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당신은 어떤 종류의 오류가 되고 싶습니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5-11-28 15:34:58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적시, 미래 사회 숙고
국가가 국민을 생산하고, 통제된 설정값에 안주
"새로운 오류 만들어 수정해나가는 자세 필요"
챗GPT와 제미나이 등 초지능을 향한 인공지능(AI)의 폭발적 발전은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AI 성능 경쟁은 반도체 패권 전쟁으로 이어지며 거대한 경제적 거품 논쟁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공상과학(SF)으로 치부되던 기술들이 태연하게 일상으로 자리 잡는 초고속 변화의 세상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거나 인간성이 어떤 도전에 직면하는지 성찰할 여유조차 우리에게는 없다.
소설가 장강명은 단순한 미래 기술 예측에 그치는 SF가 아니라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며, 그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숙고하게 만드는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F를 내세웠다. 그는 "STS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탐구하는 학문 분야"라면서 "과학기술은 이제 여러 영역에서 실존적 위기를 일으키고 있고, 문학이 여기에 대응해야 하며,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입장이다. 장강명이 이러한 취지로 기획한 소설집 '멋진 실리콘 세계'(문학동네)는 국내외 작가 8명이 참여한 STS SF 모음집이다.
그는 "현재 우리가 이해하는 물리학 법칙을 어기지 않는,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 가능할 듯한 과학기술이 등장한 사회(타임머신, 초능력, 외계 문명을 관심사로 삼지 않는다)"와 "그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 비판적으로 탐구한다"는 두 가지 규칙을 전제로 이번 소설집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AI는 우리가 쓴 텍스트를 학습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애를 낳아 키우며 사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배웠다. 양질의 텍스트만을 필터링해 학습한 AI가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면, 신장 투석기가 혈액을 정화하듯 우리의 생각을 정화하고 있는 것일까? _ '멋진 실리콘 세계'
AI가 사회 시스템 깊숙이 침투하면서 발생하는 '통제된 관계'와 '자유의지 상실'의 문제는 이 책이 다루는 가장 첨예한 주제다. 전윤호의 표제작 '멋진 실리콘 세계'는 증강현실 AI 친구 '실리콘 컴패니언(실리)' 중독을 다룬다. 흥미롭게도 정부는 실리 중독을 규제하기는커녕,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 이유는 AI가 사회 안정과 인구 유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AI는 우리의 생각을 '정화'하는 통제 도구가 될 수 있다.
윤여경의 '당신의 운명은 시스템 오류입니다'는 이 통제 사회의 극단적인 형태를 그려낸다. 최첨단 AI 블록체인 시스템 '마고'가 관리하는 초호화 크루즈선 '우리호'는 인류의 마지막 안전한 거주지다. 이곳의 설계 목적은 "불필요한 갈등은 모두 제거하고, 그 위로 욕망만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완벽한 시스템은 진화를 멈추게 하며, 결국 "오류 없는 세계는 이미 죽은 세계"임을 역설한다.
이 마을이 테마파크일지도 모르지. 인위적인 괴물일지도 모르고. 그런데 네가 뭘 원하든, 그게 마을 안에 있지 않다고 해서 마을 밖에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어. 마을 바깥도 테마파크야. 그곳도 인위적인 괴물이야. _ '동물+친구×로봇'
장강명의 '동물+친구×로봇'은 지능이 높고 자유의지를 지닌 동물 로봇 '수호 동물'과 아이들의 관계를 다룬다. 노아는 마을 자체가 거대한 '사회 실험'이자 '인위적인 괴물'이라고 선언한다. 더 나아가, 기술 감시 사회에서 진정한 우정이 불가능함을 통찰한다.
AI와 더불어, 인간의 근본적인 생물학적 존재를 변질시키는 기술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두드러진다. 단요의 '그들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는 합계출산율 0.5 시대, 인공 자궁을 이용한 '인적자원 생산계획(인자생)'이 도입된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세포를 운반하는 노동자로, 국가가 스스로 국민을 만들어내는 현실에 배신감을 느낀다. 이 사회에서는 인간의 목숨이 '정확한 가치'로 계산된다.
