 가장 혼어미에 가까이 가 있는 존재인 셈이다.
-프란츠는 사랑 같은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귀연은 내게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저 역시 프란츠를 이용한 면이 없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비겁한 면이 많은 프란츠는 내게 좀 미안한 표정을 짓다가, 당신도 다 알 거 아니요, 라고 말하더니 떠나버렸다. 나는 굳이 그를 붙잡지 않았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홀로 당당하게 살겠다고 먼 이국 땅으로 떠나온 귀연을 ‘프란츠’라는 남자와 맺어지게 만든 건 작가인 ‘나’의 설정임은 자명하다. 이들이 작중에서 지은이인 나와 이렇듯 태연하게 소통한다. 여기에 더해, 이 ‘나’는 남성 작가로 인물들을 만나기 위해 직접 유럽으로 건너가 그들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 작가를 지어낸 실제 작가는 심아진이니, 이 소설은 이른바 ‘메타-메타 소설’로 불릴 법하다.
“독자가 몰입하지 못하게 했다기보다는 어떤 장면을 내 거라고 여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려다 보니까 이런 형식을 취하게 된 것 같아요. 전부 내 이야기라고 하면 너무 불편할 거 같고, 그렇다고 남의 이야기로만 보면 또 몰입이 안 될 것 같았어요. 정답이 뭐다, 규정 짓게 하고 싶지도 않았죠. 제가 새롭게 시도한 형식이 아니고 예전부터 있던 건데, 이 소설에 필요해서 가져왔을 따름이죠. 사실 우리 소설에 본격 메타픽션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생소해보일 수도 있어요.”
말미에 해설을 붙인 평론가 고종석은 “심아진은 ‘후예들’에서 이 소설을 쓰는 작가마저 창조해 픽션화한 것”이라며 “그 점에서 ‘후예들’은 소설에 대한 소설에 대한 소설, 곧 메타-메타 픽션인데, 내 가난한 독서 체험에 따르면, 한국에 이런 소설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썼다. 평론가 임우기는 “‘소설을 다루는 소설’ 곧 메타소설을 넘어 아마도 한국소설사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메타 소설’ 형식 안에 다시 ‘신이한 작가의 관점’이 작용한다”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직접 소설을 읽지 않고 이런 소개만 전해들으면 지레 머리가 아플 수도 있지만, 실제 소설을 붙들면 자주 밑줄을 긋고 흥미롭게 인물들을 들여다보며 홀로 아름답고 자유로운, 거칠 것 없는 혼어미와 잠시나마 합체되는 소득을 얻을 수도 있다. 심아진은 애초에 ‘모로 누워 자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생각했다가 ‘당당함’이 결여된 것 같아 바꾸었다고 했다. 소설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일생에 단 한 번도 홀로이지 않은 적 없는 자가 생을 실어 부르는 노래임은 분명하다. 고단하나 충만했던 순간을 즐겁게 반추하는 소리다. 나는 막걸리 사발을 들고 벽에 기대선 채 노파의 노래와 춤을 감상한다. 말 엉덩이에 청동솥 하나를 매단 채 박차를 가하는 누군가의 이럇, 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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