기억은 어떻게든 구조를 완성하려는 성질을 갖기 때문에 추리하기도 하고 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뇌가 받아들이기 좋은 형태로 기억을 만들낸다는 뜻이다. ...그런데 만약 이 허구의 창작물이 결국 정해진 진실에 도달하는 거라면? _ '헤아림으로 말미암아'
우다영의 '헤아림으로 말미암아'는 뇌 데이터를 어린 신체로 이식하는 P.A. (Play Again) 기술을 통해 자아의 연속성과 진실성을 의심한다. 기억 복원이라는 과정이 사실은 뇌의 '자기 통합성'과 '자기 합리화'에 기반해 구조를 완성하려는 행위임을 밝힌다.
조시현의 '슈거 블룸'은 기후 변화로 극한의 더위가 이어지자, 노화 방지와 함께 더위를 감각하지 못하는 '인공 피부 이식(리본 프로젝트)'이 필수가 된 사회를 그린다. 사망한 시술자의 피부가 인간형 안드로이드 '효신씨'의 외피로 재활용되자, 효신의 며느리는 기술이 가져다준 끝없는 반복에 절망한다.
국경을 넘어, 거대 기술이 인류 문명 전체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작품들은 하드 SF적 깊이를 더한다. 류츠신의 '중국 태양'은 중국 정부가 나노 미러 필름을 이용해 쏘아 올린 인공 태양으로 기후와 강우량을 조절하는 '중국 태양 프로젝트'를 그린다. 서북부 농촌 출신 수이와는 거울 표면을 닦는 '거울 농부'가 되어 우주로 나아간다. 기술을 통한 계층 상승 서사이자 중국식 국가주의적 우주 개척 서사이다.
수이와와 동료들은 마침내 이 인공 태양을 인류 최초의 항성 간 유인 우주선으로 전환시켜 돌아올 수 없는 별바다 항해를 떠난다. 이들은 "풍요와 안락함에 안주한 인류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게 만들 것"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품는다.
하늘에는 태양과 지구가 동시에 떠 있고, 지구보다 훨씬 작은 태양이 환하게 빛나는 위성처럼 보였다. 하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구 위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둥근 빛무리가 보였는데 지구의 어두운 쪽을 지나갈 때는 빛무리가 눈에 더 잘 띄었다. 그곳이 바로 중국 태양이 반사한 태양빛이 비추는 지점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어머니가 중국 태양을 올려다본다. 이 태양은 아들의 눈이다. 대지의 황토는 이 눈빛을 받으며 푸른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_ '중국 태양'
후지이 다이요의 '빛보다 빠르게 날 수 있다면'은 수성 궤도 위성 관측원인 '나'가 지구 충돌까지 단 13분 25초 남은 시점에서, 지구와 비슷한 질량을 가진 소형 블랙홀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이 블랙홀은 자연 현상이 아니라, 외계 문명이 류츠신의 '암흑의 숲' 이론에 따라 지구를 제거하기 위해 보낸 행성 간 탄도 미사일(ISBM)이었다.
여덟 편의 소설이 공통적으로 도달하는 지점은 기술이 우리의 삶과 사회와 복잡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를 아주 깊은 차원에서 질적으로 '변질'시킨다는 통찰이다. 장강명은 "기술은 사람이 쓰기 나름"이라는 말만큼 위험한 기만도 없다고 경고한다. 기술 개발에는 '돈을 벌고 싶다' 혹은 '힘을 갖고 싶다'는 개발 주체의 분명한 의도가 깃들어 있으며, 총이 칼과 달리 애초에 요리나 예술의 도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새로운 기술은 개발자나 투자자의 의도마저 벗어나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 되어버린다. '멋진 실리콘 세계'를 주어진 설정값으로 받아들이고 안주할 것인지, 새로운 '창발적 오류'를 끊임없이 만들어나갈지는 인류의 중요한 선택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과거의 오류 데이터만으로는 미래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학 문명 시대에 인류의 운명은 시스템 오류입니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오류가 되고 싶습니까? _ '당신의 운명은 시스템 오류입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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